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와 액셀

자기검열

by 보라구름

3주 만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30분의 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질 만큼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야기가 좀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시계를 바라보면 언제나 거의 끝날 시간이 다 되어 있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음 상담부터는 30분 상담이 아니라 50분 상담을 받기로 했다. 특별히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닌데 감정적으로 편하지 못하고 쇼핑을 과하게 하는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는 부분,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푸로작을 3알로 늘려서 먹어보겠느냐는 의사의 제안은 일단 거절했다.


지금도 약(푸로작)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거부감이 있는데 복용량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 2알의 처방을 받았지만 매일 2알을 다 먹는 것은 아니고 1알씩 먹을 때가 더 많다. 언젠가는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아지기를 바라지만 당분간, 혹은 꽤 오랜 시간 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무튼, 이번 상담에서 의사에게 꺼낸 이야기 중 한토막을 옮겨보자면 내가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눈 감고 누워서 하는 나만의 상상에 대한 거다. 잠은 안 오고 온갖 잡다한 불안, 걱정, 근심이 뱅뱅 돌 때 이를 떨치고자 내가 찾아낸 방법은 기분이 좋아지는 내 맘대로 상상이다. 말 그대로 상상의 세계니까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려보는 거다. 한데, 안타깝게도 나는 매번 이 상상의 세계에서조차 자기검열과 한판 승부를 벌이곤 한다. 한참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검열관이 나타나 소리친다.


야. 넌 상상도 이런 식으로밖에 못하냐? 좀 구체적으로 해봐. 아무리 상상이라지만 그래도 조금은 현실성을 바탕에 둬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니까 네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목표를 구체화해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거 알아, 몰라!


기분이 막 좋아지려는 찰나 이렇게 자기 검열관이 나타나 찬물을 끼얹는다. 대체로 나는 그런 자기 검열관의 목소리에 기가 죽는 편이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상상에 구체화를 더해보려고 애를 쓴다. 즐거웠던 기분은 바닥으로 푹 꺼져버린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신기하게도 자기 검열관에게 코웃음을 쳤다.


웃기고 있네. 나 지금 잠 안 와서 재밌자고 상상 놀이하는 거거든?
상관하지 말고 꺼져.


오,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당당하고 오만했던 자기 검열관이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달콤한 상상을 누리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super-charged-engine-2770374_1920.jpg


내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자기 검열관을 적절히 활용해 보는 방법에 대해 말했다. 현실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목표를 수행할 때는 필요하지만 상상에까지 개입하게 하지 말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내 감정 상태가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동시에 밟고 있는 상태와 같다고 했다.


나아가려는 힘과 멈추려는 힘이 서로 충돌하면서 엔진이 과열되고 그러다 폭발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도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시로 쳐들어와서 훈계와 지적질을 일삼는 내 안의 자기 검열관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내 정서적 안정과 안녕을 위해 당분간 내가 힘써야 할 부분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전 23화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