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
아빠는 올해 3월, 세상을 떠났다. 2년 반 동안 암으로 온갖 고생 다 하시고 그렇게.. 그 뒤로 아빠는 상당히 자주 내 꿈에 나왔다. 거의 대부분은 별로 좋지 않은 내용의 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 만에 엄마와 절연하게 되었으니 내 마음은 지옥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된 가스라이팅과 정서적, 물리적 학대에 이어 성인이 된 후로는 금전적인 착취까지 이어졌고 심각한 언어폭력도 있었다. 살기 위해서 절연을 선택했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와는 절연을 선택했으니 고아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 나이에 고아라니? 어린아이가 아닌데 무슨. 하지만 고아가 된 막막한 심정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생일인 오늘, 처음으로 꿈속에 아빠가 밝은 얼굴로 웃으며 찾아왔다. 꿈에서 나는 아빠와 단 둘이 어딘가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실제로도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났던 적은 없었는데 꿈에서도 그게 첫 단 둘의 여행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건강이 아주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행을 다닐 정도의 체력은 되셨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정말 밝게 웃고 계셨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나도 미소 짓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까지 내 기억 속의 아빠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겨운 모습이었다. 나중에는 거의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기력 없이 누워만 계셨던 모습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밝고 활기찬 모습의 아빠를 꿈에서라도 만나다니!
아빠는 정이 많거나 다정한 편은 아니었다. 몇십 년째 딸 생일을 제 때 기억하는 법도 없었다. 그냥 가족끼리 케이크에 초 꽂고 노래 부르는 타이밍에 잠시 둘러앉아 있다가 손뼉 치고, 케이크 한 조각 드시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그런 타입이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확히 제 때에 딸 생일을 기억하고 꿈에 다녀가셨다.
아빠! 내년, 그리고 또 그다음 해에도 오늘처럼 꼭 잊지 말고 생일날 꿈에 나와주세요. 살아생전 같이 못해 본 단 둘 여행은 이번 생일에 했으니 다음에는 다른 거 같이 해봐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