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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21. 2019

어느 조종사의 기장승급 인터뷰

기장승급 인터뷰를 두 번 연속으로 떨어진 스티브는 어쩌면 이번이 에미리트에서 마지막이 될 3번째 인터뷰를 오늘 앞두고 있다.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일찍 회사 3층 운항부의 기장 인터뷰 시험장에 도착한 그가 대기실 의자에 앉은 채 두 손바닥을 초조하게 연신 비벼대고 있다.

이전 두 번의 인터뷰에서 그는 지식이나 상황 판단 또는 리더십 부족이라는 대표적인 인터뷰 패일 항목이 아닌 다소 황당한 이유로 고배를 마셨다.
두 번의 인터뷰 모두 소장인 스테판이 배정이 되었고, 마음 착한 스티브는 구동독 공군 조종사 출신인 이 나이 많고 고지식한 소장 때문에 지난 일 년간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이 아직도 공군에 복무하고 있는 줄 착각을 하는 듯 스테판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군기와 메너를 강조하는 독특한 리더십의 소유자이다.


오늘도 그의 인터뷰 상대는 소장 스테판이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스테판이 연기를 시작한다.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며 기장을 압박하고 스티브가 내어 놓는 모든 결정을 다소 모욕적일 만큼 거칠게 반박하고 있다.


사람 좋은 스티브는 여전히 이 터무니없는 부기장 스테판의 도전을 어떻게 하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은 채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결을 시도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는 사이 부기장의 도전은 그 수위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그의 앞에서 소리를 질러대며 얼굴이 벌게져 날뛰고 있는 스테판 앞에서 기장승급 대상자 스티브가 진땀을 빼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연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의 눈에서 분노의 빛이 잠시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사그러 진다.


그가 갑자기 자리를 조용히 일어선다. 그리곤 가지고 온 서류를 가방에 아무렇게나 밀어 넣고는 말없이 바로 인터뷰실을 떠나려 문을 연다.


그때 소장 스테판이 돌아선 그의 등 뒤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너 그 문을 지금 나가면 영원히 기장 못할 줄 알아, 이 나약한 XX야"


이 소리에 스티브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선다. 돌아선 그의 눈에는 분노에 가득 차 눈물마저 그렁그렁하다. 그가 소장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포효한다.


"스테판, 한 마디만 더 해봐! XX 버리겠어. 이 정신병자 XX야!"


모든 게 끝났다. 자리에서 짐을 챙겨 일어났을 때 그는 이미 이 회사에서 기장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 내뱉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되 갚어준 그 한마디 때문에 어쩌면 회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고개를 돌려 방을 나가려는 그에게 스테판이 갑자기 달려들었다.


순간 놀라 움츠린 그가 잠시 후 올려다본 그곳에 스테판이 짓궂은 소년의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축하해! 이제야 네가 이곳의 기장이 되기에 충분한 깡이 생겼구나! 행운을 빈다! CAPTAIN!


이어서 급히서명한 기장 추천서를 스티브의 손에 꼭 쥐어 주고는 아빠 미소로 악수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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