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동아리 MT였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게 출발한 구아정이 도착했을 때 회원들은 이미 매운탕을 끓여서 거나한 저녁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마당의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하려는데 민박집 아줌마가 설거지 뒤처리를 깨끗이 하라며 잔소리를 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이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늦게 온 벌로 아정과 같이 설거지 당번이 된 안수호가 무슨 생각인지 그릇을 겹쳐지지 않게 피라미드처럼 쌓더니 구아정의 손을 잡아끈다.
“비 맞으러 가자!”
“설거지는요?”
“빗물을 이용한 식기세척기! 방금 내가 만들었잖아.”
구아정은 까르르 웃으면서 빗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한참이나 빗속을 누비고 다니다가 안수호가 묻는다.
“이따가 같이 밤바다 보러 갈래?”
그때 수호의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것을 아정은 보았다.
“.... 나만? 안 돼요. 다른 애들한테 욕먹어. MT 처음 온 여자 후배들도 있는데”
아정은 단호했고, 수호는 설득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한다.
밤이 깊어지고 동아리 회원들이 하나 둘, 술기운에 나가떨어질 때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바닷가로 가는 그림자는 구아정이다. 흐릿한 달빛 아래 정박한 보트들이 보인다. 23호, 57호.... 배의 번호를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걸어가는데 무언가가 구아정의 팔을 확 낚아챈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구아정의 입술을 한 남자가 덮친다.
사장이 나와서 잔소리를 했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설거지하고 뒤처리를 안 하는 좀비들은 죽지도 않고 돌아다니지!
음식물 쓰레기는 꼭 짜서 저기 통에 집어넣고, 재활용 쓰레기는 깨끗이 씻어서 저쪽 통에 넣고......”
사장은 10년 전의 민박집 아줌마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4박 5일 동안은 전쟁이었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기획이었다. 술꾼들을 한 데 모아 놓다니! 진정 금주여행을 성사시키려면 술꾼과 비술꾼을 섞어 와야 했다. 그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끼니때마다 반주 대신 곁들여지는 꿀물에 참가자들은 진저리를 쳤다. 누군가 “이 좋은 데 와서 이 좋은 사람들과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없다니!”하고 탄식을 하자 그것이 마치 신호수의 나팔소리라도 된다는 듯 술꾼들의 거센 저항이 시작되었다.
도망을 치고, 펜션 사장을 매수하고, 꾀병을 부리고, 계약서를 찢고......, 사람들을 간신히 모아서 토론회라도 할라 치면 오가는 이야기는 결국 ‘기-승-전-술’이었다.
음주미수, 단체 이탈, 거짓말, 술 반입, 음주, 주정...... 갖가지 위반조항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음주선동’으로 벌금이 1회에 50만 원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다 벌어졌다. 안수호와 구아정이 기를 쓰고 탈선(?)을 막고, 민박집 사장 내외가 스파이 역할을 맡아 조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술꾼들의 술에 대한 집념은 기발하고도 처절했다.
4년 같은 나흘이 지나가고 네 번째 밤이 되었다. 알코올 결핍으로 초췌해진 사람들이 술이 없는 이 마지막 밤을 저주하며 몸부림치고 있을 때 지금껏 별 의견이 없던 50대 남자가 불현듯 나섰다.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술을 사랑할 뿐,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