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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Oct 30. 2024

21. 그곳에 가기 싫다. (4)

   유치한 팡파르와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네! 축하드립니다. 서영진 고객님! ‘잘나가 스크린골프’ 개장기념 사은축제...”     


  세상에, 경품에 당첨이 됐다는 거였다. 30년 가까운 서영진의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품이 마음에 들었다. 꽤 값나가는 퍼터를 키에 맞춰 준다니, 웬만하면 택배로 받고 싶었지만 그건 안 된다고 했다.

  ‘젠장, T시가 그렇지 뭐!’

  눈 딱 감고 가서 경품만 받고 그 즉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T시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니 또 한 번의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냄새는 처음보다 좀 덜했다. 그래도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새라 직선으로 자리를 찾아가,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이대로 세 시간 남짓만 참으면 될 일이다, 스스로 격려하며 가방을 그러쥐었다. 그때였다. 질질 끄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어엉? 이 아가씨 또 만나네?”

  분명히 자기에게 하는 말이었다. 슬그머니 눈을 떠 보니 하늘색 땡땡이무늬가 보였다. 낭패였다.

  “T시에 자주 가시네! 지난번에 그 노래방에 가 봤어요?”

  “아....... 네.”  

  노래방에 찾아간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땡땡이무늬를 잡아 지갑을 찾으려 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제야 땡땡이무늬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서영진의 뒤쪽 어딘가에 앉았다.    


  T시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T시에 오게 된 것이 세 번째였는데 처음 올 때 비하면 반도 안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또다시 땡땡이무늬가 말을 시켰다.

  “그럼 그때 그 식당은?”

  “아, 거기도 가보긴 했는데.......”

  “아, 거기 청국장 정식 죽이지요? 내가 먹어 본 중엔 거기가 최고야.”

  땡땡이무늬는 짧은 인사를 하고 제 갈 길로 갔다.     


  ‘잘나가 스크린골프’에서 퍼터를 받고, 기념사진도 한 장 찍은 뒤, 더 지체할 생각은 없었다. 서둘러 버스를 타러 가는데 몹시 배가 고팠다. ‘요기만 하고 떠나야겠다’ 하자 땡땡이무늬가 생각났고,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들며, 그를 잡으려고 갔었던 식당을 다시 찾아갔다. 식당은 전에 묵었던 민박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맛깔난 밥상을 받아 청국장 정식을 싹싹 비웠다. 그 식당은 정말 ‘또 오고 싶은 집’ 첫 장에 꼽을 수 있는 곳이었다. 먹는 김에 괜히 맥주까지 한 병 곁들였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몸이 노곤해졌다. 근처의 민박집 부부는 오늘도 만리장성을 쌓을까 슬그머니 궁금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서영진은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여기 온 김에 집 좀 알아보고 내일 가려고.”

  “뭐어?”

  아빠는 큰 사고 소식이라도 들은 듯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한숨을 ‘휴우’ 내쉬었다. T시라면 질색했지만 그렇다고 딸에게 ‘T시로 전근을 가느니 회사를 때려치우라’는 말도 차마 못 해 끌탕을 하고 있던 아빠의 목소리가 축 내려앉았다.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가 딸 하나 제대로 지원을 못 해 줘 가지고, 어떤 덴 줄 알면서도 말리지를 못하고... 그래도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라. 정말 견딜 수 있겠어?”


서영진은 웃음이 피식 터졌다.

  ‘참나... 아빠 선입견은 알아줘야 된다니까.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감상적일 건 뭐야?’

서영진이 약간 어색해하며 전화기 건너편의 아빠에게 말했다.  


  “몇 번 와 보니까 뭐, 그런대로 괜찮아.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 뭐. 그러지 말고 아빠도 한 번 와 봐!”      


<여행자 인터뷰>

사실 환불청구를 할까, 심각하게 생각했었어요. 나창수 매니저 때문에 불쾌하거나 창피한 일이 많았거든요. 그렇지만 어떡하겠어요? 참았죠. T 시도 참았는데 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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