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아이의 가출 시도
여섯 살 무렵의 일이었다. 오빠와 나는 신나게 골목에서 놀이를 시작했다. 신나는 놀이라고 해봐야 고작 세발자전거 하나를 나눠 타던 것이 전부였지만 그때는 그것이 마냥 신났다. 어린 시절 몸이 허약했던 우리 남매는 골목에서 놀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천식을 앓았던 우리는 연신 기침을 해대며 밤새 엄마의 한숨을 듣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기침이 심해지면 응급실로 뛰어가야 하는 일도 있었다. 숨이 안 쉬어지면 고통스럽게 거친 기침을 뱉어내던 어린 우리는 어쩌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 밖으로 나가 놀 수 있었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 중 하루였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날들은 집에서 조용히 엄마가 짜 놓은 학습 시간표 대로 한글과 영어를 공부하고, 피아노 연습을 몇 시간씩 하면서 지냈다.
신이 난 우리는 집에서 조금 더 멀리 가기를 원했다. 오빠의 세발자전거는 용감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갔다. 나는 어린이용 세발자전거 뒤 칸에 쪼그려 앉기에는 몸집이 조금 컸고 세발자전거를 따라 뛰거나 빨리 걷기에는 작았다. 작은 세발자전거 뒤에 앉았다가 자전거가 앞으로 잘 나가지 않자 내려서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익숙한 집 앞 골목을 벗어나 자전거는 어느새 큰길로 나갔다. 용케도 오빠의 자전거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따라갔다. 큰길을 지나 어느새 오빠의 자전거는 시장 속으로 들어갔다.
시장 속은 요지경이었다. 사람들이 넘쳐났고 갖가지 물건들이 가득했다. 잠깐 정신을 다른데 두는 사이 그만 오빠의 자전거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빠를 찾아보려고 시장 곳곳을 헤매며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새 시장 밖의 길로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시장으로 들어왔던 입구가 아니었다. 또 다른 큰길이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너무 오래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고 힘들었다. 낯선 큰길 앞에서 나는 망설였다. 어디로 가야 집이 나오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두리번거리던 나는 마음을 정했다. 그래, 곧게 뻗은 길 따라가다 보면 집이 나올 거야. 아니, 솔직히 마음속 한편에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곧게 뻗은 길로 가는 게 아니라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짚어가야 집으로 가는 방향이라는 것을. 하지만 집에서 멀어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았고, 무엇보다 매일 몇 시간씩 해야만 하는 피아노 연습, 한글 읽고 쓰기 공부, 영어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여섯 살의 나는 집으로 가는 방향을 뒤로한 채 앞으로 타박타박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걸어도 낯익은 골목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조금은 무서워진 탓에 다시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발은 자꾸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멀리 가게 불빛이 보였다.
결국 내가 가슴팍에 달고 있던 명찰(이름과 집 전화번호가 적힌) 덕분에 낯선 동네 슈퍼 할머니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집 앞에는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있었고 엄마는 울고 계셨으며 오빠는 아빠에게 군밤을 맞고 있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우연히 시도했던 첫 가출은 그렇게 짧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다. 안도감과 동시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날 집으로 돌아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껏 놀고 싶었던 여섯 살의 내가, 그 나이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은 시간을 공부에 짓눌려 지냈던 아픔이 떠오른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유치원과 학원을 돌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낼 여섯 살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