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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Jul 11. 2021

기장의 배려

“기장님 서류 가져가도 될까요?”

모든 승객의 탑승이 완료되고 화물 로딩도 거의 끝나갈 무렵에 지상직원이 들어와 서류를 요구한다.

서류를 건넨 후 그를 보내고 나면 사무장이 곧바로 조종실로 뛰어 들어오다시피 한다.

“L1 Door 닫아도 될까요? 기장님?”

그녀는 지금 빨리 문을 닫고 이륙 전 절차를 진행하고 싶어 조바심을 부리고 있다.

“네. 닫아도 좋습니다. 출발하시죠!”

그런데 이 상황에서 직전에 관제사로부터 항공기의 푸시 백이 약 30분 지연될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문을 열어둔 채로 게이트 브리지가 연결된 상태로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문을 닫고 브리지를 땐 상태로 푸시 백 허가를 기다려야 할까?

기장인 내 생각은 늘 동료 직원들에게 어떤 결정이 가장 호의적일까를 생각한다.

브리지가 연결된 상태로 문이 열려있다면 기장인 나로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안심이 된다. 그 사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슬라이드를 팽창시켜 승객을 대피시키지 않고서도 안정적으로 승객들이 걸어서 터미널로 대피할 수 있다. 정비 문제가 벌어져도 바로 정비사를 탑승시켜 수정하고 출발할 수 있으니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반면에

문을 닫고 30분을 기다리면 캐빈은 그 사이 더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고 게이트 직원은 다음 게이트로 이동해 다음 일을 볼 수 있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 게이트 직원들이 승객들의 눈을 피해 직원들  통로 계단에 앉아 햄버거로 점심을 때워야 하는 비참한 일도 생긴다.
객실 승무원들이 충분히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며 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허겁지겁 쫓기듯 일을 하게 된다.

생각이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이 일이 기장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브리지가 떨어진 항공기를 푸쉬백하기 위해 주기장에서 대기하는 지상요원들에게 마찬가지다.

“우리 푸시 백이 30분 정도 지연될 거랍니다. 차 안에 들어가 계시다가 제가 택시 라이트로 신호하면 그때 돌아와 주세요.”

서울대 청소 노동자의 사망에 얽힌 모욕과 벨기에 대사 부인이 청소하시는 분의 도시락을 발로 걷어차고 뺨을 때렸다는 뉴스를 보고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대다수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베풀고 배려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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