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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Apr 04. 2020

신문을 만들던 추억

내가 대학에서 영자신문을 만들던 1989년 인쇄소에는 더 이상 납으로 만들었다던 활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사진으로 찍은 원판으로 인쇄기를 돌렸다.

대학에서 기자들이 일차로 작성한 기사를 수동 올림푸스 타자기로 ‘쉬컥, 쉬컥’ 한 자 한 자 타이핑하고 교정을 마치면 다시 도시바 전통 타자기로 질 좋은 종이에 타이핑해서 출판소에 들고 갔다.  선배들을 따라 출판소에 따라가는 시간이 신기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작업을 하는 동안 저녁을 선배들이 사주는 것이 좋아 한번이라도 작업에 더 동행하려 때를 쓰다가 혼나기도 했다. 출판사에서는 학생들이 단정히 타이핑해온 원고를 그들의 컴퓨터에 다시 타자를 쳐서 입력했다. 타이핑을 하는 직원들이 고수들이긴 했지만 이 역시 오타가 나오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이렇게 입력을 마친 기사를 출력해 가위로 오려 신문용지 크기에 알맞게 기사의 양을 줄이거나 늘려가며 편집에 들어갔다. 아귀가 맞지 않을 때는 사진을 추가하기도 하고 헤드라인을 좀 더 크게 뽑거나 기사의 줄 간격을 조절해 빈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조절했다. 마치 지금의 직소퍼즐을 맞추듯 하는 작업이었다.

가위와 풀로 조작 조각 기사를 잘라내 붙이는 편집을 마치고 나면 완성된 신문 원판은 하얀 아트지 위에서 검은 활자가 반질 반질 윤이 나서 이뻤다. 이후에 윤전기를 통해 빠져나오는 실제 신문보다 나는 이 마지막 완성되어 사진을 찍으러 들어가는 원판을 더 좋아했다.

해가 바뀌어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자 출판사를 바꾸어 그때부터는 기자들이 직접 기사를 입력하고 편집도 컴퓨터의 화면에서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위와 풀이 필요하지 않았고 신문사에는 286 컴퓨터가 들어와 육중한 울림푸스 타자기에 익숙해져 있던 기자들이 키보드를 누르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동일한 글자가 여러 번 화면에 주르르 찍혔다.

기자들 책상에 놓여있던 거대한 수동 타자기는 대학에서 언제 회수를 해 갔는지 조용히 사라졌다. 나중에 몇 년이 흐른 뒤, 어느 날 문과대학의 빈 강의실에서 아무렇게나 수북이 쌓여 있던 올림푸스 기계식 타자기들을 발견하고 안쓰러워했다. 수습 때에는 선배들의 허락을 받아야 겨우 꺼내볼 수 있었던 도시바 전통 타자기도 어느 순간부터 서재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쓸쓸히 잊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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