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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r 19. 2020

야간 비행

 

부기장 퍼시가 잠시 객실에 나간 사이 사무장 파티나가 조종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오른쪽 구석 옵서버 시트에 살며시 자리를 잡고는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마치 "나 괜찮아!"라고 말하듯 깜박이는 그녀의 두 눈에 지울 수 없는 피곤함이 가득 묻어났다.


인도 뭄바이를 이륙한 777은 고도를 올리는 중간중간 주파수가 바뀌고 있었다. 제트 스트림(Jet Stream)이 고도 38000피트 상공에서 서에서 동으로 최대 160 나트(약 시속 300킬로)의 강한 편서풍 '바람 골(Wind Valley)을 만들고 있었다. 디스 페쳐가 계획한 고도 28000피트보다 2000피트 높은 3만 피트를 최종 순항고도(Final Curise Altitude)로 선정하고는 관제사와 조율을 마치기까지 몇 분이 더 걸렸다.


어느 사이 아침 햇살이 3면이 확 트인 조종석 유리창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하나, 둘 선 쉐이드(Sun Shade)를 끌어내어 후크에 걸고 정면에는 잠시 몸을 틀어 좌측 보관함에 들어 있던 두장의 유리 재질의 틴티드 글라스(Tinted Glass)를 정면 유리 위쪽 레일에 걸어 단단히 고정시켰다.


 

'아참 사무장이 들어와 있었지!'


번뜩 든 이 생각에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옵서버 시트 중간에 불쑥 올라간 테이블에 그녀가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그녀는 꽤 고참이다. 아마도 20년 이상 오늘처럼 야간비행을 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밤을 새우고 아침에 만나는 졸음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눈가에 잡힌 주름들과 이제 생기를 잃어가는 머리 빛깔이 지나 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사무장은 대부분 45세 정도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왼쪽 팔을 부드럽게 뻗어 베개처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그 위에 야간비행으로 무거워진 머리를 비스듬히 눕혀 두었다. 그녀의 머리 위와 드러난 이마 위로  태양빛이 야속하게 쏟아져 내린다.


‘삐~ 삐~’


로워 다스플레이 (Lower Display)에 띄어둔 조종실 문 바깥쪽을 비추는 CCTV에 화장실을 나온 부기장 퍼시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카메라에 바라보며 어색하게 큰 미소를 지어 웃어 보이고 있었다.



익숙하게 내려보지도 않은 채 나는 오른손을 허리 뒤쪽으로 내려  조종실 도어 로터리 스위치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딱"

곧이어 도어의 잠금장치가 전기신호를 받아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털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기장 퍼시가 들어서는 것이 아래쪽 CC TV 화면에 보였다.


자리를 비울 때 밀어둔 전동 의자와 센터 페데스털(Center Pedestal:엔진 및 통신장비가 들어있는 중앙의 계기 패널 부분) 사이로 그가 조심스럽게 다리를 옮기더니 지체 없이 자리에 앉아 바로 좌석벨트까지 '딸깍' 소리를 내어 채웠다.


“유 헤브 콘츠롤(You have Control. 지금부터 당신이 조종한다.) 현재 머스켓과 이 주파수로 교신이 이뤄졌고 다음 주파수는 119.8으로 미리 스텐바이 선택창에 맞춰두었어.”


중앙 라디오 페널의 주파수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켜 가며  짧게 브리핑을 해주고는


"나도 잠시 다녀올게. 유어 라디오!(Your Radios)"  


나는 지체 없이 좌석 벨트를 풀고 좌석의 오른쪽 아래로 손을 뻗어 좌석의 전동 스위치를 누르자 '위~'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밀리면서 몸이 빠져나갈 공간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사이로 다리를 밀어 넣고는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까지도 그녀는 테이블 위에 몸을 기댄 채  얼굴을 팔 위에 묻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조종사들의 콘트롤드 레스트(Controlled Rest)를 위해 뭄바이에서 일치감치 들여 둔 베개와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


짐짓 모른 척 그중 베개 하나를 들어 올려 숙이고 있는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 햇볕을 가려주었다. 혹시 그녀가 깰까 마지막 무게가 전해질 때까지 조심스럽게 하얀 배게를 내려놓았다.  다행히 움직임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조종실 도어를 살며시 밀고 들어가 보니,

하얀 배게는 조금 전 내가 두고 온 그 자리에 여전히 작은 방패처럼 잠든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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