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만나
떠나는 자가 있으면, 남는 자가 있다.
"진짜 가? 진짜 가는 거야?"라고 몇 번이나 묻는 남편. 사실 그도 그럴 것이 3년 넘도록 인천공항 구경도 못해보았지 않은가.
3년 전 호주 1년 살이 가려다 1차 실패, 작년 남편 안식월을 기념하여 한 달 유럽여행을 예약했다가 오미크론으로 2차 실패. 그렇게 이번이 3번째 탈출 시도였으니, 나 역시도 정말 갈 수는 있을까. 묻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 게 아닐 터이다. 아마 되묻는 건지도 모르겠다. 날 두고 진짜 가는 거냐고.
일주일 전부터 와이프가 집에서 가장 큰솥에 곰탕을 끓이기 시작했고, 집에 햇반이 한 박스 도착했으며, 냉털을 하겠다며 매일 집밥을 권유한다? 이제 진짜 그의 독거남 라이프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겨우 한 달인데 뭐,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한 달을 남편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편치는 않다. 주말부부도 몇 달해 보았고, 외국출장이니 제주살이니 하며 자주 떨어져 보았지만, 떠나는 쪽보다 남는 쪽이 더 공허함을 잘 알고 있다. 좋은 계절도 아니고 그가 제일 싫어하는 이 겨울, 해가 짧고, 기록적인 한파라는 날씨에 아침에 커피 내려주는 와이프 없이 혼자 출근을 할 모습과 집에 돌아와 서둘러 보일러와 거실 조명을 켜고 적적해할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애써 미안함을 달래 보려고 아이들 캠프 끝나는 셋째 주쯤에 회사에 별일 없으면 한 일주일 휴가 내고, 호찌민으로 와!! 가족여행 하자~~ 이야기했지만, 사실 서로가 잘 알고 있다. 어디 회사 휴가 내기가 그리 쉽나.
다행히도 그는 종종 입을 삐죽거리긴 했지만, 이왕 가는 거 많이 즐기고 재밌게 지내고 오라고 아이들에게 자주 이야기해 주었다. 나한테는 너무 신나지 말라고.. 하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 보내보는 수밖에 없다.
남편이 한 달 동안 오랜만의 싱글라이프를 만끽하도록 응원해 줄 생각이다. 주말 밤, 아이들에게 채널권을 뺏겨 귀멸의 칼날이나 아는 형님을 보는 대신 좋아하는 영화 보며 맥주도 실컷 마시길. 빨래를 몽땅 걷어와 거실에 쌓아두고 무언의 압박을 주며 빨래를 개라고 하는 와이프 없는, 산뜻한 주말 보내시길. 키즈카페나 이마트가 아닌 좋아하는 곳에 가서 자신의 취향을 고취시키는 여가시간을 보내시길.
출국 전날, 각자의 일상을 보내다가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집에 있던 나와 딸은 동네 이자카야에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았고, 태권도를 마친 아들과 서둘러 퇴근한 남편이 줄줄이 도착했다.
마치 동네 친구들 번개 해서 모이듯, 이렇게 밖에서 약속으로 잡고 만나니 새로운 기분이었다.
얼어 죽을 날씨여도 시원한 생맥주를 시켜 남편과 원샷을 하고, 당분간은 먹기 힘들 회나 실컷 먹자며 이것저것 원 없이 시켜 먹었다. 망고를 100개쯤은 먹고 올 거라며, 수영은 얼마나 신날지, 외국친구들과는 어떻게 친구가 될지 들떠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떠나기 전의 설렘이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말은 틀림이 없는듯하다.
그렇게 이른 망년회 겸 결의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좋다. 큰 문제없이 준비를 마친 것도, 서로가 응원주는 기대되는 한 달도, 이렇게 불쑥 커서 밖에서 친구처럼 만날 수 있는 아이들 덕에 한달살이도 수월 할 것 같아서 그냥, 다 기분이 좋다. 아마도 사실은 한잔해서 기분 좋은 거겠지만^^
아이고 추워!! 어깨를 한껏 움츠리며 얼어버린 길을 끄는 듯 걷는 듯하며 집으로 돌아오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제 내일 비행기를 탄다는 거지? 가면 거기는 여름나라라는 거지? 반팔을 입고 수영을 한다는 거지?
아!!!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