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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Nov 01. 2020

14. 당신을 위한 이야기

 내 직업은 글쟁이다.

 

 방송기자지만 사실상 글쟁이다. 취재를 하고 촬영을 하고 영상에 맞춰 기사를 작성한다. 장문의 기사를 쓰기도 하고, 단문의 기사를 쓰기도 한다. 기획기사를 쓰기도 하고, 매일같이 찍어내는 단발성 데일리 리포트를 쓰기도 한다. 취재 후기를 쓰기도 하고, 기획 구성안을 쓰기도 한다. 화면에 모습을 비추며 마이크를 잡는 방송쟁이이지만 또한 결국 글쟁이다. 모든 것이 글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나를 위한 글을 써본 적이 없다.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기사를 써야 했다. 이 사회를 위한 기사를 써야 했다. 불합리와 어두운 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춰내 글을 써야 했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비리를 고발하고, 정책의 허점을 짚어내거나 칭찬하고 독려하기도 한다. 항상 내 글은 공익을 추구해야 했고, 약자를 향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글을 썼다. 글을 쓰는 행복을 알게 됐다. 과거에 기사를 쓰면서 느꼈던 쾌감과 뿌듯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 스스로를 찾아가는 시간들로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있었다. 과거 부끄럽고 아픈 기억에 대한 변명 보단, 나 스스로에게 고백을 하면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인격의 주인인 나를 위한 권리를 쫓았다. 그 권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은 힐링이었다.


 두려움도 있었다.

 '관종이야?'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조롱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때의 악플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어 읽어 보는 것이 두렵고 괴로웠다. 시간이 지나도 역시 마음에 생채기는 남는다.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나 보다.      




 내가 반해버린 미국의 어느 커버송 가수를 소개하고 싶다. 이름은 매딜린 (Madilyn Bailey)이다.

 그녀는 다른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재해석해서 만든 곡을 부른다. 주로 유튜브로 활동을 하는데, 활동 초반 그녀는 엄청난 조롱과 비하의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네 음악은 쓰레기다. 목소리 최악. 내 강아지가 너보다 노래 잘하겠다.  
미안 구독 취소할게. 애쓰지 마. 그냥 하지 마. 지구를 떠나라.
이 노래 사랑했는데 네가 불러서 싫어졌어
유튜브 하지 마


 그녀에게 달린 악플들이다. 참 신기하다. 악플의 표현법은 전 세계 공통인가 보다. 영어인데, 어쩜 그리 나에게 달린 악플들과 표현이 비슷할까?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나고 만다. 그녀는 이 악플들로 구성한 가사로 곡을 썼다. 악플을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로 승화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유튜브에서 2020년 10월 현재, 1천6백만 회가 재생됐고, 지금 그녀에게는 8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 있고 그녀의 노래를 기다린다.


매딜린 Madilyn Bailey (출처: 유튜브)


 그녀의 노래는 아름다웠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줬다.


https://www.youtube.com/watch?v=TMhWQeka5Lw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해 기사를 썼던 마음처럼, 이 책은 나를 위해 썼다. 하지만 동시에 나와 같이 악플에 상처 받았던 누군가를 위한 글이다. 나의 이야기가 그 또는 그녀, 어쩌면 당신일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악플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힘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는 이 시대를 기록하는 내 동료 언론인들과 미래의 후배 저널리스트들이 겪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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