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후 바뀐 생활

느리게 사는 것에 익숙해 지기

by 레드베리Red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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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천천히 사는 법


암투병 이후, 나의 삶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몸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느려진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내 삶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생활 전반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바뀌었다. 예전에는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당연했고, 멈추는 것은 뒤처지는 일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생겨났다.


과거에는 ‘해야 할 일’에 대한 강박과 ‘목표 지향적’인 삶에 갇혀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하면 스스로를 탓했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하루 전체가 실패처럼 느껴졌다. 초조함과 조급함은 늘 나의 곁에 붙어 있었고,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러운 감정이 되어버렸었다. 빨리 먹고,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는 것. 그리고 그 사이를 빈틈없이 채워 넣어야만 비로소 ‘제 몫을 하는 삶’이라고 믿었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고, 생산적이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을 할때도 쉴때도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대로 이끌어 내는 것이 삶의 중요한 가치였었다. 쉬더라도 못하던 것을 하면서 의미 있게 알차게 쉬고 싶었고, 혼자 있는 시간에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욱여넣거나 뭘 보면서 읽으면서라도 계속 생각해야지만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얼마나 나를 지치게 만들었는지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성과를 좇는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단해 보일지 몰라도, 그 안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오히려 잠시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문득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 배우가 했던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그 말에는 어딘가 낯설고, 약간은 아이러니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계획’이라는 것을 단단히 붙잡고 살아야만 안정된 삶이라고 믿었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나 자신을 끼워 맞추며 하루를 밀어붙였다. 그래서 조금만 어긋나도 쉽게 흔들리고, 좌절하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더 많이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야 할 것을 리스트업하고 그것들에 맞춰 생활하다 보면 더 많이 할 것들이 늘어나게 되며 더 빠르게 압축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몸이 세팅이 되어 어느 순간 몸이 굳어 가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매일을 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투병을 하고 이제는 반대로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억지로 배운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이게 된 방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나를 살리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거창한 계획 대신, “오늘 날씨가 좋은데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갈까?”, “아니면 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까?” 같은 아주 작은 선택들에 귀를 기울인다. 어떤 날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또 어떤 날은 미뤄두었던 드라마를 정주행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한다. 그 시간들이 예전 같으면 ‘낭비’처럼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아주 오래전 미취학 아동일 어린이였던 시기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나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평온함을 경험하고 있다. 몸이 보내는 시그널에 더 귀 기울이게 되었고, 피곤하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슬프면 그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조금 더 존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과연 다시 뭔가를 할 수는 있을까?" 라는 질문이 문득문득 고개를 든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삶이 무책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겪었으며 너무 애쓰지 않기로 하자고 생각했다. 미래를 설계하려 했던 과거의 나조차도, 그 계획 밖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또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리 앞당겨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배웠다. 미리 수립한 계획에 억지로 맞추려 하면, 과거처럼 스스로를 다그치고 상처 주는 일만 반복할 뿐이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방향’ 정도만 느슨하게 잡아두고, 그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려고 한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한다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상황이 바뀌고 반대가 된 지금의 ‘덜어낸 삶’은 생각보다 심심하지 않고 가볍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나니, 비워진 자리에는 숨 쉴 공간이 생겼다. 해야 할 일로 가득 찼던 하루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하루를 살아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때로는 1인분의 삶을 해내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에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예전 같으면 자책으로 가득 찼을 순간들이, 이제는 ‘그럴 수도 있는 하루’로 지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늘 평온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생산적이지 않고 놀고 있는 백수가 되어 아무것도 안하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라고 생각하며 오는 불안함과 그로 인해 생기는 감정들도 분명 존재한다. 때로는 이유 없이 예민해지고, 작은 일에도 마음이 요동칠 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발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30년, 40년을 더 살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때때로 불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 불확실함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그 불확실함을 안고도 살아가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이유로 오늘을 불안 속에서 보내기보다는, “오늘이 괜찮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더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을 조금 더 천천히 살아가려 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찮고, 뚜렷한 성과가 없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오늘 하루 숨을 고르고, 따뜻한 햇빛을 느끼고, 가끔 사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살아낸 하루라고 인정해주려고 한다.


아직도 나는 어떻게 덜어내야 하는지, 어디까지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그리고 어떤 것만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그 경계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전보다 훨씬 나 자신에게 관대해졌다는 것이다.


삶은 더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비워내는 과정이라고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고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여러 책과 강연들을 보며 보고 들어 알고 있었지만 비워내야지 하면서도 많은 것을 놓아주지 못하고 움켜잡고 있었다. 어떻게 비워내고 놔 주어야 하는 지 애매했다. 멍때리면서 아무것도 안해야하는 것인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더 버리면서 눈 앞에 보여지는 것을 비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보다 게으르게 행동하면서 해야될 것을 좀 더 천천히 하면 되는 것인지 명확히 알수는 없다. 모두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씩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매일매일 하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나에 대해서도 다른 면을 더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은 암생존자로 정상인(비환우)들과의 관계와 마음가짐을 정립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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