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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졍씅 Feb 20. 2024

유럽에서의 소중한 만남들


 짠내도 나지만 행복하고 안전하게 교환 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이번 챕터는 유럽에서 지낼 때 만난 소중한 인연들도 늘어놓는 일종의 헌정사다. 같이 교환학생 온 언니 오빠들, 룸메이트, 여행 동행에서 만난 사람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 등 모두가 감사한 인연이다.   

  

 모두 한국 학교는 다르지만, 리스본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언니 오빠들이 있다. 사실 교환학생 가기 전에는 영어를 마스터하기 위해 한국인하고 어울리지 않을 거라 결심했다. 그러나 그런 결심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이 의지했다. 특히 우리 혱혬 언니들에게 무척 고맙다. 혱혬 언니들은 나와 같은 본교에서 파견되었는데 둘이 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좋다. 숙소 문제로 삐걱거리던 9월, 불편했을 텐데 집에서 며칠 재워주고, 카드가 먹통이라 돈을 뽑지 못해 멘붕에 빠졌을 때도 흔쾌히 도와주었다. 우울했던 리스본 초반에도 언니들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리스본 마트에서 셋이 한국어로 수다 떨고 있으니 여기가 리스본인지 이태원인지 잘 모르겠더라. 언니들이 해준 닭볶음탕은 지금까지 먹어본 닭볶음탕 중에 제일 맛있었고, 조촐한 깜짝 생일 파티도 너무 좋았다. 눈치가 0이라 정말 하나도 몰랐네.

 언니 오빠들과 다 같이 공원에서 소풍 겸 술 마시던 날들, 서핑 체험 프로그램, 첫날 먹었던 중국 음식. 신년파티. 하지만 역시 클럽 라이프를 빼놓을 수 없다. 작은 잔에 든 싸구려 술 20잔을 10유로에 사서 나눠 먹기도 하고, 작은 동네 클럽, 풀이 있는 클럽도 가봤다. 내가 갔던 클럽들은 교환학생 카드를 사용해 입장료가 없었고, 노래는 라틴 음악이 주로 나오고 전반적 흥이 나지 않았다. 교환 초반엔 새벽까지 놀았는데, 나중엔 술 마시다 잠깐 놀곤 했다. 그 소음과 어둠이 주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춤은 잘 못 춰도 그 안에서 스트레스와 잡념이 다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수업은 종종 빠졌어도 클럽 멤버 구할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꼭 참석했다. 한국 클럽에 별로 가보지 못해서 비교하지 못하겠지만 정말 재밌었다.

 그들과 함께해 즐겁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나의 교환학생 생활에 그들이 없었다면 행복한 기억도 절반 이상 사라질 것이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한국에서도 잘 만나고 있다. 이제는 대부분 직장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사회에서 각자 한 위치씩 하고 있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다. 또 시간이 좀 지나면 결혼식에서 만나게 되겠지. 아직도 마음은 리스본에서 그때와 같은데. 아, 아무리 가는 시간 잡을 수 없다고 하지만 아쉽다 아쉬워.      


 초창기 정착에 있어서 버디 M이 없었더라면 난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리스본 대학교 버디 신청을 했고, 내 버디는 나보다 할 살 어린 귀여운 친구였다. 그녀는 처음 리스본 도착한 날 공항에 마중 나오고, 엘리베이터 없는 4층 방까지 짐 올리는 걸 도와주었다. 학교 업무 처리, 리스본 시내 관광, 친구 소개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었다. 내가 그녀였다면 이렇게까지 하진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잘 적응하고 현지인이 들려주는 리스본과 포르투갈을 알 수 있었다. 

   

 파리 한인 민박에서 인상 깊은 경험을 했다. 당시 파리 시위가 끝날 무렵이라 민박집에 손님이 거의 없었다. 그 민박집은 아침, 저녁을 모두 제공하는 곳이라서(점심을 원하면 샌드위치도 싸주셨다!) 거의 늘 혼자 밥을 먹었다. 셋째 날 저녁 오래간만에 새로운 손님이 왔다. 둘이 먹는 거라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는데, 호구조사 비스름한 걸 하면서 점점 편해졌다. 사실 그 사람 덕분에 편해진 것이다. 지금껏 상대방이 진심으로 경청해 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그 사람은 가벼운 리액션 하나하나가 아니, 굳이 리액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내 말을 진심으로 듣는구나’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보는 사이고, 밥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상대방의 말에 온 주위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인지. 덕분에 신나서 말을 늘어놓았다. 

 저녁 먹고 그는 파리에서 지내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같이 가자고 제안했는데 피곤하다고 거절했던 게 너무 후회된다. 왜냐면 그게 그와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연락처도 모른 체 그는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났다. 학교, 과, 동아리, 나이는 다 아는데 이름을 모르다니. 이제는 얼굴도 잊어버렸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마드리드의 거지 같던(?) 첫인상은 여행에서 만난 언니로 인해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언니를 처음 봤을 때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고 친해지기는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트렁크에 예쁜 옷과 구두가 잔뜩 있었고, 엄청나게 텐션이 높았다. 그러나 같이 민박집 아침을 먹고, 얘기를 나누면서 점점 밝은 에너지에 빠져들었다. 나중엔 민박집 사람들과 친해져서 클럽에 가고, 마라탕도 먹으러 갔다. 중국인들이 복작거리는 낡은 로컬 맛집에서 먹은 마라탕은 인생 탑 3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밖은 춥고 얘기 나누며 따끈한 국물 한 숟갈 먹으니 그만큼 행복한 게 없었다. 밥 먹고 근처 공원에서 서로 사진 찍어주는데 당시 사진을 정말 못 찍던 나에게 언니는 짜증 한번 없이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길가의 소품 숍에서 얼마 뒤 있을 핼러윈데이 관련 소품들을 쓰며 깔깔댔다. 학교 수업이 뭐라고(?) 핼러윈 데이까지 함께하지 못한 게 아쉽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엔 예쁜 노을을 보았다. 소소한 하루, 길거리 풍경이 짜 맞춰진 것처럼 확실하게 행복했다. 그건 바로 좋은 사람과 함께했기 때문일 거다.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친절히 대해준 사람들도 기억에 남았다.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타이타닉 박물관에 갔었다. 마지막 입장 시간쯤 커다란 배낭과 휴대폰 충전을 부탁했다자신들의 퇴근 시간에 맞물려 귀찮은 부탁일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상냥하게 받아주었다오히려 추위 속에 걸어온 내가 걱정된다는 듯이 괜찮냐고 물어봤을 땐 눈물이 핑 돌았다.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건넨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남아 큰 힘이 되었다.

 더블린에 기네스 공장을 방문하면전망대에서 생맥주를 한 잔 마실 수 있다기네스가 특성상 따르는 시간도 걸리고혼자라 뻘쭘할 수 있는 나에게 바텐더분이 친절하게 말을 건네주었다. 어디 사람이냐는 소소한 질문부터 더블린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도 간략히 알려주었다특별할 거 없는 대화지만 즐거웠고그 말 안에서  배려가 느껴져 고마웠다.


리스본에서 하루는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 옆에서 어떤 흑인 남자가 말을 걸었다.

키가 나와 비슷한 중년 느낌의 남자가 나에게 한국인이 아니냐고 물었다. 모르는 사람이 말 거는 것도 수상한데 콕 집어서 한국인이라고 언급하는 것이 의심스러우면서도(그때는 bts가 이 정도로 핫해지기 전이다) 동시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짧은 찰나에 결국 호기심이 승리하여 그에게 맞다고 대답했다. 그는 반갑게 웃으며 자신은 모로코 사람으로 과거 한국(아마 수원이었던 것 같다) 삼성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과 한국 모두 참 좋았다며 부인과 다시 꼭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국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가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느닷없이 리스본 한복판에서 흑인과 영어로 한국 동네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사람이 편견을 갖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가끔씩 편견을 깨는 일들이 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기분 좋음을 선사해 줘서 고마웠다.   


       

 나는 내 인생을 크게 보았을 때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이루고자 하는 일이 거의 이루어졌고 설사 그러지 못하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에서 잘 풀렸다. 항상 주변에 좋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3년 이상 살았던 집이 없을 정도로 자주 환경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는데도 말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대체 나의 무슨 점을 좋아하는 걸까. 

 그렇지만 나는 점점 숨어 들어갔다. 나의 모습을 전부 보이려 하지 않았다. 딱 여기까지만, ‘성격 좋은 나’까지만 곁을 주고 거리를 두었다. 잦은 이별에 덜 슬퍼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마음을 덜 주었고,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본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돌직구를 듣고 난 후 마음을 온전히 여는 법을 잃어버렸다. 내 속의 부족한 나를 보이고 상대가 실망할까 봐 혹은 나를 우습게 여길까 봐. 그리고 평생 볼 사람도 아니니까. 참 어렵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나를 활발하고, 할 말 다 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보았다. 내가 바라던 대로 됐지만, 누군가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없어 외로웠다. 상처받는 게 거절당하는 게 두려웠다. 내 내면은 늘 고독한 체 그걸 잊기 위해 더 즐거운 일을 찾고, 술을 마시고, 그저 적응하는 중이 아닐까. 항상 물음표가 가득한 생각이지만 외로움이 없는 삶은 없다고 혼자 위안한다. 아직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답이 있기는 한 건지. 



 하지만 부족한 것투성이 임에도 주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요즘도 가끔씩 의심이 든다. 그러나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라서 나를 좋아해 준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에 나도 좋을 사람이 될 수 있었음을 안다. 여기에 다 적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다섯 달 교환학생 생활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받은 사랑과 행복을 나눠주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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