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어느 아프리카 공항에 777 화물기를 몰고 들어가는데 착륙하고 보니 카고 터미널 주기장이 가득 차 있어서 잠시 대기를 해야 했다.
이윽고 모 항공사의 787이 푸쉬백하는 빈 공간에 우리가 바로 진입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787은 Long push back 하세요. 777 이 들어갈 수 있도록 나온 곳을 클리어하세요.”
관제사의 롱 푸쉬벡 지시에 터그 카가 조금 더 뒤로 787을 미는가 싶더니 무슨 생각에선지 어정쩡한 곳에서 그만 멈춰 서 버렸다.
앞으로 나아가려 파킹 브레이크를 풀려다 말고 답답한 마음에 직접 라디오를 잡았다.
“787은 좀 더 밀어주세요. 불안합니다.”
이때는 들어서던 나의 777과 푸쉬백한 787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Face to Face)이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살짝 기분이 상했는지 상대방 조종사가 램프 관제사에게
“램프, 그쪽에서 보기에도 우리가 부족해 보입니까? 더 밀어야 해요?”
외길(One Way)이라 내가 스탠드에 들어가 길을 안 내어주면 자신도 못 나가는데 말이다.
그때 들었던 생각.
내가 턴을 하다 바깥쪽 윙팁으로 그 어두운 밤에 787의 얄밉게 생긴 노즈를 횡으로 잘라내면 그제야 정신이 들까?
일이 잘못되면 나야 ‘정직’ 정도이겠지만 그쪽은 생명이 위험할 텐데 왜 고집을 부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관제사의 대답은
"787은 뒤로 더 미세요."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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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아시아나의 777.
수직 꼬리날개와 주익의 양쪽 윙팁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