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놈(記者)'이다. 교사(敎師), 의사(醫師)처럼 '스승'도 아니요, 변호사(辯護士) 같은 '선비'도 아니다. 더군다나 판사(判事)나 검사(檢事) 같은 '벼슬아치'도 아니다. 그냥 기록하는 놈이다. 어디서든 굴러먹는다. 밑바닥 민심부터 가장 높으신 분들의 옆자리까지 앉아서 순간을 기록한다.
기록은 역사가 되고, 기록으로 역사를 바꾼다. 세상을 바꾼다. 저널리즘의 근본이다. 그냥 내 생각이다. 나는 언론학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저널리즘의 개념도 잘 모른다. 그냥 기자를 해보니까 그러하다.
그런데 가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언론이란 게 참 '갑'인가 보다. 항상 어느 자리에서 누굴 만나던 '갑'의 위치이다. 모든 사람들이 기자 눈치를 본다. 그러다 보니 마치 뭐라도 된 양, 어떤 권한이라도 가지고 있는 양 착각을 하기 쉽다. 그로 인해 오만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갑질 하는 기자들이 존재하고, 그래서 기레기가 탄생한다.
나 또한 그래서 기레기 소리를 피할 수 없었나 보다. 어느 순간 몸에 익숙해진 갑의 위치, 오만과 아집, 이러한 것들이 기자 삶의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한 것이다.
PC방 전원 차단 기자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위 잘 나가는 기자였다. 주요 출입처들에서 특종도 많이 해봤고, 사회와 회사에 큰 기여도 했다. 상도 받고, 칭찬과 존경도 받았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자만에 빠질 때쯤, 내 인생의 바닥을 찍었다. 명예는 끝없이 추락했다. 평생 먹을 욕도 다 먹어 봤다.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영생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면제도 먹었다. 대인기피증도 생겨 그 좋아하는 술자리도 가까운 지인과만 함께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 안간힘을 썼다.
어느 날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너 기자 왜 됐어? 누구를 위해 일할 꺼야?"
내가 종종 후배 기자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 해주곤 했다.
"나는 말이야 내 뉴스가 나가는 그 순간 TV 앞에 앉아 있는 오직 그 사람들을 위해 뉴스를 만든다"
나의 영달을 위해서도 아니요.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기 위함도 아니다. 그냥 내 뉴스를 보기 위해 TV와 스마트폰 앞에 앉아 있는 그 사람들을 위해, 오롯이 내 뉴스가 필요한 사람들만 위해서 기사를 쓴다. 누군가는 내 뉴스를 원할 것이고, 속 시원해하거나, 기뻐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내 뉴스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사를 쓴다.
결국 진정성이다. 마음은 기억을 바꿀 수 있다.
나를 내려놓는다.
내 나이 마흔셋. 머리를 빡빡 밀었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갔다. 일명 '도깨비 부대' 특전사 공수부대다.
대리 기자 기획 단계부터 하려 했었던 콘텐츠 '대한민국 특수부대'를 추진했다. 특수전사령부 대원들의 강인함과 과학화된 훈련과 전투장비를 국민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다. 옛날 개구리, 뱀 잡아먹던 시절 특수부대가 아닌 선진형 군대의 변화된 모습을 전직 국방부 출입기자 출신으로서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겉핥기식 예능형 체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훈련하며 지내면서, 보고 느낀 것을 진심으로 담고 싶었다. 그래서 머리를 밀었다. 막 군대 입대하는 훈련병 수준으로 빡빡 밀었다.
(출처 : 엠빅뉴스)
누구는 똘아이라고 했고, 제정신이냐고 했다. 그깟 콘텐츠 하나 만든다고 마흔 넘어서 머리를 밀다니.. 그런데 참 희한하다. 머리를 미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실제 훈련장에서 만난 특전사 대원들과 관계자들도 내 진정성을 받아 줬다. 그들과 보다 더 깊게 융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비아냥 또한 따라왔다. 악플러들은 '특전사 불 끄러 갔냐' '탄피 하나 잃어버리고 군대 폭력성 실험해라' '인성 문제 있냐'며 조롱했다. 하필 같은 시기에 가짜 사나이도 등장했다. 그러자 가짜 사나이가 인기를 끄니까 따라 한다며, 노 젓냐고 콘텐츠 폄하도 서슴지 않았다.
사실 특수부대 기획은 가짜 사나이 훨씬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고, 실제 특전사 훈련에 일반인이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사상 처음으로 있는 일이어서 여러 가지 특전사 측과 조율할 것이 많아 준비 과정이 길었다. 결국 대리 기자는 따라쟁이가 되고 말았다. 억울하고 속상했다. 특전사 측에서도 속상해했다.
고마운 분이 보내준 응원의 선물
하지만 진심은 통하나 보다.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많이 좋았다. 댓글도 악플에서 응원으로 많이 변화되고 있었다. 물론 머리 좀 밀었다고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진 않는다. 그걸 원하지도 않았다. 진정성을 온전히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진지하게 진심으로 임하는 모습만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