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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Jul 13. 2021

세계의 관제사들

길게는 8시간 동안 우리는 항공기가 지나치는 여러 나라의 관제사들과 대화를 이어간다.

"앙카라 컨트롤, 좋은 아침입니다. Dream Air 777 고도 3만 7천 피트입니다. "
"Dream Air 777 안녕하세요. 앙카라 컨트롤입니다. 고도 3만 7천 피트 유지하시고 다음 위치 보고는 보남(BONAM)에서 하세요."

통상 아무 문제없이 비행이 진행이 되면 관제사와 조종사는 처음 진입할 때 한번 그리고 그의 책임 관제구역을 벗어날 때 한번 단 두 번 인사를 나누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이는 얼마인지 얼굴은 어떻고 무슨 옷을 입었는지 혹시 결혼을 해서 아이들은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서로를 지나친다.

어제 코펜하겐을 이륙해서 폴란드의 바르샤바 관제구역을 지날 무렵에 그곳에는 아주 커다란 뇌우 구름이 항로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앞서가던 다른 민항기들이 하나 둘 폭풍을 회피하기 위한 경로 변경을 요구하고 있었다.

"바르샤바 콘트를, 터키쉬 235, Request Right Turn Heading 110 to avoid weather."
(악기상을 피하기 위해 우선회 헤딩 110을 요구합니다. )

여기까지는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관제사의 멘트가 일상적이지 않았다.
"터키항공 000 우측 선회 헤딩 110을 허락합니다. 그런데 이미 헤딩이 110 이시네요. 다음엔 선회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요청을 해주세요."

터키항공 조종사는 급했던지 이미 항로에서 벗어나 헤딩을 110으로 돌린 후에 '사후 요청'을 했다는 이야기다.

폴란드 바르샤바 관제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분명하게 조종사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통상 조종사들이 관제사를 부를 때는 순항고도 변경의 허가를 구하거나 이번처럼 항로상에 버티고 있는 악기상을 회피하기 위해 헤딩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우리의 777이 터키 앙카라 비행정보 구역을 벗어나기 약 5분 전, 기장이지만 라디오를 맡고 있던 나는 이번에는 중앙 VHF RADIO에 127.8을 선택하고 이번엔 조금 색다른 관제소를 불렀다. 항공기는 곧 이란 영공에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에어 디펜스, 에어 디펜스, 드림에어 777입니다."
"드림에어 777, 이란 방공통제소입니다. 말씀하세요."
"드림에어 777은 현재 고도 3만 9천 피트 코펜하겐을 출발해 목적지는 두바이, 항공기 등록부호는 A6-000. 현재 트렌스폰더 코드는 1615로 예상되는 영공 진입시간은 0000입니다."

이란은 외국적기들이 매번 영공에 진입하기 전에 이렇게 공군의 방공통제소에 직접 교신해 진입 허가를 얻어야 한다.

미국과의 지속적인 외교갈등을 겪고 있으며 더불어 지역 내의 군사적인 긴장이 오랜 시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 필요성에 수긍이 간다.

우리가 이란 영공을 2시간 여 비행한 뒤에 마침내  목적지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어디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교신음이 들렸다.

"혹시 여기 이탈리아 사람 있어요? 유로컵 경기 결과 궁금하지 않아요?"

처음엔 누군가 비상주파수에 장난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곧 질문을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테헤란 컨트롤 관제사라는 걸 알았다.

"혹시 여기 유로컵 경기 결과 알고 싶은 분 있나요? 방금 끝난 이탈리아와 잉글렌드 경기 결과를 알려드릴 수 있어요."

여기저기서 조종사들이 바로 관심을 보였다.

"이태리가 승부차기 끝에 이겼어요. 승객들에게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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