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충환 Nov 01. 2020

11. 과도한 정의감에 사로잡히면

 옳고 그름과 상식과 비상식을 알아가던 때였다.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기자를 시작한 지 만 3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해 겨울, 태안 앞바다에서 대규모 기름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홍콩 선적인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선과 충돌했다. 유출된 기름양만 1만 2천㎘. 이 엄청난 기름은 충청도 해안 전역을 뒤덮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전라도와 제주도까지 흘러들어 갔다. 전 국가적인 재앙이었다.

 그런데 역시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하다. 지역민뿐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기름 제거 복구작업에 나섰다.

 

 우리도 그 비극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당시 지역민들은 거의 전 주민이 기름 제거 작업에 투입됐다. 그중 상당수가 바지락 등 갯벌을 파 생계를 유지하던 고령층이었다. 삶의 터전을 한꺼번에 잃어버렸기에 하루빨리 정상 복구가 절실했다. 생계도 막막했다. 그래서 정부는 지역민들에게 기름제거 작업 하루 일당을 지급했다. 노인들은 거의 매일 바다로 나가 기름을 제거했다. 당시 그 검은 해안가에 서본 이는 안다.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에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였다.


 선배로부터 국회발 제보 취재 지시를 받았다. 내가 만난 국회 관계자는 나에게 무언가를 '툭' 건네줬다. 옷이었다. 무언가 작업을 할 때 입는 옷이었다. '방진복'이라고 적혀 있었다.

 매일 같이 기름 제거 작업에 투입되는 노인들에게는 마스크와 방제복이 지급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들에게 지급된 옷이 기름 제거 작업에 입는 '방제복(防除服)'이 아니라 '방진복(防塵服)'이었던 것이다. 그분이 나에게 건넨 그 옷이었다. 쉽게 말해 방제복은 '화학 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옷이고, 방진복은 '먼지'로부터 보호하는 옷이다. 기능이 완전히 다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태안으로 향했다.


 문제의 옷은 태안 군청이 지급한 옷이었다. 현장에서는 역시나 방진복을 입은 노인들이 갯벌에 주저앉아 기름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심지어 지급된 그 방진복으로 기름을 닦아 내는 모습마저 목격됐다. 옷이 기름을 흡수한다는 증거였다. 내가 만나본 주민 중에는 엉덩이가 기름에 젖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노인도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군청을 찾아가 따져 물으니 공무원들도 방제복과 방진복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인지를 하고 있지 않았다. 더 화가 났다. 노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기름을 흡수하는 옷을 입고 기름을 제거하고 있었다. 우리는 기사의 날을 세워 시리즈로 보도했다.


방진복과 방제복 기름 투과 실험 (출처:뉴스데스크)




 현장의 참혹함과 행정의 비상식을 동시에 목격한 나는 분노와 정의감에 불타올랐다. 그래서 더욱더 불꽃 취재에 돌입했다.

 기름 유출 사건 이후 두 달. 이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픈 지역 주민들이 많단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 기름 제거 작업 때문이었다. 원유는 사실상 독극물이다. 고령의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벤젠과 톨루엔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덩어리를 수십일 동안 끌어안고 살아온 것이다.

 마침 기름 제거 작업을 하다 눈이 안 좋아진 할머니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나를 만난 할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여기(기름 제거 작업장) 다닌 후부터 아주 까마득 하지. 아주 안 보여 여기 다닌 후부터. 가렵고, 시리고, 따끔거리고.."

 그럴수밖에 없었다. 매일 하루 7시간씩 4백 시간 이상을 기름 앞에 앉아 작업을 하는 통에 원유의 휘발 성분이 그대로 눈에 노출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호소를 그대로 기사에 담았다. 내가 만난 다른 동네분들 중에는 손톱이 물러진 분, 피부병, 눈병, 어지럼증 등 온갖 질환을 앓고 있는 주민들 투성이었다. 두 달이 넘는 시간을 기름과 사투를 벌이는데 병이 안 날 리가 있을까. 하지만 주민들 건강에 대한 역학조사나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도대체 정부와 지자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왜 주민들이 독극물과 싸워야만 할까? 엄연히 잘못을 저지른 주체가 있었다. 삶의 터전을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볼모로 국가가 주민들을 돈 몇 푼에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통을 호소하는 그분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 보도했다.


기름 제거 작업 중 오열하는 노인 (출처:뉴스데스크)


 그러나 기대와 달리 돌아온 건 정정보도 청구였다. 태안군과 보건복지부가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할머니의 실명 원인이 기름 제거 작업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 이게 아닌데.. 어떻게 이러한 반응이 오지' 즉각적인 역학조사와 치료에 대한 약속을 기대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보도의 오류를 먼저 지적했다.

 '내가 불리하다'

 현장 취재에서는 주민들이 호소하는 고통에 대해 일일이 병원 진단서를 확인하고 기름제거로 인한 원인인지 의학적 역학 취재를 할 수가 없다. 시간적 물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장 내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는데, 그분들에게 진짜냐고 진단서를 가져와 보라고, 병원에 가서 역학조사를 해보자고 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순간, 기자는 현장에 매몰되고 만다. 정의감에 사로잡혀 판단력이 무뎌진다. 불합리를 깨부수겠다는 신념은 취재의 오류에 대한 가능성을 망각하게 한다.


 나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정보도 청구에 분노했다. 아파하는 지역민들을 우선 살펴보기보단, '우리 때문이 아니'라는 책임 회피가 그들에겐 더 중요했나 보다. 어쨌든 우리는 결과적으로 정정보도를 해야 했다. 할머니의 실명 원인이 기름 때문이 아니라는 태안군의 주장을 뒤집으려면 긴 시간을 가지고 역학 취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 나의 취재와 그날의 뉴스는 잘못된 뉴스가 되고야 말았다.

 어디에 호소할 곳 없는 약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은 것이 잘못된 보도였을까? 그때 왜 싸우지 못했을까..


 끝까지 매달리지 못했던 나 자신이 아쉽고 부끄럽다.    



당시 뉴스데스크 기사 :

https://imnews.imbc.com/replay/2008/nwdesk/article/2129476_30609.htm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