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진학상담’.
아무에게나 안 알려준다는 알짜정보들이 전수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1박 2일의 세미나는 사실 딱 이 시간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들은 강사의 토씨 하나를 놓칠 새라 숨죽여 듣고 녹화하고 메모하는 중이었는데 그 긴장되고 엄숙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깬 목소리는 역시 민수엄마의 것이었다.
“잠깐만요! 우리 비싼 회비 내고 선생님 모셨고,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정보는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외부 사람이 들어와 있잖아요.”
엄마들이 웅성웅성 세미나실을 둘러보니 거기에 딱 한 명 이질적인 얼굴이 있었다. 식사 준비를 하던 아이였다.
아이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고 ‘죄송하다’는 말을 다 못 끝낸 채 문밖으로 튀어나갔다. 회장은 덩달아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속으로 ‘저 속물......’하며 아이를 따라 나갔다.
문안에서 고급정보가 쏟아지는 동안 회장은 문밖에서 아이와 함께 있었다.
“너도 공부 좀 해서 대학교 가지 그래? 공부하면 잘할 것 같은데.”
“아뇨, 전 아직 생각 없어요. 그냥 신기해서 구경했을 뿐이에요.”
“그래도 꿈을 버리기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잖아.”
“꿈이요? 저 꿈 있어요.” 그 순간 아이의 눈빛이 더욱 맑아졌다.
“아, 그래? 미안...”
회장이 어쭙잖은 충고를 얼른 거둬드리자 아이가 말을 이어갔다.
“엄청나게 큰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한테 우리 회사 음식을 나눠 줄 거예요. 외국에서 월드컵 같은 거 할 때.”
알고 보니 아이는 케이터링 회사 사장의 딸로서 자기의 꿈을 한 걸음씩 이루어 가는 중이었다. 회장은 자기 아이와 같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불쌍하고 한심하게 여겼던 자기 자신이 불쌍하고 한심하게 여겨졌다.
세미나는 휴식과 단합을 겸한 야유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로 되어 있었다. 세미나 장소에서 한 시간 떨어진 목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고 두둥실 여행클럽 으로써는 준비하느라 품이 가장 많이 들어간 순서였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되자 참가자들이 몸을 빼기 시작했다. 누구는 집에 일이 있어 먼저 떠나야겠다고 했고, 누구는 몸이 안 좋다고 했고....... 명목은 그랬지만 모든 엄마들이 서로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수험생 곁을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불안하고 불길하고, 책임을 방기하는 듯한 자책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리라.
결국 다수결에 의해 야유회는 취소되었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세미나는 그렇게 끝났다. 수지맞는 장사인 줄 알고 시작했던 이번 여행도 여행사로서는 적자였다. 보안유지와 안전사항 등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민수맘이 일정액 환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저런 속물......’
여행사에 미안해진 회장은 그 대신 다음번 여행을 의뢰했다. 입시를 끝낸 엄마들이 ‘자기’를 찾게 되는 여행. 아이를 통한 존재의 확인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되는 여행.
참가자가 몇 명이 될지 아직은 말할 수 없었다.
저도 이런 모임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남들도 다 하는 걸.
정말 이렇게 유난 떠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게 한심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남들도 다 하는 걸, 나만 안일하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나쁘게 보지 마세요. 애들 내팽개치는 엄마들도 많은데, 우리는 책임감 있는 엄마들이에요.
회장이 바뀌었어요. 민수 맘이 신임회장이죠 뭐, 차라리 잘 됐어요.
그런데 정전됐을 때, 여행사 사장이 그때 뭐라고 소리 지른 거예요? 못 들었어요?
그게 계속 궁금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