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양이 Nov 08. 2024

25. 엄마라는 사람들 (4)

 ‘아! 수호가 왔다!’

  송기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라면 뭔가 어떻게든 해 낼 것이기에.......      


  안수호는 우비도 없이 펜션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고 잠시 후 펜션이 밝혀졌다.

  엄마들은 전깃불이 켜진 것을 본 뒤, 하나 둘, 그 전깃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걸레처럼 물에 흠뻑 젖은 채 ‘휴우!’ 한숨을 내쉬는 안수호를 구아정은 망연자실 바라보다가 간신히 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어, 어떻게 왔어? 멀잖아..."

  “수호 형 전기기사 자격증도 있어요?” 진태우가 물었다.

  “당연하지 인마! 자격증이 50개가 넘는데 그게 없겠냐?”

  송기석이 큰소리쳤지만 사실상 안수호에게 전기기사 자격증은 없었다.

  안수호도 전기가 들어와 펜션을 밝힌 이후에야 그걸 깨달았다.


  ‘아, 맞다,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어야 하는데, 그걸 빼먹었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맑게 갠 아침, 그날의 프로그램은 심리검사로 시작됐다. 엄마들이 스스로 자신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알고 있어야만 아이의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마련된 시간이다. MBTI 검사 뒤에는 심리상담사와 참가자들의 개별 면담이 진행되었다.

  엄마들과의 개별 면담을 마친 심리상담사는 펜션 뒤편으로 송기석을 불러냈다.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 한 대를 말없이 다 태운 뒤, 심리상담사는 입을 열었다. 혀가 쩍쩍 갈라지는 듯 팍팍한 목소리였다.


  “아, 씨... 나 왜 불렀냐? 지금 저 엄마들한테 필요한 건 본인들 심리상담이 아니에요. 차라리 무속인을 초빙할 것이지. 그랬으면 과거의 일 미래의 일을 원하는 대로 알아맞혀 줬을 거 아냐, 아, 기 빨려...”


  심리상담사의 헌신 덕분이었는지, 그날의 프로그램은 ‘학부모와 수험생의 자존감 성장‘이라는 토론으로 건전하게, 무사히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모두들 동병상련에서 비롯된 동지 의식으로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전날부터 속이 안 좋아 창백한 얼굴로 앉아있던 성규 맘의 폭탄 발언만 아니었다면 그 세미나에 대한 기억은 ’ 화기애애했음‘ 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다 좋은 얘긴데, 솔직히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어차피 다 알게 되실 테니, 제가 한 가지 알려드릴까요?”

계속 말도 없고 기운도 없던 성규 맘이 뜻밖의 발언을 시작하자, 엄마들의 눈과 귀는 한순간 집중되었다.


  “저 임신했어요.”


한 순간 정적, 그리고 이내 여기저기서 예의성 반응들이 튀어나왔다.

 “어머... 축하해요.”

 “어쩐지... 아이고 몸은 괜찮아요?”

 “참 대단하시다. 성규 맘이나, 아빠나!”

 그중에 미처 필터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이런 반응도 있었다.

  “어머! 어쩌려고 그래? 실수한 거죠? 성규랑 대체 멸 살 차이야? 열여덟 살이잖아.”

 성규 맘은 주위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또박또박 말했다. 거의 투사의 기개를 보는 듯했다.

  “실수 아니고요, 내 존재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내가 택한 거예요. 엄마들, 일 년 뒤를 상상해 봐요. 지금만큼 큰소리 내면서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몇몇 엄마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더 이상 토론은 이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프로그램은 ’ 화기애애‘가 아니라 ’ 내 존재가치와 임신‘으로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이전 25화 24. 엄마라는 사람들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