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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졍씅 Feb 06. 2024

눈물범벅 짠내여행

여행은 정말이지 변수로 시작해서 변수로 끝난다. 꼼꼼하게 세운 계획이 무색해질 만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좋은 일을 겪기도, 힘든 일을 겪기도 한다. 특히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다.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였다. 바깥을 구경하다 선잠을 자다가. 조금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착 예상 시간은 거의 다 됐고, 기차가 정차하는데 뭐에 홀렸는지 역 이름을 확인하지도 않고 급하게 내렸다. 불길함은 왜 항상 맞는 걸까. 목적지의 한 정거장 전에 내려버렸다. 나를 바보라고 놀리는 듯 역은 정말 낡고 야외에 있었다. 사람도 한두 명 밖에 있지 않은 아마 이름을 들어도 아무도 모를 그런 작은 정거장이었다.

 해는 이미 져버린 지 오래,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 몸이 시려웠다. 배터리는 10% 남짓 남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전광판에는 잘츠부르크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 사이에 기차가 두어 대가 지나갔지만 역무원에게 물어볼 새도 없이 빠르게 출발했다. 물어보지도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잘못 내린 게 멍청하고,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지금껏 쌓인 서러움이 폭발해버렸다. 세상에 원수진 사람처럼 꺼이꺼이 우는데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망정이지. 나중에는 울고 있는 내가 싫어서 더 우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게 뭐라고 좀 울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띵띵 부운 눈과 빨간 코로 사람들에게 물어 잘츠부르크에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한 시간가량 그 고생을 하니 기운이 쪽 빠졌다. 그래도 다시 탄 기차에서 얼마나 안심되던지. 역시 난 운이 좋다며 방금전과 180도 다른 생각을 하며 감사했다.

 여기서 끝나려면 좋으련만, 펑펑 우는 사이에 핸드폰이 사망하셨다. 호스텔 지도를 따로 갖은 게 아니라 핸드폰 없이는 숙소에 갈 수 없었다. 일말의 기대를 안고 도착한 잘츠부르크 역에도 콘센트 하나 보이지 않고, 인포메이션 센터도 문을 닫았다. 또다시 기분이 바닥까지 꺼졌다.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을 때 운명의 장난처럼 대합실이 보였다. ‘그래, 잠 못 자게 생겼는데 쪽팔림이 무슨 대수야’라는 마음가짐으로 당차게 문을 열었고, 카카오 어피치 목베개를 하고 있는 정말이지 한국인 같은 젊은 여성분이 눈에 들어왔다. 소심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녀는 흔쾌히 보조배터리를 빌려주셨다. 어찌나 다행이던지 그녀가 날 구하러 와준 천사로 보였다.

 호스텔로 가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작은 난관이 또 찾아왔지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며 캐리어를 끌 때는 해탈해서 이 정도 비쯤이야 오라지! 하며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 한두 시간 안에 무수히 많은 감정의 널뛰기가 있던 날이었다. 이런 일을 겪으니 여행에 대해 조심해진 게 아니라 더 대담해졌다. 어떻게든 해결되고 방법은 생길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겼다. 이후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안 될 건 또 뭐야. 


 바르셀로나에선 숙소에 갇히는 엽기적인 일도 있었다. 에어비엔비를 이용했는데 건물도 낡고 이중문 구조의 집이었다. 처음부터 불길했던 게, 도착 시간을 미리 얘기했음에도 호스트는 답변도 없이 한 시간이나 뒤에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날 일이 터졌다. 호스트의 요청대로 식탁에 열쇠를 올려놓고 나왔는데 바깥쪽 문이 잠겼다. 4일 내내 열려 있어 아무 의심이 없었는데 하필 그날 처음으로 잠겨 있던 것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아마 안쪽에서 여는 게 고장났던 것 같다) 안쪽 문은 벌써 자동으로 잠겼고, 호스트는 당연히 연락을 받지 않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119에 전화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에 또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복도에 누군 간 있겠지라는 생각에 울면서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층에 있던 관리인이 깜짝 놀라 달려왔고 탈출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순간 느낀 안도감과 머쓱함이 아직도 선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 좋았던 기억도 많는데 저 망할 에어비앤비만 생각난다.     

 악명 높은 *베드 버그에 물렸던 적도 있다. 늘 호스텔을 예약했고, 도시도 자주 이동하는 편이라 그중 어디서 물린지 정확히 모른다. 심지어 돌아오고 이틀 정도 뒤에 증상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간지러웠고, 별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손과 팔에 빨간 점이 두 개씩 짝지어 올라오기 시작하자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유랑에 검색해보니 베드 버그가 맞았고 온몸이 빨간 점으로 뒤덮이는 건 아닌지 너무 무서웠다. 내 몸 위에 혹은 아직 옷 속에 베드 버그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 즉시 여행에 입었던 옷을 빨고, 침대 시트를 바꿨다.

 또 하나의 문제는 베드 버그가 모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 간지러웠다. 깨어 있을 때는 그래도 어떻게 참는데 잘 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약국에서 산 약을 바르며 제발 가라앉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며칠 뒤 증상이 점점 좋아졌다. 한국에서는 잘 나타나지도 않고 치료도 쉬운데 먼 타지에 혼자 있다 보니 아찔했다.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난한 교환학생은 호스텔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또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위와 같은 금전적 이유로 공항 노숙도 꽤나 여러 차례 했다. 한 번쯤은 경험으로 나쁘지 않은데, 막상 한 번 해보니 끊기 어려웠다. 공항 노숙이 불가피하다면 꼭 유랑이나 블로그에서 해당 공항의 노숙 후기를 살펴보길 바란다. 위험하다는 후기가 하나라도 있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숙소를 구하자. 노숙 동행이 구해지면 더 좋고. 나라, 도시마다 공항 컨디션이 무척 다르고, 그거에 따라 위험도와 피곤도가 극과 극이다. 

 첫 공항 노숙지인 바르셀로나 공항은 큰 도시답게 공항이 무척 깔끔하고 관계자가 주기적으로 돌아다녔다. 특히 콘센트도 많이 있어서 노숙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 노숙이었던 모스크바 공항은 쉽지 않았다. 시설과 콘센트 상황도 그렇고 직원마저 불친절했다. 무표정을 지나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라 약간 무섭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러시아 사람들의 특성이라고 하더라.     


 제목만큼 여행하면서 참 많이도 울고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비행기 놓칠까 봐 울고, 마드리드 교통 패스 때문에 울었다. 모두 쓰기엔 너무 울보 같을 거 같아 생략하겠다. 그렇지만 난 눈물은 마음속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한 가지 일 때문이라기 보다 서러움이 쌓이고 쌓여 터진다. 그 한 가지 일이 마음의 물을 넘치게 하는 그 한 방울이 되어서 말이다. 눈물은 일을 해결해 주진 못해도 기분을 낫게 해준다. 서러움을 훌훌 털어내고 나면 다시 힘을 낼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별 고생을 다했고 앞으로도 그럴 줄 알면서도 나는 자꾸 뛰어든다. 여행은 참 신기한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이 대체 무엇이고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에필로그에서 만날 수 있다!(두둥)



*유럽에 베드 버그가 많은 이유는 오래된 건축물과 목재, 강한 약을 쓸 수 없는 규제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다 물리는 것도 아니고 반응이 다 올라오는 것도 아니다. 다른 후기를 보니 그나마 내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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