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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Nov 01. 2020

10. 취재의 함정


 최근의 일이다.

 9년 전 그 사건이 떠오르게 하는 일이 생겨 책에 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제보가 들어왔다. KF94 마스크에 형광증백제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눈이 번쩍 뜨였다. 사실이라면 굉장히 심각한 일이다. 형광증백제란 일종의 표백 염료이다. 섬유 등을 더 하얗게 만들어 주는 물질이다. 독성 화학물질로 인체에 상당히 해로워 정부가 특별 관리를 하고 있는 대상이다. 피부염증과 아토피를 유발하고, 체내로 들어가면 간과 신장 등 장기를 손상시킨다. 심지어 한 대학 연구에서는 생식기능과 전신 장애의 원인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더욱이 면역력 결함을 일으킨다고 한다.


 과거 주유소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티슈에서 형광증백제가 나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법 규정상 KF 등 의약외품 마스크에는 형광물질이 검출되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위험한 독성 화학물질이 우리들이 하루 종일 쓰고 다니는 마스크에 묻어 있다니, 화가 났다. 질병을 막기 위해 쓴 마스크가 오히려 면역력에 결함을 일으킨다니.. 더욱이 마스크 의무 착용이 시행되면서 어린아이, 산모, 노인 할 것 없이 국민들 모두가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직감적으로 큰 뉴스임을 느꼈다.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우선 제보로 들어온 문제의 마스크를 확보했다. 그리고 형광증백제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간이 검출기를 구입했다. 형광증백제는 자외선을 비췄을 때 파란색으로 빛이 난다. 과거 여러 차례 각종 보도,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 시험 방법이다. 법적으로도 공인된 검출 시험 방법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신생아 엄마들이 형광증백제가 묻은 아기용품을 피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문제의 마스크에 자외선을 쓱 비춰 봤다. 너무도 파랗게 빛이 났다.  '됐다'


 몸속의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아났다. 혹시나 해서 집에 있는 각종 마스크들을 죄다 시험해 봤다. 대부분 나오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중국산 수입 마스크가 파랗게 빛이 났다. 인터넷에서 구입한 제품이었다. '오호라 이것 봐라?' 점점 흥분되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2단계 작업에 착수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마스크들을 무작위로 대량 구입을 했다. 의약외품인 KF마스크를 포함해 비말, 공산품인 면 마스크, 폴리에스테르 패션 마스크, 일회용 마스크 등 약 30가지 종류를 구입했다. 대형 마트, 할인 마트, 길거리 매대에서 판매하고 있는 마스크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과연 얼마나 많은 제품에서 형광증백제가 나올까?  


 스튜디오를 어둡게 하고 간이 검출기를 비췄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30개 제품 가운데 11개의 마스크가 형광물질로 빛이 났다. 충격적이었다. 마스크 자체에서 빛이 나는 것도 있었고, 귀걸이 끈이 파랗게 빛나는 것도 있었다.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흥분됐다. 소위 '게임 오버'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일만 남았다.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마스크가 시중에 유통되고, 관리될 수 있었을까. 그 점 또한 기사에서 짚어 줘야 할 포인트였다. 다만 그전에 검증된 전문기관에서 실험을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신뢰성을 위해서였다.

 마스크들을 싸들고 시험을 할 수 있는 보건환경연구원을 찾았다. 코로나에, 국정감사까지 겹쳐 바쁘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흔쾌히 응해 줘서 진행할 수 있었다. 연구원과 함께 마스크를 하나씩 개봉해 검출기에 집어넣고 마찬가지로 자외선을 비췄다. 사전에 내가 실험한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불현듯 시험 책임자의 한마디가 내 폐부를 찔렀다.


 "혹시 법이 개정된 거 알고 계세요?"


 "헉... 무슨 말씀 이신지.."


 3년 전에 법이 바뀌어 시험을 한 가지 더해야 한단다. 과거에는 자외선 시험만으로 형광증백제를 판단했는데, 이제는 그다음 단계로 '전이 시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광증백제가 다른 섬유 등으로 실제로 묻어 나는 지를 전이 시험을 통해 검출이 돼야 최종적으로 제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이 시험 과정은 상당히 복잡했다. 마스크를 잘라 증류수에 넣고 PH 농도를 맞추고, 약간의 열을 가하고, 여과를 하고, 또 PH농도를 맞추고, 그 증류수에 깨끗한 거즈를 담가 열을 가하고... 어쨌든, 규정에 나와있는 대로 전이 시험을 진행을 했다. 결과는 검출되지 않았다. 형광증백제가 다른 거즈로 묻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피부 등에 전이돼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아.. 망했다' 소위 아이템이 꽝났다. 기사화할 수가 없다.


 하지만, 공력을 많이 쏟은 아이템이 무산됐다는 아쉬움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냥 과거처럼 자외선 검출만으로 보도를 했다면.. 아찔 했다. 바로 소송감이다. 마스크 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할 것이고, 우리는 소송에서 이길 수가 없다. 실험의 미비함으로 인한 잘못된 보도이기 때문이다.

 시험 책임자의 정확한 법 규정에 대한 조언이 없었다면 크게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과거에는 맞는 방법이었지만, 이후 개선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과거 기준으로만 섣불리 보도를 할 수 있었다. 취재에 정신없이 몰입하다가 그 취재 자체에 매몰될 뻔한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이 확실하다는 위험한 신념이 나를 또 한 번 큰 위기에 빠트릴 뻔했다.

 바로 '취재의 함정'이다. 취재한 내용이 예상했던 문제점과 근접하게 맞아떨어져 갈 때, 쾌감을 느끼고 취재에 더욱 탄력을 받는다. 바로 이때 기자들은 스스로의 취재와 현장에 매몰되기 쉽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음속에는 결론을 지어버리곤 한다. 끝까지 확인을 하지 않고, 섣불리 보도를 하다가 사고를 치고 만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으면 과감히 보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정확한 법적 근거와 정책의 미흡함을 따지고 들어야 공권력이 움직이고 제도가 바뀔 수 있다.


 나는 13년 전, 과도한 정의감에 사로잡혀, 취재 현장에 매몰되고만 '그 날'이 떠올랐다.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마스크 형광증백제 문제는 고민 끝에 법적 사각지대의 허점으로 방향을 재설정해 보도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Qca0QfscOM&t=17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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