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우울해?

응, 가끔 아니 자주

by 보라구름

어쩌다 보니 진료 예약을 하고 못 갔고(사실 버스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버스를 잘못 타서 결국 예약 취소 전화를 함), 그 후로 몇 달 정도 이런저런 핑계로 다시 예약을 안 했다. 투약은 이미 종료한 지 한참 되어서 약 처방을 받으러 갈 용무도 사라져서 온전히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안 가고 있다.


사실 약을 안 먹고도 그런대로 잠을 잘 잔다. 비록 중간에 몇 번 깨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아예 잠을 잘 못 자서(잠드는 게 어려운 것) 괴로운 건 거의 사라진 상황이라 병원을 굳이 가야 하나 싶은 마음이 크다.


상담을 정식으로 종결 지은 게 아니라, 아직도 못다 한 말들이 많이 남아 있고 건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마음이 무거운 면도 있지만 당장 불편한 게 아니니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이따금 나 자신에게 요즘도 우울해? 물어볼 때가 있다.


돌아오는 답은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이전에 비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고, 밝고 긍정적이 된 건 아니란 이야기다. 다만 내가 우울하다는 걸 그때그때 제대로 파악하고 인지한다. 과도한 소비를 하거나, 과도한 음주나, 식사를 하는 걸 인지한다. 아 지금 내 감정이 우울하구나 그래서 그런 거구나. 가끔은 감정의 폭풍이 지나고 난 뒤 파악할 때도 있지만 그 시차가 크지는 않다. 이전에는 한참 지나고서야 알거나 그마저도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달라진 점이 확실하게 있긴 하다.


폭풍 소비를 하고 반나절도 안되어 바로 취소를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감정적 제어가 잘 안되어 장바구니에만 담고 멈추지 못하고 결제까지 한 경우가 생기면 그렇게 불을 끈다. 다행히 요즘은 바로 주문 취소가 되는 편이라 대부분의 경우 가계부가 별문제 없이 원상 복귀된다. 소비를 인지하기 위해 비주얼 가계부라는 앱을 쓰는데 이게 아주 효과적이다. 소비 패턴도 분석해주고 시각적으로 잘 정리해서 리포팅해주기 때문에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더불어 아직도 소비 습관이 엉망인 나를 질책하지 않는다. 바로 취소했으니 참 잘했다고 격려해주는 마음이랄까.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에서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구매했던 것뿐이고 취소했으니 괜찮다고 달래준다. 그리고 정말로 왜 우울하고 불안했는지 살펴본다. 대부분의 것들은 거의 다 사실상 그렇게까지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할 이유는 없는 것들이다.


아직은 약 없이 내 힘으로 이렇게 근근이 컨트롤하고 있는데 좀 더 마음 근육이 붙으면 여전히 건드리지 못한 동굴 속 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문제들을 건드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가을쯤에는.



매거진의 이전글5개월 만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