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숨겨진 이야기 #7.
클럽과 마약.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불편한 진실들이 점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클럽 버닝썬의 제보자들은 단순 일반 손님들이 아니었다. 클럽 내부 직원들과 버닝썬의 VIP 손님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곳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들려줬다.
버닝썬 안에서 마약이 유통됐다면, 그것을 구입하고, 판매하거나, 나눠준 ‘누군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제보자들은 유독 한 사람의 이름을 지목했다.
중국인 '애나'
그녀는 버닝썬 직원인 MD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식 직원이라기보다는 프리랜서다.
MD는 일반적으로 상품기획자를 뜻하는 머천다이저(Merchandiser) 또는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의 줄임말이다. MD는 클럽에 손님을 유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쉽게 말해 클럽의 영업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테이블을 대신 예약해 주고, 자리를 안내하고 술값 결제까지 모두 MD를 통해서 한다. 그리고 MD는 그 테이블에서 나온 비용 중 약 10~15%의 수수료를 챙긴다.
MD의 능력은 얼마나 고액 손님을 잘 끌어와서 조금이라도 더 비싼 테이블에 앉히느냐에 판가름 난다. 그러다 보니 MD끼리의 과열 경쟁이 이뤄지고, 손님이 원하는 건 뭐든 가능하게 해 준다. 성접대 알선과 불법 촬영물 공유, 마약이나 물뽕 유통까지 온갖 의혹의 중심에 클럽 MD가 있었다.
애나는 클럽 버닝썬의 '에이스'였다. 본명은 '파OO'. 애나는 별칭이다.
버닝썬 마약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유일하게 특정된 인물. 그녀를 기억하는 VIP 손님들과 직원들은 모두 애나가 우리나라 사람만큼 우리말을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애나는 추후에 밝혀졌는데, 과거 3번의 마약 전과가 있었다. 다른 클럽에서 엑스터시1)와 대마초를 한 혐의로 검거됐던 전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초범인 데다,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2) 처분을 받았었다.
애나는 버닝썬 사건이 한창 진행 중인 당시 여권 만료 상태로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애나는 잠적해 버렸다. '버닝썬 마약 의혹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열쇠'인 애나가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는 애나를 계속해서 추적했다.
“캡, 애나 집 맞는 것 같습니다”
후배 박윤수 기자가 구글링과 끈덕지게 주변인들을 수소문한 끝에 애나 집을 찾아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가 잠적 직전에 다급했던 정황이 설명되는 단서가 발견됐다.
“택배가 와 있는데.. 물품이 좀 뜬금없는데요.”
“뭔데?”
“바리깡입니다...”
응?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그녀는 왜 그 시점에 느닷없이 본인의 일상적인 생활과 전혀 상관이 없는 바리깡을 구입한 것일까?
뜬금없어 보이는 택배지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었다. 주문 날짜를 살펴보니 수사가 시작되고, 그녀의 이름이 언론에 막 거론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마약 투약과 클럽 내 유통 혐의로 경찰이 한창 그녀를 쫓고 있던 때였다.
'증거 인멸 시도가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사로 담아내지는 않았다.
잠시 마약 얘기를 하자면, 경찰 마약 수사팀은 용의자의 투약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비롯해 몸의 체모를 뽑거나 소변을 채취하고, 채혈을 한다. 소변의 경우, 보통 며칠 내에 몸 밖으로 마약 성분이 다 배출돼 버리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체모에는 마약 성분이 길게는 몇 개월씩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또한 체모는 계속해서 자라기 때문에 끝부분이냐, 중간 부분 또는 뿌리 쪽 부위냐에 따라 마약성분의 농도가 달라진다. 즉, 마약 성분이 남아있는 부위에 따라 체모가 자라는 속도를 역으로 계산해 투약 시점을 가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사기관은 대개 용의자의 신체 여러 곳에서 체모를 뽑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감정 의뢰를 한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염색을 해버리면 마약 성분이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가급적 용의자의 몸 여러 군데에서 체모를 뽑는 것이다.
경찰 마약수사팀에 따르면 마약 투약 용의자들이 머리카락을 제외한 온몸의 체모를 밀어버린 상태로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혐의 입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느 유명 연예인이 생각이 난다. 마약 혐의를 받았던 그는 기자회견까지 하며 “결단코 마약을 하지 않았다”며 억울해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다리에서 뽑은 체모에서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와 구속되고 말았다. 아마도 다리털에서도 마약 성분이 검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리라..
후배는 애나를 잡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집 앞에서 뻗치기 했다. 그러나 끝내 애나를 만날 수는 없었다. 애나는 며칠 뒤 경찰에 소환됐고, 그녀의 몸에서는 엑스터시와 케타민3)이 검출되고야 말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애나는 김상교 씨를 성추행으로 고소한 장본인이다. 애초 경찰은 애나를 한차례 불러서 조사했는데, 성추행 혐의 여부만 조사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약 사범이었던 애나. 그녀가 잠적해 버리는 바람에 경찰은 수사에 한참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런데 애나를 쫓는 건 우리와 경찰만이 아니었다. 버닝썬을 이용했던 중국인 VIP 고객들 또한 애나를 찾고 있었다.
'아차차' 그 생각을 못했다.
애나를 잘 아는 한 지인은 중국인 VIP들이 애나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다고 알려왔다. 버닝썬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수사망이 확대되자 클럽 내 마약 거래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애나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 돼 있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걔 입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거고..”
애나 지인의 이 한마디에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쫓기는 와중에 애나는 극도로 불안해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마약 사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한다. 애나를 쫓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1) 암페타민 계열의 환각을 일으키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클럽에서 많이 사용되는 대표적 약물 가운데 하나고, 한 때 ‘도리도리’ 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2) 죄는 인정되지만 피의자의 연령이나 성행,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나 수단,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 기소를 하여 전과자를 만드는 것보다는 다시 한번 성실한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고 용서해주는 것을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3) 통증을 없애는 마취제의 일종이다. 이 또한 강력한 환각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일본의 클럽 등에서 많이 통용되다가 국내로 유입이 꾸준히 되기도 했다. 한때 환각 효과를 증폭시킨 ‘슈퍼 K’라는 이름의 케타민이 클럽 등에서 유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