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에 대하여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타인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요. 교관도 자신의 정기평가는 불편해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더 나아가 브리핑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가능한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브리핑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늘 실시해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군대입니다
저도 군생활을 하면서 브리핑을 조금 해 보았습니다. 비행단의 영어 브리핑을 담당하였던 적도 있었고요, 인공강우 시험비행을 실시하고 참여한 기자단에게 임무 조종사를 대표해 임무 브리핑과 이후 개인 방송 인터뷰까지 했으니 이 부분 저도 담은 조금 있는 편입니다.
제가 목격한 최고의 브리핑은 단연 해군 작전사령부의 아침 작전 브리핑이었습니다.
절도 있는 동작과 군기가 가득한 해군 특유의 박력 있는 목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금일 황천~ “으로 시작하는 해군의 인상적인 브리핑에 저는 매번 넋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압권은, 해작사의 작전 브리핑에서 사용하는 매우 특별한 브리핑 봉입니다.
제 기억에 무려 길이가 최소 5미터는 넘을 엄청난 크기의 브리핑 봉을 역시 그만큼 거대한 상황판에 절도 있는 동작으로 한치의 오차나 흔들림 없이 매번 원하는 위치에 찍어 대는 놀라운 신공에 공군 연락장교였던 저는 혀를 내둘렀습니다.
해작사 작전 브리핑은 지금도 다시 보고 싶은 군기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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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군 조종학 생떼의 일조 브리핑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시간이었습니다.
냐약한 동물을 골라내 잡아먹으려는 독수리처럼 어슬렁 거리며 브리핑실에 들어서는 교관들 앞에서 일조 브리핑을 진행할 때는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학생으로서 가끔은 도박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금 전 중대장을 포함한 모든 교관들이 브리핑실에 들어섰습니다. 곧이어 전체 브리핑을 시작하기 위해 오늘의 DO 김중위는 중앙으로 걸어 나가 절도 있게 경례를 붙인 후 정면에 브리핑 보드로 곧바로 다가갑니다. 허리를 숙여 브리핑 봉을 집어 들어야 하는 찰나에,
그런데 늘 있던 자리에 있어야 할 브리핑 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브리핑은 미쳐 시작도 못한 채 오늘따라 몹시 심기가 불량해 보이는 교관 독수리들에게 살이 뜯길 위기에 처한 김중위는 여기서 도박을 겁니다. 죽거나 살거나.ㅋㅋ
조금의 말설임도 없이 교관과 동기들을 향해 바로 돌아서서는, 여전히 박력 넘치면서도 천연덕스런 목소리로
"금일!
브리핑 봉이 미쳐~ 준비되지 못한 관계로~,
본인의~ 손 까 락으로 대신합니다!"
그의 뻔뻔한 손가락 질에 기가 막혀서 모두가 웃느라
결국 김중위는 그날 무사했습니다.^^
끝으로 어느 최고의 브리퍼가 전한 '좋은 브리핑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마칩니다.
저와 한때 공부를 같이 했던 그는 미 합참의장의 브리퍼였습니다.
그에게 매번 브리핑에 들어가기 전 평균적으로 몇 번 연습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대답은
"한~ 백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