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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졍씅 Feb 15. 2024

유럽 여행 가이드 데뷔

 2019년 1월 중순, 프로 여행러의 경험을 십분 살려 유럽 여행 가이드로 데뷔했다. 물론 그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은 지영투어 지영 가이드! 5개월간의 여행 노하우와 유럽살이를 바탕으로 우리 가족의 가이드이자 통역가이자 기타 등등의 역할에 임했다. 가족들은 나를 보러 오는 겸 열흘 동안 유럽을 여행했다. 


 사실 처음 원고에는 가족들과 여행 에피소드를 넣지 않았다. 마냥 좋았고 다 잘 풀렸던 것만 같아서 딱히 쓸 게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피드백을 통해 돌이켜보니 나름의 우여곡절과 4개의 색깔을 지닌 여행임을 알게 되었다. 같은 여행일지라도 각자가 느끼는 건 다 달랐을 것이다. 가족들이 내 책을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된 것처럼 나도 그들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번 챕터에서는 엄마, 아빠, 동생의 글을 짧게 실었다. 소소한 재미를 위해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한 번 맞춰 보시라!) 

 가족 여행의 루트는 런던-리스본-바르셀로나였다. 셋이서 런던을 구경하고 내가 리스본에서 합류, 바르셀로나로 같이 가는 계획이었다. 겨울 런던은 날이 매우 춥고, 유심칩 때문에 첫날부터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또 내가 겪은 런던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색다른 영국 억양 속에서 초보 여행자 셋이 볼 거 잘 보고 리스본으로 넘어왔다. 

 아직도 가족들을 리스본 공항에서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지났던 출국 게이트에서 누군가를 기다린 적은 처음이었다. 남을 기다린다는 게 이렇게 설렐 수도 있다니. 감동적 재회를 상상하다 약간의 울컥(?)이 섞인 상태로 나오는 사람들을 열심히 훑었다. 드디어 그들이 등장했고, 그때의 감정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너무 신나고, 반갑고, 찡하고 복잡 미묘 그 자체였다.(유튜브에 있는 ‘오랜만에 주인과 재회한 강아지’ 같지 않았을까?)

 감동은 잠시, 현실로 돌아와 짐을 열심히 옮기고 택시를 잡았다. 곧이어 언제 찡했냐는 듯이 어제 봤던 사람처럼 편해졌다. 아, 역시 가족이 제일 좋다. 이 사람들에게만큼은 제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하고, 잘해주고 싶은 초보 가이드로서 일정이 시작되었다.      




엉성해도 괜찮아. 

여행에 대한 욕심과 흥미가 없던 나는 첫 유럽 여행 전, 인생 처음으로 여행 일정을 짰다. 영국 여행책과 맛집 리스트 그리고 영국 지하철 노선도까지 펼쳐놓고 몇 날 며칠을 고심했다. 가야 할 박물관은 왜 이렇게 많고 맛있는 음식은 또 왜 이렇게 없는지. 지하철 요금은 비싸고 날씨는 안 좋고, 일정을 짜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검색과 고민을 하며 수정하고 또 수정해 결국 완벽한(?) 일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유명 관광지와 박물관, 나름 괜찮다는 식당, 그리고 추천하는 뮤지컬까지 야심 차게 짠 일정표와 지하철 노선도만 있으면 완벽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행은 순탄치 않았다. 불량 유심 카드 때문에 밤 10시가 넘도록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티켓을 구하지 못해 원하는 뮤지컬을 보지 못했으며, 일정이 너무 빡빡해 휴식 시간을 추가하는 등 일정을 대폭 수정해야 했다. 일정대로만 하면 완벽할 것이고 일정이 어긋나면 실패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경험으로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다. 항상 변수가 존재하는 것이 여행이며 계획이 틀어졌다고 우리의 여행이 실패는 아니라는 것. 처음에는 당황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달라진 일정으로도 충분히 즐겼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항상 여행에서 수동적이던 내가 고심해서 일정을 짜고 여행을 리드한 덕분에 더욱더 깊게 영국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 여행을 통해 관심 없는 분야도 한 번쯤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보는 것. 완벽을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 여행의 묘미인가 보다. 이제는 여행을 조금 더 즐겨야지! 



         

달달하고 톡 쏘는 디저트 포트와인이 매력적인 나라, 어디서나 달콤하고 바삭한 식감의 에그타르트를 먹을 수 있는 나라. 석양을 바라보며 어느 집 옥상에서라도 춤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사는 이곳은 포르투갈이다. 

 마트 진열대에 있는 포트 와인을 10유로도 안 되는 가격으로 처음 마셨을 때 그 맛에 놀랐고, 쉽게 열 수 있는 코르크 마개가 마냥 신기했다. 이런 코르크 마개가 모든 와인병에 사용될 날이 올까? 영국으로 가져가는 와인의 변질을 막기 위해 브랜디를 섞은 것이 유래가 되어 다른 와인과는 격이 다른 독한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나와 같은 와인 애호가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포르투갈 여행 기억에서 쉽게 지울 수 없는 곳은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 호카곶이다. 호카곶은 포르투갈 땅끝마을로 유럽 대륙의 서쪽 끝, 아니 대서양을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1월의 추운 날씨 때문에 일몰을 기다리는 마음은 떨리고 초조하기만 했다. 추위를 피해 기념품 가게 안을 서성이며 일몰 시각을 재촉했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이곳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15~16세기 거대한 해양 제국으로 위상을 높였던 이 작은 나라의 기개가 느껴진다. 한때 세계 최대의 영토를 보유하며 번성을 누렸던 시절은 지나가고 지금은 그 번성의 뒤안길에서 작고 소소한 일상의 아기자기함 만이 곳곳에서 느껴지고 있다. 호카곶 끝자락에 서서 대서양의 강렬하고 시린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자니,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가 일찍이 바다를 무대로 세상으로 뻗어가지 못한 것은 일상을 벗어나길 꺼리고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의 속내와 같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리스본 시내의 트램과 코메르시우 광장, 그리고 가성비 좋은 스테이크와 포트 와인 한 잔이 그리울 때는 언제든지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나라!          




여행은 단순히 관광 명소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그의 생을 만나면서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았다.      


가우디 워킹 투어에서 구엘 공원, 까사밀라, 까사바트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았다. 가이드를 통해 천재 가우디의 안타까운 죽음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전차 사고가 났을 때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를 부랑자로 알고 주변 사람들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틀 후 빈민들을 위한 병원에서 발견된 그는 상태가 심각했고, 시설 좋은 사립병원으로 옮기자고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여 도움을 외면한 시민들은 빛의 마술가, 빛의 예술가 가우디를 잃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성과 외로움은 그를 파멸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 친구 구엘, 그의 인격이 그를 지켜주었다. 구엘 공원의 문지기를 위해 만들었다는 관리소와 관리인의 집은 헨젤과 그레텔의 집이라 불리고 있다. 까사밀라 입주자의 손에 꼭 맞는 손잡이, 빛이 잘 들어오게 만든 까사바트요의 거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인부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 등은 인간 가우디의 인격, 사람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로 입장할 때 소지품 검사를 하는데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140년 동안 건축 중인 이 성당은 건축물 그 이상이며 스페인 바르셀로나뿐 아니라 세계가 다 같이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당을 나와 지하 화장실 쪽에 박물관과 shop이 있다. 박물관을 돌아보며 좁은 공간, 가우디의 작업실을 보았을 때 그의 일생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스페인 여행을 통해 인간 가우디, 천재 가우디를 만났다. 




 내가 제일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가족과 갔던 리스본의 한 식당에서 일어났다. 원래 가려던 곳이 휴무라서 급하게 찾은 현지 레스토랑에 갔다. 한국인 관광객은커녕 현지인들만 있던 곳이라 웨이터도 약간 당황스러워했고, 손님들도 힐끔힐끔 구경하곤 했다. 다행히 음식은 잘 나오고 맛있게 먹었다. 계산하고 나올 때 엄마가 ‘아리가~다’라고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가 포르투갈어로 ‘오브리 가다(여성)’이다) 이에 웨이터가 정말 함박웃음을 지으며 또박또박 ‘아리가또’라고 인사해 주었다. 뒤따라 나오던 나와 동생은 웨이터의 ‘아리가또’만 듣고 ‘왜 우리를 일본인으로 확신하고 저렇게 웃나’하고 언짢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웨이터는 엄마의 ‘아리가~다’(심지어 억양은 포르투갈어로 잘 흉내 냄)가 일본어라고 생각하고 그의 최선을 다해 인사한 것이었다. 이후 이 에피소드는 여행하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우리 가족을 웃게 해 주었다.      


 생각보다 각자 느낀 게 많아서 놀랐다. 그 나라와 문화에 대해 또는 여행하는 동안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니 내가 다 기쁘다. 반면 나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데, 가이드 역할에 몰입해서 그런 생각들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어디를 방문하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부터 교통편, 언어까지 다 챙겨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족들이 나를 믿고 맡긴다고 해도 더 좋은 여행을 만들어주고 싶고, 덜 힘들었으면 싶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앞으로 계속 다 같이 여행을 다니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함께 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참 행복했다. 나중에도 같은 경험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물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ㄴ부분이 필요하다. 혼자 여행에서 누렸던 자유와 편리함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부모님과 함께할 땐 체력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밑줄 쫙쫙!!)     

 확실히 나는 엉성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가이드였다. 그래도 지영투어를 이용한 고객들에게 재밌고 괜찮았던 투어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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