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닥터 이라부
환자의 싸대기를 날리는 간호사가 있을까?
환자의 집에 왕진을 가서 출장 요리사를 불러 고가의 음식을 먹는 의사가 있을까?
과도한 진료비를 청구해 놓거나, 진료비 청구 요청을 몇 시간이 지나도록 하지 않은 채 환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의사는?
환자에게 주사를 놓으며 주사기 바늘이 팔뚝에 꽂히는 것을 보며 흥분하는 의사는?
있다. 바로 이라부 의사와 마유미 간호사!
이렇게 보니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다. 이런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라니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소설적 허용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속에서 유쾌하고 통쾌하게 심리적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린다.
괴짜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대체로 모든 일에 걱정이 없고 치료법을 실행하는 데 거침이 없다. 고민하거나 망설인다거나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일과는 아주 거리가 먼 타입이다. 그렇다고 무모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나름 현실적이기도 하다.
괴짜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가 만든 캐릭터다. 이라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인 더 풀>, <공중그네>가 있으며 <공중그네>는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라디오 체조>의 이라부는 <공중그네> 이후 17년 만에 돌아왔다. <라디오 체조>에서는 여러 사례와 증상을 다룬다. 더불어 코로나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겪은 주인공의 사례도 들어 있어 현실감을 더한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사회공포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광장공포증 등의 증상을 유쾌하면서 엉뚱한 이라부 의사의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치료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이런 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각 사례에서 다루는 증상과 이에 따른 분석, 인지행동치료는 과장된 부분과 소설적 설정에 의해 재미 요소가 들어가긴 했지만 모두 정신건강의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러 에피소드 중 가장 공감했던 에피소드는 데이 트레이더와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였다. 둘 다 주식거래와 피아노 연주에 매여서 강박적으로 성과를 내는 데 전력투구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항상 잘하려고 하며 일탈이나 멋대로 하기와는 거리가 먼 타입이다. 각자의 사정과 구체적으로 닮은 구석은 없지만 힘들어하는 면면이 너무나 공감이 가서 마음 한편이 저려왔다. 어쩌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묶인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말하자면 후지와라 씨는 피아노에 묶여 있는 거야. 피아노로 인해 행동이 제한됐고, 오랜 세월의 억압에서 언제 일탈할지 모를 자기 자신 때문에 불안을 품게 된 거지. 밀폐된 공간에서 차분히 못 있는 이유는 자유에 대한 잠재적 동경이겠지." (p255)
책을 읽는 동안 닥터 이라부가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 실패해도 괜찮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벌어지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자. 가끔은 멋대로 굴어도 좋아.
고마워요, 닥터 이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