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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Oct 22. 2022

못 갑니다.


그날은 이른 아침 콜카타에서 나오던 비행이었다. 출발 20분 전 막 급유를 마치고 엔지니어가 마지막 테크 로그 (Tech Log 정비 로그)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기장은 그즈음 조금 늦게 초조하게 부기장의 이머전시 브리핑(Emergency Briefing 비상 브리핑)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꼼꼼하게 비상 브리핑을 마치고는 마침내 그가


"지금까지 질문 있으세요?"


부기장의 이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그는


"미안한데 잠시만 기다려줘. "


그리곤 바로 점프 시트에 앉아 로그북 정리에 정신이 없던 엔지니어를 불렀다.


"미스터 엔지니어!"


그가 하던 이를 멈추고 바로 고개를 들어 기장을 바라보았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지금 이 왼쪽 라디오 알티미터(Radio Altimeter 전파 고도계) 상태에서 저는 안 갑니다. 분명히 다시 말씀드려요. 이거 안 고치시면 저는 안 갑니다."

마치 보잉의 유명한 슬로건, If it is not boeing, I am not going! (보잉이 아니라면 나는 가지 않겠소!)처럼 나는 "'I am not Going!"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난처한 표정을 짓던 인도인 정비사가 테크 로그를 자리에 잠시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기장석 Radio Altimeter의 고도계를 바라봤다. 지금도 여전히 수치가 반복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확인하더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버튼을 누르는 것이 보인다. 분명 정비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리라.


이 문제는 약 20분 전 처음 발견되었다. 한번 시스템을 리셋한 이후에도 스테이터스(Status 시스템 이상이 시현되는 페이지)에서 RADIO ALTIMETER L 메시지가 사라지지 않아 MEL을 적용해 디퍼(DEFER 정비 이월)시킨 직후에도 여전히 기장석의 전파 고도계가 불안정하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


"기장님. MEL 처리한 후에도 저렇게 고도계가 오락가락 하는 건 항공기 동체 밑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있을 수 있는 문제예요."


"미안하지만, 전 동의하지 않아요.  이런 지시계 이상은 이전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고쳐주셔야 합니다."


"정 그러시다면 지금 제가 밑에 내려가서 다시 상황을 보고 올게요."


그렇게 자리를 떴던 그가 돌아와서는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정비 로그를 완료를 하고는 그대로 내게 사인을 받으려 들이밀 기세였다. 그때 이를 우려한 기장이 미리 끊고 나섰던 것이다.


잠시 후 그가  본사 정비본부와 국제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기장님이 못 가겠다고 우깁니다. 좀 얘기 좀 해주세요."


전화를 건네받았다.


"네. 000편 기장입니다. 전 이 문제 해결 안 되면 못 갑니다."


"아 기장님, 다시 한번 현재 보이는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 기장석 전파 고도계가 계속해서 1500피트에서 마이너스 2피트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어요. 15년 동안 777을 타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


"알겠어요.  그건 분명 정상이 아닙니다. 기장님 현지 엔지니어가 제게 설명한 것과는 다르네요. 전화 바꿔주시겠어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잠시 후 본사 엔지니어의 지시를 받은 그가  오버헤드 서킷브레이커 페널을 만지작 거리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전파 고도 지시계가 양쪽 모두 -2피트를 정상적으로 지시했다.


문제가 있던 좌측 L Radio Altimeter 서킷 브레이커를 뽑은 것이다.


기장은 천천히 다시 한번 양쪽 지시계를 번갈아 확인하고는  


"감사합니다.  만족합니다. 이제 출발해도 되겠어요."


그가  정비 로그의 기장 Acceptance 란에  마침내 사인을 했다.


예정된 출발시간을 약 5분 넘긴 시간이다.


하지만 이 5분 역시 정비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닌 승객의 보딩이 지연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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