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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Oct 26. 2024

20. 그곳에 가기 싫다. (3)

  나창수 매니저가 펄펄 뛰었다.

  “거 봐요, 내가 사람 함부로 의심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의심이 눈을 가린 거 아냐.”

  변명할 수 없는 실수에 대한 벌로, 서영진은 딱 하루만 T시를 둘러보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사적지 몇 군데, 맛집 몇 군데를 들렀는데 다 그저 그랬다. 시큰둥한 기분으로 그날의 마지막 코스인 스크린골프장으로 갔다, 신장개업에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T시 최고의 스크린골프장 ‘잘나가’! 추첨을 통해 사은품을 드린다는....... 최근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서영진을 위해 마련된 스페셜 코스였다. 하지만 시설도 평범했고 설상가상으로 잘못 튄 공에 맞아서 머리에 혹까지 났다.     


  “저 그냥, 내일 아침에 일찍 서울로 돌아갈래요.”

  “도저히 안 되겠어요?”

  “네, 도저히...... 잘 됐죠 뭐. 분명한 답을 얻었잖아요. 이쪽은 다시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날 밤, 민박집 부부는 또다시 만리장성을 쌓았고, 또다시 잠을 설친 서영진은 날이 밝자마자 버스터미널을 향해 갔다.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또 아뿔싸!

휴대폰이 없었다. 방금 화장실에 갔다가 두고 나온 모양이었다. 허겁지겁 화장실로 가봤는데 그새 휴대폰은 사라지고 없었다. 서영진은 정말 T시에 없던 정까지 떨어지다 못해 학을 뗐다.

     

  “그럴 줄 알았어! 화장실 갔다 온 지 3분도 안 됐는데, 그새 그걸 집어가고! 낡은 휴대폰 훔쳐가지고 대대로 잘 먹고 잘 잘아라... 아, 연락처랑 사진들 다 어떡해, 짜증 나!”

  “그러지 말고 가방을 다시 찾아봐요. 지갑도 그 안에 있었잖아.”

  “이번에는 아니란 말이에요! 분명히 화장실에 두고 나왔다니까요.”     


  이번에는 정말 없었다. 물어 물어 분실물 센터에 가보니 허접한 물건들이 보란 듯이 진열돼 있었는데 정작 그것을 지키는 담당자는 없었다. 역시 T시 다웠다.

  분실물센터를 포기하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러 갔는데 경찰관이 하는 소리도 역시 T시 다웠다.

  “신고가 들어오면 연락드릴 테니까 여기 전화번호 하나 적어 놓고 가서 기다리세요. 우리 T시 사람들이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정 떨어지는 T시! 서영진은 다음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전화기를 찾기는 틀린 것 같고, 더 이상 머무르기도 싫었고 떠나며 뒤를 돌아보기도 싫었다.


  버스가 두 시간가량을 달리는 동안, 서영진은 내내 잠을 잤다. 이틀 밤을 설친  데다가,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확실히 얻은 덕이었을 것이다.      

  버스기사가 곧 휴게소에 들르겠다며 안내방송을 하는 사이 나창수의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여기 T시 경찰선데요, 전화기 찾았어요!”

  “네? 정말요?”

  “정말이지 그럼, 내가 잘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찾으러 오세요?”

  사정 이야기를 들은 버스 기사는 T시로 가는 반대 방향의 버스가 곧 휴게소에 들른다며 그 버스를 갈아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겠다고 생각했던 T시에 또다시 갈 수밖에 없었다.

나창수도 성가신 마음이 불쑥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여행지로 돌아가는 경우가 다 있네! 하, 이건 추가 비용을 톡톡히 청구 해야 되는데...”       


  전화기는 버스터미널의 분실물센터를 통해 경찰서에 들어와 있었다. 그 태평한 경찰관이 그래도 나름의 성의를 보인 모양이었다.      

  서영진은 요행히 되찾은 전화기를 움켜쥔 채 옆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시외버스에 올라 이번에는 무사히 T시를 벗어났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옷을 훌훌 벗었다. 어딘가에 묻어 있을 T시를 그렇게 탈탈 털어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서영진은 생각지도 못한 전화를 받았다. T시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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