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갑자기 시작된 눈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닥이 미끄러워서인지 예상보다 늦은 화물 로딩과 마지막 순간에 발생한 결함을 리셋해 클리어하느라 벌써 약 7분이나 계획된 출발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안 그래도 디 아이싱(날개에 쌓인 얼음을 제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추가 딜레이가 예상되는데 여기에 더해 푸시 백 직전에 클리어런스 딜리버리(비행허가를 발급하는 관제소)가 엉뚱한 활주로에 엉뚱한 SID(표준 출항 루트)를 준다.
이러면 조종사는 어쩔 도리가 없다.
풀려던 파킹 브레이크를 그대로 두고, 점잖게 관제사에게 사정을 한다.
보통 에어라인 조종사들은 클리어런스 딜리버리에 예상되는 활주로와 에스아이디 SID(표준 출항 절차)를 물어 FMS에 루트를 선택하고 이에 맞게 해당 활주로에서의 이륙성능 계산과 입력 그리고 이륙 후 루트와 고도 속도 제한을 모두 리뷰한다.
이 과정에 통상 약 1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아무리 빨리한다 해도 5분 안쪽에 이 모든 절차를 다시 하기는 힘들다.
"지금 그 활주로와 출항 절차는 아까 주었던 것과 다릅니다. 처음에 줬던 활주로로 모든 준비가 되어있어요. 원래 주었던 활주로와 출항 절차를 쓸 수 있도록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쓸데없는 짓이다. 대부분 대형공항에서 이런 노력은 전혀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노이즈 어베이트먼트(Noise Abatement 소음방지 절차)때문에 안돼요."
이탈리아 여자 관제사 특유의 영어 엑센트에 더해 그녀가 지금 변명의 이유로 든 '노이즈 어베이트먼트'라는 단어가 마치 양은 냄비 뚜껑을 손톱으로 긁듯 지나갔다.
속으로 '그 노이즈 어베이트먼트는 30분 전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왜 지금에 와서 갑자기 들먹이는 거야!' 하면서도 참는다. 관제사와의 언쟁은 부질없다.
눈 내리는 활주로에서 활주로 변경은 흔한 일이다. 몇 년 전에 모스크바 도모도데보에서는 활주로가 자그마치 세 번이나 변경된 일도 있었다.
관제사가 이 와중에 재촉을 한다.
"푸시 백 넘버 투입니다. (곧 푸쉬벡 허가를 주겠다는 뜻)"
"우리 못 가요. 10분 지연될 겁니다. 이곳에 FMS와 성능 계산 브리핑 모~~ 두 다시 해야 해요!"
화났다는 얘기를 이렇게 에둘러한다.
추운 날 아래에서 이미 대기 중인 지상직원들에게도 양해를 구한다.
"활주로가 바뀌어서 우리 셋업을 다시 해야 해요. 미안합니다. 5분만 기다려주세요."
그 5분은 최선을 다해 서둘러했을 때 얘기다. 서두르면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부기장을 돌아보며,
"천천히 하자. 우선 FMS에 활주로와 SID 바꿔주고 그다음에 성능 계산을 먼저 다시 한 뒤 FMS에 입력까지만 하자. 거기까지만 여기서 하고 변경된 출항 브리핑은 디아이싱 패드에 가서 용액 뿌리는 도중에 하자. 딜레이를 줄일 수 있을 거야."
푸시 백은 예정보다 13분 지연되었다.
앞으로 약 30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디 아이싱(항공기 날개에 얼음을 제거하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 조종실 창 밖에 내리던 눈이 잠시 그쳤다.
지금까지 스트레스 레벨 40%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