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은 젊음
주민센터에 볼 일이 있었는데 중간에 챙길 서류를 깜빡하는 바람에 다시 집에 갔다가 나오느라 걸어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다음 일정까지 고려하면 그냥 마을버스를 타는 게 낫겠다 싶어 짧은 거리지만 마을버스에 올랐다.
한 정거장 정도 달렸을까. 내 뒷자리에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녀가 있었고 조잘조잘 쉼 없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마을버스가 골목에서 나와 큰길로 접어들 즈음 몇몇 차와 서로 양보를 하며 진입에 성공했다. 그런데 옆에 백발의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지나고 있었다.
마을버스 기사님은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다 놀라지 않도록 경적을 누르거나 속도를 올리는 대신 자전거 속도에 맞춰 조금 천천히 운행하면서 할아버지가 안전하게 길 옆으로 붙어서 가시도록 기다렸다. 그 짧은 순간에 내 뒷자리 젊은 남녀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어, 할아버지 봐. 완전 진짜 할아버지네. 허, 모자도 썼어. 저거 자전거 헬멧 봐봐. 죽기는 싫으.. (주변 눈치 보는 느낌), 다치기는 싫은가 보네. 와 근데 속도가 내가 걸어가는 것보다 더 느려(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말들이 들려오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표현 하나하가 늙음에 대한 조롱이며 밑에 깔린 본의는 '나이 들어서 집에 얌전히 있을 것이지 왜 자전거는 끌고 나와서 저렇게 천천히 가, 그럴 바에는 걷는 게 낫지. 늙으면 죽어야지 뭐 또 저렇게 헬멧까지 챙겨 쓰고 유난이야'가 진짜 하고 싶은 워딩이었을 것 같다는 추측이 들어서다.
20대라면 뭐, 당장 아주 먼 10년 뒤라고 해도 30대일 것이고 노인이라고 하는 연령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영겁에 가깝게 느껴질 50~60년은 지나야 할 테니 그럴 수도 있겠다만.. 일단 누구나 자신이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고, 젊음을 자랑할 것도 늙음을 부끄러워할 것도 아닌데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나도 어쩌면 20대에 저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점점 노인에 가까워질 시간이 다가오니 전과 다르게 이런 말을 들어도 씁쓸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