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무한루프 탈출
때로는 작품에서 배경이 인물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주인공이 사는 시대나 환경을 보는 주의 깊게 이유는 그 때문이다. 걸어서 여행을 하던 시절에는 그 시절에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고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그 시대만의 이야기의 양식이 있었다.
열차나 자동차 지하철은 선로를 타고 또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자동차는 철저하게 개인화된 이동수단이기에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렇지만 가끔 가는 여행이 낭만이라면 여행지에서 날마다 도시로 출근하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해방일지. 무한 루프 탈출 작전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는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들이 직접적으로 말하는 이야기보다 주변에 배경으로 보이는 것들이 더 많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지는 것 같은 대사들 속에도 돌고도는 반복적인 소재와 주제가 있다. 그리고 그 차마 다 풀지 못한 숨겨진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세 남매의 이야기에는 서울을 둘러싼 지역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가장 노골적인 비유는 계란 노른자와 흰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경기 지역은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가 같다는 이야기. 그러나 차마 드라마에선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다. 같은 경기도민이라도 출근 거리가 멀다 해도 누군가는 신도시에 살고 누군가는 역세권과 거리가 먼 곳에 살며, 누군가는 차로 이동하고 누군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는 사실. 경기도에 사는 사람은 많지만 그 모두가 미정의 가족처럼 외딴곳에 살면서 밭일과 공장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댓글에 “저는 경기도에 평생 살았지만, 이런 시골은 살아본 적이 없다”라고 달았다.
이것은 보편적인 측면이 아닌 매우 개별적인 측면에서의 미정 가족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떤 누구도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우리 가족 같은 경우의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특별한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오렌지와 포도맛이 서로 다르듯. 서울의 삶과 산포의 삶은 비교가 불가능의 측면이 있지만, 서열 측면에서의 다뤄졌을 때 평등하지 않다. 한지역은 다른 지역에 종속되어있다. 산포에 사는 사람이 출근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산포 내에서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쇠한 지역에는 젊은이도 없고 출산도 없다. 경제적 종속 현상은 계속적인 인구유출을 불러오고 인력부족을 심화시킨다. 아무 말없이 일할 수 있는 보통의 신체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산포에 사는 한 그 지역만의 논리가 있다. 그것은 일종의 룰이다.
그것은 막차 시간. 서울과 다른 차원의 무서움. 밤이 되었을 때의 무시무시한 정막. 들개를 대하는 태도. 비 오는 날 감전을 어떻게 피하는 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겨울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 룰을 깨는 순간 다친다는 것. 그것은 잠깐 여행하듯 머무는 사람들의 감상과는 다른 것이다.
낯선 마을에 가서 너무 많은 것을 물어보지 말 것.
외진 마을에 갔을 때 그 지역 사람들에게 말을 무리하게 걸지 말것. 구씨의 경우는 오히려 동네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쪽이었지만. 말을 안 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삶의 여러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그것이 제일 무섭다. 대개는 한 계절을 다 살아봐야 알 수 있다. 왜 그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서울과는 다른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의 캐릭터가 있고 다른 세계관이 있다. 비록 외부인 취급을 받지만. 길들여진 존재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의 존재. 몰티즈나 시츄 같이 길들여진 반려동물이 아닌 야생 그 자체로 살아가는 ‘개’가 살고 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본성이다.
서로 다른 캐릭터긴 하지만 서울 외부인으로서 그들은 자신의 의미를 찾아간다. 길들여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어떤 방법은 순종적이고 어떤 방법은 공격적이지만 맥락은 하나이다. 누구로서 살아가야 할까. 첫째는 포기 못한다 했고 둘째는 자포자기 하고 셋째는 해방을 꿈꾼다.
결국 서울에 입성한 그들은 경기도민의 삶을 접었다. 하지만 그때보다도 삶이 더 팍팍하다고 느끼는 건 마음 놓고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잡담을 떠들 수 있는 공간도 또 그것을 받아주는 부모도 익숙한 내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건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뻔해져 버린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들은 언젠가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 막상 떠나보니 예전 그곳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되는 것. 하지만 돌아가도 예전 같은 그 장소 그 사람은 없다. 있다면 다행이지만.
서울 탈출을 한지도 10년이 넘어간다. 서울 탈출 이전에는 나 역시도 지하철을 타고 매일 같은 출근길을 반복했다. 아침 출근을 할 때 지하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웅장한 클래식한 음악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들의 흐름에 배경음악을 깔면 어떤 흐름 같은 것이 보일 것 같았다. 지하철은 순환 루프였다. 어떤 일은 매일 반복해도 지치지 않는 일이 있건만 지하철 출퇴근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그 루프를 탈출해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서울과 멀어지니 병원이나 쇼핑몰은 가기 힘들어졌다. 친정이나 시댁으로부터 도움받기도 어려워졌다. 누가 해주는 반찬도 없다. 있는 것은 논과 밭을 전경으로 한 전망. 그리고 언제 지어질지 알 수 없는 지하철. 그리고 미끄럼틀과 그네만 달랑 있는 넓고 넓은 놀이터. 그리고 긴 도보 생활이 있을 뿐. 10년이 지나니 이것들 마저도 익숙해져 버렸다. 가끔은 창문을 열 때 벌레도 같이 들어오지만. 그래도 이곳이 좋은건 이곳에 살다보면 이 동네 밖에 생각이 안나니까. 누군가의 애정을 갈구하게 되지도 특별히 누군가를 애써 찾지도 않게 되었다. 그냥 나는 이곳 주민의 일부일뿐. 그런데 나쁘지 않다. 평생을 두시간 이상 출퇴근을 해왔다는 남편. 15분 거리의 근처에서일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모른채 덜렁 부동산 계약해버린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 내 머리 속에는 그리운 얼굴이 더이상 없다.
여름이 오고 있다.
썰렁했던 이 동네에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들어와 빵빠레 정도는 먹을 수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미정이처럼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왔다. 나는 그녀처럼 우아하게 천천히는 못 먹고 10분 만에 해치우고 콘 부분을 아이에게 패스. 딸은 한입에 넣고 먹어버린다. 아.. 빵빠레 맛은 이런 것이구나. 삶의 축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