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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엄마 나 뱀 맞아?

“엄마 나 뱀 맞아? 나 방금 혀 깨물었어?”

오래전 이런 개그가 있었던 걸 기억하시나요?

우스운 말로 들리겠지만 777 기장인 저에게도 순간  

“아니 정말 내가 저 활주로에 안전하게 착륙해서 세울 수 있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드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 나 1만 시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선임 기장 맞아? 저곳엔 못 내릴 것 같다고 내 속의 본능이 지금 아우성인데?” ㅋㅋㅋ


이런 자기 회의를 처음 느껴본 날은
아주 오래전 폭풍이 몰아치는 야간에 인도네시아 발리(WADD) 공항에 내릴 때였습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동부 해안의 섬나라 세이셸(FSIA) 공항에 착륙하려 Final Turn을 마치고 활주로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또 한 번 화들짝 놀라며 경험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곳 모두 섬이네요.


우습죠. 아니 기장이 순간이라도 착륙을 확신하지 못하다니요. ㅎㅎ


그렇지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활주로 길이가 2500미터 이하의 공항을 멀리서 내려다볼 때 시각적으로 순간 조종사를 엄습하는 부담감은 매우 큽니다.


통상 60 미터 폭에 3500미터 이상의 활주로에서 이착륙하는 것에 익숙해진 온몸의 감각이 순간 45미터 폭과 2400미터 활주로를 약 고도 2000피트에서, 그것도 막 구름을 뚫고 나와 마주하게 되면 온몸의 감각이


“이거 혹시 꿈 아닐까? 정말 저기에 777 이 내릴 수 있는 거 맞아?”라는 비명을 질러대며 소란을 벌입니다. �


이때 조종사가 할 수 있는 대처는


시선을 조용히 밖에서 안으로 돌려 지금 마치 항공모함처럼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는 활주로에서 시선을 차분히 거두고 계기에 집중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겁니다.


“나의 아기 777은 포근한 엄마의 품인 활주로에 안기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 어느덧 Auto Pilot을 풀어야 하는 600피트 정도에서 다시 고개를 들어 내려다보면


좀 전까지 젓가락처럼 좁고 짧아 보였던 활주로가 이제는 777을 충분히 감싸 안을 만큼 커져 있습니다.


“회의가 들 땐 계기를 믿어라.”


공군 조종사들이 비행착각(VERTIGO)에 빠졌을 때를 대비해 늘 가슴에 담아 두던 이 말이 민항 기장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너의 눈과 감각보다는 계기와 계산된 수치를 믿어라! “


”작아 보여도 충분히 크고 짧아 보여도 Auto Brake는 충분히 세울 수 있다.”


믿어야 합니다. 이 역시 착시(Visual Illusi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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