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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Feb 19. 2024

스위트 드림(3)

“찌르르르르르르르릉”


 알람 소리로는 참 제격인, 그러나 맨 정신에 듣기에 매우 거북한 알람 음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주말 일이나 곱씹고 있을 여유로운 월요일 아침이 아니다. 나는 일요일마다 밤에 샤워를 한다. 바쁜 월요일 아침을 조금이나마 여유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가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세수와 양치를 하면서 다리 운동을 하고 물기가 채 마르기 전 기초 화장품을 바른다. 서른을 넘기면서 아이크림과 링클 케어 에센스는 꾸준히 바르고 있다. 웃을 때도 눈가 주름이 신경 쓰여 가급적이면 주름이지지 않게 웃으려고 노력도 하지만 그런다고 생길 주름이 안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쓸데없는 노력인 걸 알지만 습관적으로 크게 웃지 않는 버릇이 생겨서 없어지지 않는다. 

 고양이 두 마리의 사료를 챙기고 물을 갈아 주며 옷장에서 어제 골라 둔 옷을 꺼내 거울 앞에 선다. 골라둔 옷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옷은 소파 위에 걸쳐 둔다. 잠도 설치고 와인까지 마시고 잔 때문인지 얼굴이 부어 있다. 얼굴 부기를 바로 빼준다는 지압을 온 힘을 다해해 보지만 정말 얼굴 부기가 빠진 건지는 모를 일이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재빨리 화장을 시작한다. 아이라인을 평소보다 좀 더 시원하고 크게 그려서 눈꼬리를 뺀다. 눈가의 주름뿐 아니라 이제는 팔자 주름까지 신경이 쓰인다. 아니 다크 서클도 아예 자리를 잡은 것만 같다. 아이 브라이터로 눈 밑을 꼼꼼히 바르고 신경 써서 두드려준다. 어떤 날은 거울에 비친 얼굴이 어려 보이고 예뻐 보이지만 어떤 날은 그 반대다. 오늘은 다행히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그냥 제 나이의 여자로 보였다. 무표정한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아 살짝 웃어본다. 입꼬리가 한쪽만 살짝 올라간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냉소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웃음은 크게 웃지 않는 버릇이 들면서 동시에 생겨버렸다. 


 월요일에 뿌리는 향수인 안나수이 스위트 드림을 들고 손목과 귓불 뒤, 목덜미에 한차례 씩 골고루 뿌린다. 출장과 여행 등 해외를 나갈 때마다 면세점에서 하나둘 사 모은 향수가 어느새 50가지가 넘지만 손이 가는 향수는 열 가지 안팎이고, 요일마다 향수를 정해놓고 뿌린다. 월요일은 스위트 드림. 달콤한 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향도 달콤하다. 직장인에게 월요일이 스위트 드림이라니 아이러니컬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월요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늘 스위트 드림을 뿌리며 월요일의 정신적 무장을 한다. 달콤한 꿈같은 인생을 진심으로 바란 적이 있었다. 독수리 오 형제 같은 자식 다섯을 낳아 현모양처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그런 달콤한 꿈을 품었으나 그 꿈은 가루처럼 부서졌고 이제는 그저 스위트 드림이라는 향수나 뿌릴 따름이다. 

 투명도가 살짝 있고 발목 부분에 은회색 펄로 작은 리본이 그려진 검은색 스타킹을 신는다. 군살을 감추기 위해 보정 속옷을 꺼내 입고 그 위에 몸에 적절히 핏 되는 짙은 회색 바탕에 잔잔한 꽃무늬가 들어간 블라우스와 검은색 H라인 모직 스커트를 입는다. 치마는 브랜드 의류, 블라우스는 보세 의류, 스타킹은 명품 스타킹이다. 이런 식의 믹스 매치를 잘하면 투자한 가격 대비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몸에 딱 붙는 H라인 스커트를 입을 때 보정 속옷이 필요해졌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미팅이 있는 월요일 아침에는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옷차림을 한다. 거울 앞에서 몸을 돌려 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옷에 붙은 고양이털을 롤러 테이프로 떼어내고 고양이 두 마리에게 다가간다. 다시 털이 붙으면 곤란하므로 최대한 몸은 뒤로 쭉 빼고 팔을 뻗어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개의 명품 백을 드는 날은 한 달에 몇 번 되지 않는다. 차를 두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부터는 더 명품 백을 들지 않게 된다. 기름 값이 계속 오르는 데다 회사 주차장이 협소해 자비를 들여 회사 근처 일반 주차장에 월주차를 했는데 그나마도 주차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못하게 되어 지하철 출퇴근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출퇴근길 엄청난 인파에 시달리며 가방이 손상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싫기도 했고 어쩐지 이렇게 값이 나가는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게 어색하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지하철 안에는 그것이 진짜라면 상당한 금액을 지불했을 명품 가방을 든 직장 여성들이 꽤 눈에 띄었다. 그게 모두 진짜일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20% 이상은 진짜가 아닐까? 그런 명품 가방을 든 여성들을 볼 때마다 궁금해졌다. 중고로 그나마 저렴하게 구입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은 민망함을 무릅쓰고 최대한 가까이서 가방을 들여다본 결과 진짜가 아님을 판별해 내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은 적도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입구로 걸어가다가 입구 바로 옆 편의점에 들러 늘 마시는 커피 음료를 산다. 진한 에스프레소 맛으로 집어 든다.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고서는 월요일 아침에 또릿한 정신 상태를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일요일 밤의 불면은 고질적인 것처럼 굳어져서 언제나 월요일 아침은 무기력하고 동시에 불안하면서 우울했다. 심할 경우 지하철을 기다리고 서 있다가 들어오는 열차를 보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었다. 일요일 밤의 SNS를 보면 다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말에 뭘 해도 항상 아쉽고 후회스럽고,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둥의 이야기들. 


 차장으로 승진하기 전에는 월요일에 회사를 째는 과감한 반항도 해봤지만 이제 대표가 들어오는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그런 용기도 내기 어려워졌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커피음료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들이키며 지하철을 타러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월요일 아침의 지하철은 평소보다 더 붐빈다. 스마트폰 어플을 보니 타야 할 열차가 도착하기 2분 전. 개찰구를 지나 다시 한 계단 더 내려가 숨을 고르고 나니 바로 열차가 들어온다. 사람들 틈에 떠밀려 간신히 몸을 구겨 넣는다. 그래도 다섯 정거장만 가면 환승역이라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는 게 다행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타지만 운이 좋으면 내리는 사람들 앞에 있다가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뒤숭숭한 꿈자리 때문에 내심 걱정했지만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 될지도 모른다. 앞에 앉은 남자가 환승역에서 내릴 차비를 하고 있다. 간혹 내릴 것처럼 가방을 챙기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종점까지 갈 기세로 내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는 앞에 앉은 사람의 복장이나 몸짓을 보고 대략 어디쯤에서 내릴지 감을 잡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빈자리에 앉아 편하게 커피 음료를 마시며 스마트 폰으로 뉴스 기사를 훑기 시작한다. 굵직한 기사들의 대략적인 내용을 훑어낸다. 뉴스 훑어보기를 마치고 이제 각종 SNS를 돌아보며 관음의 묘를 한껏 누리고 있는데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순식간에 후각을 점령해 버린다. 지린내와 땀내가 뒤섞인 역겨운 냄새였다. 씻을 물은커녕 마실 물 한 방울조차 찾기 힘든 사막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느라 뛰어다니며 4박 5일 땀범벅이 되어도 그런 냄새는 안 날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냄새의 근원지를 확인하며 깜짝 놀라는 사이 옆에 앉은 나이 든 노숙자가 바람소리라도 낼 것 같은 날랜 동작으로 내 손에 든 커피 음료를 있는 힘껏 낚아채서 쪽쪽 소리를 내가며 빨아 마시고 있었다.


 오십대로 보이는 남자 노숙자가 헤죽헤죽 웃으면서 조금 전까지 내가 마시고 있던 커피 음료의 빨대를 빨고 있었다. 눈빛은 간유리라도 댄 것처럼 탁했고 얼굴에는 시커먼 때가 뭉쳐 있었지만 입술만은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젖먹이가 공갈 젖꼭지라도 빨 듯 실룩거리며 연신 빨대를 세차게 빨아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털이 쭈뼛거리고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과 함께 불쾌감과 분노가 치솟았다. 앞에 선 사람들은 그저 구경거리라는 듯 나와 노숙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볼 뿐이다. 하긴, 누가 다치거나 죽은 것도 아니고 손에 들고 있었던 먹던 커피 음료를 노숙자에게 빼앗긴 것 정도는 관심거리도 안 될 바쁜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노숙자에게서 커피음료를 빼앗고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지만 막상 그럴 용기는 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옆에 앉아서 소리를 내가며 자신이 먹던 음료 빨대를 빨아대는 노숙자를 계속 견디며 앉아있을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승차하고 계신 손님 여러분께 잠시 안내말씀 드립니다. 열차 내 민원 접수로 인해 잠시 열차 정차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안내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공익 요원들이 들어왔다. 노숙자는 이미 다른 칸에서도 말썽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열차 내 신고 번호로 전화를 해 공익 요원이 나선 것 같았다. 덩치가 제법 큰 공익 요원들이 사람들을 제치고 다가와 앞에 서자 노숙자는 별다른 반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 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다 먹은 커피음료 빈 통을 나에게 던지듯 놓고 가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앞 칸에 있던 년보다 네년이 더 맛있네.”


지독한 냄새는 두어 번 더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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