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자존감
몇 년 만일까, 2년 반 정도? 집단 상담 이후에 개인 상담을 받기 위해 정신과를 찾게 된 건 그 정도인 것 같다. 다른 병원을 찾을까도 고민해봤지만 내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곳과 맨땅에서 하나씩 일구어야 하는 새로운 곳 사이에서 큰 망설임 없이 전자를 택했다.
무기력과 불안, 우울, 체중 증가, 자존감의 붕괴, 불면 등 갖가지 증상으로 버티다 못해 결국 뒤늦게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이다. 그 일이 있었을 때 찾았으면 더 나았을까? 이미 1년 하고도 반 정도 지나버렸지만 여전히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 일과 그 후의 감정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정의 찌꺼기가 뒤엉켜서 이제는 풀어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첫 상담 30분에 10분을 지각했다. 무의식적인 저항이었을지도 모른다. 멀지도 않은 거리, 늦게 일어났다거나 갑자기 무슨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는데 늦었다. 지각한 만큼 상담 시간은 그냥 차감된다는 것도 잘 알면서도. 내 지각으로 인해 아쉬운 상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렸고 나는 프로작을 처방받아 먹어 보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인생 최대의 몸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경신되고 있고, 오랜만에 누구를 만나는 일이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가족을 포함하여 나를 알고 지낸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무례함은 정비례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살이 찐 거야.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다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똑같다. 그리고 다 나를 괴롭히고 상처 주는 것 또한 똑같다. 아이러니다.
길에서 누군가 오랜만에 우연히 마주칠 기회가 가끔씩 있는데 그때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채 피하려고 발버둥 치는 나 자신을 본다. 이런 꼴(그들의 기억보다 적게는 10kg에서 많게는 20kg) 정도가 불어난 채로 마주하고 인사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욕스럽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를 보고 당황하여 표정관리가 안 되는 상대방을 보며 견디는 것이 치욕스러운 것 같다.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있어 앉으면 불어난 체격 때문에 전과 달리 옆사람과 신체 접촉이 일어나고 옆 사람이 팔꿈치를 옆으로 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내 뱃살에 옆 사람 팔꿈치가 닿아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몸무게에 대해 계속 떠올리다 보니 지금보다 무려 20kg 정도 덜 나갈 때도 여전히 똑같았던 것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때는 그보다 이전의 내 몸무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지금과 동일한 말과 태도를 취했고 나는 똑같이 상처받고, 모욕을 느끼고, 분노했으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거나 안 했다.
큰 체구에 비해 얼굴이 작은 편이 나를 보고 얼굴이 몸에 잘못 끼워 맞춰진 것 같다며, 얼굴에 어울리는 몸을 찾아내서 제대로 맞추라는 소리까지 들으면 내심 긍정하며 그래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야. 이런 소리를 들을 만 해. 이렇게 맞장구까지 치곤 했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고, 식탐이 있으며 자기관리가 엉망인 루저라는 낙인. 아니 더 나아가 뚱뚱한 사람이 스스로의 몸을 키워 거구가 된 것을 보고 범죄행위를 저지른 범죄자처럼 치부하는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무수한 타인들의 시선 폭력과 더불어 내 인간관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들에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간다.
마치 살을 빼서 의학적, 상식적 평균의 몸무게에 도달해야만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는 길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가치가 평균의 몸무게일 때와 고도비만의 몸무게일 때 또는 현격한 저체중일 때 달라지는 게 옳은 일일까? 당연히 아니다.
몸무게가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고 돌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자꾸만 겉돌았다. 언제나 자주 써오던 방어기제, 회피. 쓰레기통에 벌레가 들끓고 썩은 음식이 가득한 걸 알면서도 냄새 제거제만 뿌리고 뚜껑을 덮고 안 열리게 돌로 눌러놓기만 한 셈이었다.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미술치료를 공부하면서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어쩌면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은 그래도 나아지려는 희망을 가지고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한 것이니 좋은 의미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괜찮은 척하며 두꺼운 가면을 쓰고 사는 일에 넌덜머리가 난다. 하나도 괜찮지 않다. 끓어 넘치기 직전의 냄비 같은 멘탈이라 조금만 건드려져도 흘러넘쳐 엉망이 된다. 작은 파동에도 쉽게 흔들리고 가끔은 뿌리째 뽑히는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오래된 지인을 만나는 것도 모두 불편하고 싫어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만 가끔 만나는 게 전부다. 일정을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고 살만큼 모임도 많이 참여하고, 사람들도 만나던 나는 이미 실종 상태다. 아니 그전에 내 자존감이 실종되어버렸다.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을 시즌 때마다 계속 보는 중이다. 이번 시즌에 나온 래퍼 우원재의 인상적인 가사가 나에게도 용기를 줬다. 내가 공황장애를 앓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무대까지 올랐던 블랙나인이 자신의 병력을 이야기하며 같은 처지인 우원재가 자기 아픔과 상황에 대해 당당하게 가사로 써서 랩을 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는 미니 인터뷰를 보며 마음을 굳혔다.
내 우울은 사치가 아니라 아픔이고, 나는 사라진 내 자존감과 평온함을 찾아야겠다고 밝히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