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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Mar 01. 2021

5성급 호텔의 수상한 화장실

버닝썬, 숨겨진 이야기 #6.

 별 다섯 개. 


 하룻밤 숙박료만 수 십만 원. 최고급 호텔 지하에는 서울에서 제일 잘 나가는 클럽이 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불금'만 되면 클럽은 손님들로 꽉 찼다. 그날도 클럽은 만석이었다. 

 

 파티가 절정에 달하던 새벽 2시, 호텔 로비에 한 무리의 남성들이 나타났다. 목소리 톤은 높았고, 남자들은 뭐가 즐거운지 상당히 흥분된 상태였다. 클럽의 중국인 VIP 손님들이다. 3명의 중국인 뒤에는 소위 '가드'로 불리는 클럽 직원이 바짝 붙어 쫓아오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로비의 화장실이었다. 물론 클럽에도 화장실이 있지만 이들은 굳이 입구가 다른 호텔의 1층까지 올라가 화장실로 향했다. 


 호텔 로비 화장실에는 어느 호텔이 그러하듯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중국인들은 장애인이 아니었지만 장애인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3명이 동시에 들어가도 넉넉할 공간이었다. 중국인 VIP 손님들이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자, 검은 옷을 입은 가드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다리는 어깨 너비로 벌린 채 그 앞을 지키고 섰다. 

 

 5분 뒤, 화장실에서 중국인들이 나왔다. 그들의 눈은 반쯤 풀렸고, 다리에 힘이 빠진 채 비틀댔다. 지하의 클럽 버닝썬 까지 그들은 휘청이며 내려갔다. 그들 중 한 명이 주머니에서 선그라스를 꺼내 썼다. 클럽 조명이 눈이 부셨나 보다. 그들은 손에 든 생수병의 물을 하염없이 들이켰다.  

 

 코에서는 콧물이 자꾸만 질질 흘러나왔다. 1)


*버닝썬 클럽 직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 




 김상교 씨 폭행사건의 목격자인 클럽 직원들은 우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해줬다.

 버닝썬 클럽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마약’ 이야기였다. 


 버닝썬에는 주로 중국인 VIP 고객들이 많이 오는데, 이 VIP 상당수가 마약을 한다는 것이다. 장소는 클럽이 아닌, 호텔 화장실. 주로 2,3명씩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면 ‘가드’인 본인들이 밖에서 지키고 서 있는다고 했다. 버닝썬은 VIP 손님들에게 개인 가드를 붙여 줬다. 에스코트에 10만 원. VIP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붙기 때문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밖에 없단다. 


 이 두 명의 클럽 직원은 두 눈으로 목격한 장면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얘기해 줬다. 그리고 수 천 명의 술 취한 사람들을 봐왔지만, 그 모습은 결코 술 취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소위 방송쟁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범인을 잡거나 붙드는 행위가 아니다. 어떤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표현이다. 즉, 그들이 마약 하는 장면을 ‘잡아야’만 했다. 

 화면에 담을 수만 있다면, 대형 특종이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일단 마약을 하는 장소가 명확히 특정이 됐다. 그리고 주로 마약을 하는 시간대 또한 금요일 밤 12시에서 토요일 새벽 4시 사이로 특정이 됐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찍을 것인가?'였다. 방법은 몰래카메라 밖에 없다. 

 최근에는 온갖 종류의 몰래카메라가 나온다. USB형에서부터, 스마트폰 충전기형, 안경, 시계, 펜, 카드형 몰카까지 종류가 엄청 다양하다. 마약을 하는 장소는 화장실이다. 몰래카메라가 들키지 않으려면 주변 사물과 어우러져야 한다. 각도도 맞아야 한다. 코로 흡입 하든, 주사기를 사용하든 행위가 카메라 프레임안에 잡혀야 한다. 화장실 안쪽 문에 부착형 몰카를 설치하면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아차!!! 장소가 화장실이다..'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는 장소가 하필 화장실이다. 명백한 불법이다. 불가능했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것이지만 불법은 불법이다. 100% 역공을 당할 것이다. 2)

 

 나는 고민 끝에 일종의 편법을 수사기관에 제안했다. 우리가 찍은 범행 장면을 경찰이나 검찰에 넘기고, 우리는 공식적으로 영상을 그쪽으로부터 받는 방법이었다. 영상 취득에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의 제안은 단박에 거절당했다. 


 ‘독수독과’ (毒樹毒果)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도 독이 있다’ 


 아무리 범죄의 현장이라 할지라도, 촬영 과정이 불법이면 불법이라는 것이다.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물은 증거로서의 효력을 상실한다. 

 바로 눈앞에 범죄의 현장이 있는데 고발할 수가 없었다.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자괴감마저 들었다. 어떻게 포착된 범죄 현장인데..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외부에서라도 장면을 잡아보자’ 


 화장실 안에서 마약을 할 정도면 혹시 외부에서라도 의심스러운 장면이 포착되지 않을까? 호텔 지상 주차장 쪽에는 여러 음침한 장소가 많았다. 

 후배 이문현 기자는 클럽과 호텔 주차장이 훤히 보이는 건너편 빌딩 사무실을 섭외했다. 금요일 저녁 8시부터 카메라를 설치하고 취재, 카메라 기자 후배들은 뻗치기 3)에 들어갔다. 그리고 후배는 호텔 로비와 클럽 주변을 오가며 시커멓던 하늘이 퍼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새벽까지 밤새 의심스러운 사람을 쫓아다녔다. 

 바깥 기온 영하 9도. 후배는 다음날 몸살에 걸려 몸져누웠다.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장면은 잡지 못했다. 마약의 정황이라곤 클럽 직원의 진술이 유일했던 상황. 보도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해당 특급 호텔 직원이 회사로 제보를 해왔다. 호텔 직원들이 다 아는 이야기라며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약 하는 애들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어요”


 그리고 또한, 호텔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었다.

 클럽 버닝썬의 공동 대표 중 한 사람이 바로 호텔의 사내 이사였다. 



1) 마약을 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신체 반응이다. 동공이 확장되고 작은 불빛에도 시신경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눈이 부시고 혼미해진다. 약물 투여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콧물과 침이 흘러내리는 걸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대개 침이 말라오며 그래서 항상 생수병을 들고 물을 자주 마신다.   


2) 약 16년 전, MBC는 강남의 한 클럽 화장실에서 마약을 하는 모습을 화장실 문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뒤 촬영해 보도했다. 해당 보도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고, 해당 클럽은 문을 닫게 됐다. 당시에는 몰래카메라에 대한 법적 제재 등 개념이 약해 가능한 일이었다.


3) 기자나 경찰이 많이 쓰는 용어다. 유명 인사를 인터뷰하거나 범죄자를 검거해야 할 때,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며 지켜보는 행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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