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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r 29. 2020

캔슬할 수 없는 비행

승객들로부터 가장 큰 박수를 받은 비행

국내 항공사에서 부기장으로 비행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해에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보통  한 달에 많아야 두어 번 비행을 할 수 있었고 대부분 직장인들과 같이 아침 8시에 출근하고 저녁 5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전국에 돌풍과 낮은 실링(구름)들로 인해 비행 스케줄이 하나 둘 캔슬되고 있었다. 당시 330을 타고 있었는데 주로 들어가는 국내선 구간이 김포 제주였다. 330은 통상 300명가량의 승객을 한꺼번에 태울 수 있어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을 단체로 제주로 수송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정오가 되어갈 무렵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스케쥴러 0 과장이었다.

"기장님 도와주세요!"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하는 전화는 그 뒷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아도 지금 더 이상 가용한 조종사가 없다는 뜻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 330 한대가 김포공항에 승객을 태운 상태로 제주로 가지 못하고 대기 중이란다. 제주가 Below Minimum(기상 제한치 미만)이란다.


해당 항공편은 아침에 제주상공에서 한참을 홀딩한 후에 접근했다가 활주로를 보지못하고 복행  연료가 부족해 김포로 돌아왔단다. 이후 다시 연료를 채우고 제주에 내려 갔다가 이번엔 윈드쉬어를 만나 Go Around 하고 돌아왔단다. 회항한 크루는 이제 비행시간제한에 걸려 교체가  상황으로 부기장이 없어 나를 다급히 찾은것이다


"그냥 캔슬하지 그러세요. 다른 항공사들도 다들 캔슬한다고 뉴스에 나오던데요?"

"캔슬할 수가 없어요."ㅠㅠ

"아니 캔슬할 수가 없다니요? 무슨 그런 일이 있나요?"

"항공기에 지금 수학여행을 가는 중학생들이 300명 타고 있어요."

"그런데요? 수학여행이건 뭐든 기상이 안 되는 데 캔슬을 못한다니요?"

"문제는 말이죠. 오늘 330 두대가 차터(전세기)로 이 학교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우고 제주에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첫 번째 한대는 잘 내렸는데 두 번째 항공기가 못 내리고 회항을 한 겁니다. 이 학교는 지금 난리가 났어요. 수학여행을 간 학생이 반반씩 제주와 서울에 떨어져 버렸으니까요."


오후 2시경에

제주공항 활주로에 330의 메인 랜딩 기어가 '스르르' 먼저 닫고 틸트(Tilt) 되어 있던 앞쪽 타이어까지 잠시 후  '툭' 하고 활주로에 떨어졌다. 나쁜 날씨임에도 아주 훌륭한 착륙이었다.


우리는 그날 인간이 내어 지를 수 있는 최고의 환호성을 조종실 도어 너머로 들었다.

운이 좋았다. 다행히 착륙 당시 실링도 미니멈 이상에 걸려있었고 최고의 기량을 가진 기장님이어서 가능했다.

학생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수학여행의 추억을 만들어준 멋진 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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