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 웅크린 반품 박스
투잡으로 1인 출판사를 했었다. 아직 사업자를 취소한 건 아니지만 현재는 뭐 거의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 얼마 전 국내 최대 서점 K 문고에서 전화가 왔다. 책을 반품하려고 하는데 계약된 물류&창고 업체에 전화하니 나의 출판사와 계약이 종료되어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어디다 반품하냐는 문의 전화였다.
휴, 창고비 감당하는 게 부담이 되어 창고도 정리하고 계약 해지를 하고 났더니 안 들어오던 반품까지 받게 될 줄이야. 집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반품 박스는 택배 물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체 없이 우리 집으로 당도했다. 그렇게 받은 반품 박스는 지금 며칠째 계속 현관 한 구석에 그대로 있다. 반품을 뜯어서 책의 상태를 살펴보기도 싫고(혹시나 손상된 책들이면 그걸 보는 마음이 너무 안 좋을 것 같음), 솔직히 말해 반품 박스에 손대는 것 자체가 엄두가 안 난다.
집 안팎을 드나들 때, 중문을 열어둘 때, 언뜻언뜻 방치된 반품 택배 박스에 시선이 머문다. 어쩌다 보니 내가 벌을 세운 셈이 된 것 같고, 죄 없는? 반품 박스는 체념이라도 한 듯 놓아둔 그대로 얌전히 웅크리고 있다. 저걸 어째. 괜히 애먼 책에 화풀이하는 것 같아 더 마음이 불편하다.
돌아온 내 책들을, 돌아온 탕아 받아들이듯 품에 안아줄 아량 넓은 출판사 사장이면 좋으련만 나는 아직도 소심하고 겁 많고, 속 좁은 사장이라 팔리지 못하고 돌아온 책들에게 공연히 화풀이로 벌을 세우 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