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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Oct 23. 2024

18. 그곳에 가기 싫다. (1)

  하필이면, 하필이면 발령 난 곳이 T시였다. 거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석탄먼지 자욱한 탄광촌, 범죄율 1위의 우범도시, 인터넷이 안 터지는 두메산골, 그 어디라도 적응할 수 있었지만 T시만은 가고 싶지 않았다.


  T시가 어떤 곳이라는 걸 어릴 때부터 어른들한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맵고 짜고 구린내 나는 음식, 무지하고 뻔뻔하고 능글맞은 사람들, 역사상의 수많은 반역자와 사기꾼들이 나고 자란 곳, 대학 시절 제일 싫어했던 과대표의 고향.......

  그것 말고도 T시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아니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연히 지금까지 한 번도 T시에 가 본 적이 없으며, 사람을 만나다가도 T시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냉정히 돌아섰다. 더 만나 봐야 결과가 좋을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사과를 찾아가서 T시만은 안 되겠다며 사정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전화위복’이라고, 이 기회에 다 집어치우고 다시 교원 임용고시에 도전해 보라는 신의 계시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동료들은 미쳤다고 했다. T시로 가는 것은 말하자면 승진이었는데, 사소한 감정상의 이유로 요즘 같은 시절에 제 밥그릇을 차 버리다니.......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어디나 다 사람 사는 곳일 텐데, 다른 사람들이 다 이상해도 나 하나 스스로 책임지고 지키면 될 일인데, 지나친 과민반응으로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드는 걸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굳게 마음먹고 T시에 한 번 가 보자고, 가 보고 회사를 다니든 그만두든 결정하자고, 그렇게 마음먹고 두둥실 여행클럽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런 사연을 얘기하면서 서영진은 빵을 두 접시나 비웠다.

  “정말 혼자서는 갈 엄두가 안 나서요.”

  “이 아가씨가, 그런 델 혼자 가다가 강도나 사기꾼, 그런 놈들 만나면 어떡하려고, 아닐 말로 길을 잃었는데 강간범이라도 만나면 누가 책임져 줄 수가 있냐고.”

  입을 열었다 하면 막말이 쏟아져 나오는 나창수가 서영진을 상대하고 있었다.

  “정말요? 역시 그쪽에 그런 범죄가 많은 거죠?”

  서영진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게 아니라. 아가씨가 나이에 비해서 참 단순하고, 잘 속게 생겼단 말이죠. 딱 먹잇감으로 보이잖아요.”

  “어머머, 저 우습게 보지 마세요. 저 이래 봬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사회물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에요.”

  “바로 그게 문제예요! 나이를 먹었다는 건 험한 꼴 당해 봤다는 거고, 사회물 먹었다는 건 흙탕물을 마셔봤다는 건데 아가씨는 보아하니 그동안 너무 우대를 받으면서 살았어. 그래서 나이 헛먹었다는 말이 있는 거예요.”

 

  분명히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는데도 묘하게 통쾌했다.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갔다. 그래서 서영진은 이렇게 청했다.

  “그럼 아저씨가 저랑 같이 T시에 가실래요?”

  “하, 이 여행 별로 남는 것도 없고, 여자들 까다롭고, 귀찮은 일도 많고... 안 가고 싶은데... 그리고 자꾸 나한테 아저씨, 아저씨 하는데 남들은 안 그런다는 것만 알아둬요.”

  “아저씨가 자꾸 저한테 아가씨 아가씨 하니까 저도 아저씨라고 불렀잖아요.”

  “어? 듣고 보니 그 말에 일리가 있네... 자! 쓸데없는 거 가지고 옥신각신할 시간에 이 여행에 대해서 좀 발전적인 얘기를 해 봅시다. T시에 가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어요?”

  “다음 차를 타고 돌아오는 일?”

  “아, 이 아가씨 정말 삐딱하네? 역대급이야 아주.”

  상담이랍시고 이렇게 한참이나 티격태격하더니 결국 나창수는 서영진의 여행 매니저로 결정되었다. 두 사람은 아슬아슬하면서 묘하게 어울리는 조합이었고, 안내서의 약속대로 여행 비용은 20% 할인되었다.


  T시로 가는 고속버스에 오르자마자 역경의 시작이었다. 우선 그 냄새, 아마도 그쪽 사람들의 몸에 밴 음식 냄새였을 것이다. 아직 출발 전, 에어컨이 켜지지 않은 상태라 더 숨이 막혔다. 서영진이 옆자리의 나창수에게 물었다.

  “이 냄새 괜찮아요?

  “냄새요? 참아요. 한국 사람 냄새가 다 그렇지 뭐.”

  “난 못 견디겠는데.....”

  “그럼 창문을 좀 열든가”

그래서 창문을 반쯤 열었는데, 그러자마자 뒷자리의 남자가 서영진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던 서영진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뭐예요?”



  콕콕 찌른 손가락의 주인이 질질 끄는 말투로 충고했다.  

  “아가씨, 지금은 그렇다 쳐도 좀 있으면 에어컨이 켜지는 거 알죠? 그땐 창문을 닫아야 될 거요. 이 버스에는 지금 아가씨 말고도 35명의 승객이 타고 있으니까.”

  서영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흘깃, 뒤쪽을 쳐다보니 하늘색 땡땡이 무늬의 셔츠가 보였다.

  ‘세상에! 저 양아치 패션 좀 보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창수가 튀어나왔다.


  “이거 보세요, 하늘색 땡땡이! 사람한테 용건이 있을 땐 이렇게 말로 부르는 거예요. 손가락으로 찌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요. 그리고 창문 닫는 건 에어컨이 켜진 다음에 얘기해도 안 늦잖아요.”


  서영진의 속이 후련했다. 역시 여행 매니저를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땡땡이 무늬가 쩡쩡 울리는 목청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허, 이거 정말 야박하네! 내가 사람을 팬 것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신호를 좀 줬을 뿐인데, 그리고 나중 말할 것을 지금 말한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됩니까? 이거 어느 나라 헌법이 이렇게 살벌한가? 아주 그냥 일제강점기가 울고 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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