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충환 Nov 01. 2020

09.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누가 그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9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악플의 수위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조금만 지켜봐 주지..' 나의 작은 바람은 여지없이 대규모 악플 공격에 산산조각이 났다. 이대로라면 콘텐츠는커녕 간판을 내려야 할 판이었다. 악플 가운데 상당수는 '왜 사과도 하지 않고 유튜브를 하느냐'였다. 사과에 대한 요구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빨리 사과 영상을 올려야 했다. 지체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사과로 시작했으면 조금 더 가볍게 갈 수 있었지만, 늦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사과를 안 하고 시작한 것에 대한 사과까지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사과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당황스러웠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개인적인 사과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하는 공개 사과다. 내 얼굴을 드러내고 하는 공개 사과다. 사과를 해도 욕할 것이다. 더 심하게 욕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상은 내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 평생의 흑역사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캡처해서 조롱을 일삼을 것이고, 누군가는 돈벌이로 이용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눈에 밟혔다. 고개 숙인 아들의 영상을 볼 나의 부모님과 아내,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아들이 행여나 커가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니, 아찔 했다. 현기증이 났다. 판단이 제대로 서질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 대신 결정해 줄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고, 나의 결심이어야 했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내 짧은 인생에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 사과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사과의 수위는 어느 정도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진정성을 알아줄까?' '어떤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해야 할까?' '목소리 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 모양으로 사과를 해야 할까?' '손은 앞으로 공손히 모아야 할까, 차렷을 해야 할까' '90도로 인사를 해야 할까, 가볍게 숙여야 할까' '죄송합니다로 해야 할까, 사과드립니다로 해야 할까, 송구 합니다로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하지 말까..'

 '안 해도 되잖아. 사과하지 않는다고 내가 불이익을 받을 건 없잖아. 댓글창만 보지 않으면 되잖아' 내 안의 두 자아가 싸웠다. 생각에 생각이 나를 잠식해 갔다. 그러나 나의 고민과 망설임과는 달리 내 마음속에 답은 명쾌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움직였다.


 '나 자신에게 당당하자'


 사과를 해야 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다. 사과를 안 하고 외면하면 그만이다. 나를 속이고 피해 갈 수는 있다. 그러면 좀 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평생 후회할 것이 뻔했다.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평생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원래 처음부터 사과를 하려 했었던 것이다. 다만 예상을 뛰어넘는 날카로운 여론에 더 겁을 먹은 것이다.

 자막으로 사과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거부했다. 나는 얼굴을 내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내 나이 마흔셋, 내 허리가 이리도 뻣뻣한 줄 이제야 겨우 깨달았다.


'대리 기자' 사과 영상 (출처 : 엠빅뉴스)


 대리 기자 첫 번째 콘텐츠 영상 맨 뒤에 사과 영상을 덧붙였다. 또 하나의 고민은 사과 영상으로 시작을 하고 콘텐츠를 이어갈까, 사과 영상을 콘텐츠와 별개로 따로 올릴까 였다. 장고 끝에 사과는 콘텐츠 뒤에 붙이기로 했다. 사과 영상으로 또 어그로 끌려한다는 비판을 피하고 싶었다. 더욱이 사과로 인해 콘텐츠 본질이 훼손되는걸 원치 않았다.  


 모든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몇 가지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 잡았다. 사과 영상을 올리자마자 왜 9년 만에 이제 와서 사과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튜브로 돈 벌려고 거짓 사과를 한다. 변명한다고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아차..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중간 광고가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사과 영상 앞에 중간 광고가 플레이되고 말았다. 여지없이 사과로 어그로 끌어 돈 벌려한다고 공격을 받았다. '사과 영상에 광고 처넣었냐, 뇌가 우동사리'란다. 역시 사과도 할 줄 모르는 초짜였다. 치밀하지 못했다.

 내게로 들어오는 유튜브 수익은 1원도 없다고 호소할 수도 없었다. 답답했다. 예상은 했다. 사과를 해도 욕할 것이다. 각오는 했다. 하지만 언제나 욕설은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 같다.    


악플에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침'과 '토'이다. 직접적인 욕은 아니지만 욕보다 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단어 같다.


 약 3천 개의 악플이 달렸고, 싫어요가 1만 개를 넘겼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악플을 읽으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 누더기가 된다. 영혼이 피폐해진다. 너무 아프다. 그렇다면 안 보면 된다. 외면하면 된다. 주변에서도 읽지 말라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다는 것이 아니라며, 읽을 필요 없다고 위로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칠 걸 뻔히 알면서도 댓글을 하나하나 다 읽어 보게 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혹시나 그 수많은 악플들 가운데, 응원과 격려의 댓글이 하나라도 섞여 있을까 봐. 그 소중한 댓글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본다.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도 처참함을 느끼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를 생각해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세상의 온갖 나쁜 단어들로 흠씬 두들겨 맞고는 한동안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죽어버릴까?' 그러면 그들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들까?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한순간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과거 누군가의 극단적 선택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고? 누가 그래?'


 악플은 흉기다. 흉기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9년 전 악플들과는 다른 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9년 전은 무리한 실험 자체에 대한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분노의 근원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너 때문에!!


 나 때문이었다. 내 실험 때문에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선량하게 게임하던 이들을 중독자로 만들어 버렸다는 인식이 퍼져있었다. 나로 인해 게임 산업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마침 2011년 내 보도가 나가고 몇 개월 뒤, 국회에서 '셧다운제'가 통과됐기 때문이었다. 셧다운제는 중학생 이하 청소년들이 자정이 넘어서 하는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제도이다.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취지다.  

 내 보도로 인해 셧다운제가 통과됐다는 인과 관계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내 기사에는 앞서 설명했다시피 폭력에 관한 이야기이지 '중독'이라는 단어 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뭐가 어쨌든, 사람들은 나로 인해 셧다운제가 통과됐다고 믿었다. 그래서 게임 산업과 PC방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게이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중독자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비객관적이고 작위적인 실험으로 단편적인 사실을 일반화해버린 황당한 기사, 그래서 온갖 조롱과 비난을 받았던 기사가 법을 바꾸고 사회 인식을 바꾸고 게임 산업계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너 때문에'로 증폭된 분노, 결국 나에 대한 미움은 증오로 번져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