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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08. 2022

후류가 무서워


이제 막 세스나로 자가용 과정 비행훈련 중이거나 교관으로 타임빌딩을 하고 있는 후배들을 만나면 꼭 전하는 말이 하나 있다. 


"여러분은 지금 조종사 경력 중에 가장 위험한 기종을 몰고 있다. 대형기 뒤에 들어갈 때엔 후류를 정말 조심해야 한다."


공군에서 비행하면서 3번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중에 하나가 대형기 후류에 말려 추락할 뻔 한 날이었다. 여수에서 이륙하다 C-130 후류에 들어가 하마터면 활주로를 이탈해 바다에 추락할 뻔했다. 


어제 다녀온 몰디브의 말레 공항도 대형기의 후류 문제 때문에 새로 활주로를 만들어 두고도 아직까지 쓰지 못하고 있었다.


말레 공항이 들어선 곳은 몰디브에  가장 큰 섬으로, 이곳에 간신히  3000미터 정도 되는 활주로 하나를 만들어 두었지만 기존에는 택시 웨이가 없어서 착륙한 항공기는 활주로 끝까지 가서  돌려 다시 활주로상에서 택시해  주기장까지 들어와야 했다.  777 같은 대형 여객기 한대 착륙시키려면 족히 10분이 넘게 다른 항공기들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최근에 중국의 자금을 빌려 기존 활주로 옆에 이젠 A380도 이용할 수 있는 더 큰 신 활주로를 완공했다. 


어제는 이 신 활주로가 완공되고 처음 들어가는 날이어서 나름 기대가 컸다. 


예전 속초 공항을 처음 만들었을 때 CN235를 타고 들어가 타이어 자국 남겨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비행준비를 하면서 살펴보니 착륙은 그대로 서쪽 구 활주로에 하고 신 활주로는 택시 웨이로만 쓴단다. 


언뜻 이해가 안 되었지만 어제 말레 공항에 막상 착륙을 한 후 신 활주로 위에서 택시를 해보니 수긍이 갔다. 


신활주로 바로 옆에 몰디브의 작은 섬으로 관광객들을 바삐 실어 나르는 "맨발의 조종사(Bear Feet Pilot) 들이  모든 수상비행기들이 사용하는 수상 활주로가 바로 인접해 있었다. 777의 날개 끝이 이 수상 활주로의 끝과  겹쳐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택시하고 있는 777 옆으로 이들 수상비행기들이 위태롭게 수면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커다란 부이 두 개를 바닥에 달고 관광객을 가득 채워 무거워진 수상기들이 간신히 고도를 올리고 있었다. 상승률이 채 1000 fpm도 나오지 않을 듯싶었다. 


기존의 서쪽 활주로는 이들 수상비행장과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어 수상기들이 대형기의 후류에 말릴 위험성이 적었지만 이제 신활주로는 상황이 다르다. 가까워도 너무 가깝다. 


이착륙 도중에 발생하는 윙팁 볼틱스나 엔진의 Jet Blast 뿐만 아니라 아이들(Idle)  파워 상태로 택시를 하는 777의 후류조차도 저 작은 수상비행기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신활주로가 완공된 지금도 말래 공항에서는 착륙하는 민항기들을 한 번에 모아서 줄줄이 착륙시킨다. 다른 내륙공항들처럼 착륙하는 항공기 뒤로 


"Lineup behind Landing Boeing 777"이라는 허가를 주지 못한다. 


서너 대를 모두 착륙시키고 나서  대기 중인 항공기에게 


이륙이 아니라 그제야  '엔진 시동 허가'를 준다. 


눈치가 빠른 분은 이해하셨을 것이다. 


민항기의 주기장과 구 활주로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엔진 시동을 하는 후류만으로도 착륙하는 항공기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류는 정말 무섭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일단 말려들면 그 후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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