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이 준 선물들

털실을 만지며 느낀 따뜻한 감정들

by Who am I

니팅을 시작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 쪽 김 씨 집안사람들은 활동적이고 성격이 급하고 말도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할머니가 대표적이셨고 아빠가 그랬다. 마음은 착한 분들이지만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어서 잘못된 것은 못 참는 스타일이었다.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한가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한 가지가 틀어져도 그냥 놔두는 내 스타일과는 정 반대랄까. 반면 엄마는 아빠에 비해 느긋한 성격의 집안에서 자라난 편이었지만 형제가 많고 경제적인 게 부족했던 시대의 사람답게 '늦으면 못 얻어먹는다'는 관념이 언제까지나 머릿속에 있으신 분이다.


나는 할머니의 7번째 손주였는데 김 씨 집안 후손 치고는 템포가 느린 편이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가족 모임에 참여하면 대화에 언제 끼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그만큼 말이 빠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딘가 활동적으로 다니길 좋아하는 가족들의 성격에 못 맞추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가의 분위기는 차는커녕 술도 잘 마시는 편이 아니다. 한창 대화가 불이 붙는 건 주로 밥상 앞에서다. 심지어 예전에는 둘째 큰아버지가 이런저런 반찬을 모아 한번에 비벼 먹는 것이 최고라는 말에 아버지가 찬성을 날린 적도 있었다. 반찬을 일일이 먹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었을까. 대신 세끼는 확실하게 밥을 위주로 먹으며 반찬도 가리는 편이 아니기에 식사시간은 대단히 빠른 편. 그게 우리 집안 스타일이다. 그런 집안에서 나는 너무 천천히 먹었다. 어릴 때는 누군가 쥐어준 감이 손에서 녹아버린 적이 있을 정도였다.


결혼을 해서 김 씨 집안에서 슬쩍 비껴나가자 나를 찾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어차피 경쟁을 따라가기에는 이미 뒤 쳐 저 버린 나는 그냥 내 템포에 맞춰 살기로 했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 재밌는 볼거리를 찾을 기회는 대부분 사라져 버렸지만.


최근에 두 달 남짓 시작한 뜨개질도 나에게는 여러 의미를 주었다. 사실 나는 글 쓰는 작업 외에는 손으로 하는 작업에 별 재능이 없기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퍼즐 맞추기가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눈에 불을 밝힌 것처럼 들어왔던 것에 비하면 뜨개질은 손이 서투른 나로서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보고, ( 다이소에서 저렴한 뜨개 도구와 실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몇 가지 끌리는 작품욕심 때문에 시작한 것이었지만 기술을 배우면서부터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첫 번째, 나는 작품이 아닌 패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스웨터나 장갑 양말 인형 같은 것은 작품이다. 하지만 하나의 스웨터에는 그 스웨터를 구성하고 있는 패턴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모든 작품은 다 다르다. 대바늘은 메리야스 뜨기, 가터 뜨기 같은 것이 대표적이고 코바늘은 짧은 뜨기나 한길 긴뜨기를 기본적으로 쓴다. 그 밖에도 패턴을 만드는 수많은 기술이 있고 다른 색상을 이용해 무늬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을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경이롭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에 정확한 패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집중하고 머리로 계산해야 한다. 나는 도안을 보면서 예전 여자들이 수학이나 과학 기술분야에 못 들어간 한을 이 수작업에 풀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한 적이 있다. 코딩을 배우다 보면 좌표상의 패턴을 수를 지정해 몇 번 반복하고 원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배우는데 뜨개질 패턴에도 비슷한 점이 있다. 모든 작품의 바탕이 되는 도안이라는 건 그런 의미인 것이다. 좀 더 확대해 보자면 오래된 건축양식에 쓰인 다양한 양식과 무늬도 사실은 정확하게 계산된 기하학적 반복의 연속이다. 피라미드와 같이 큰 건축도 사실은 돌하나하나의 수치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쌓아 올려간 패턴의 연속이 아닐까.

처음으로 짠 물병커버 비교적 쉬운 난이도이지만 코바늘패턴5가지가 들어갔다


나는 문득 예전 여자들이 했던 땋은 머리를 떠올렸다. 땋은 머리나 머리 장식 매듭, 실을 꼬아서 만드는 공예는 사실 다양한 문화권에 폭넓게 퍼져있는 것 같다. 문화양식을 연구하는 것도 과거부터 이어온 생활사를 연구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패션이라는 것도 사실은 유행의 반복이 아닐까.


두 번째, 작업을 하면서 내 안에도 급한 성질, 인내심 없는 성질, 교본대로 하기보다 내 식 대로 해버리는 성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 남짓이지만 작업하다 미처 못 끝내고 바늘을 꽂아놓은 채 뜨개 바구니에 넣어버린 것이 벌써 두어 개가 된다. 뜨개질하는 사람들 용어로는 '문어발'이라고 하는데, 대개는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누군가 하는 작업을 보고 선뜻 시작했다가 중간에 뭔가 안 풀리거나 어려워서 작업이 진행이 안되거나 반복된 패턴이 너무 지루하거나, 생각만큼 예쁘지가 않거나, 다른 작품에 끌리거나, 실이 모자라거나 하는 이유로 중단돼버린 작업들이다. 사실 누군가가 마감을 요구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그냥 내버려 두면 한 없이 그 상태로 존재한다. 나도 가끔 뜨개카페에서 누군가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스웨터를 올린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복잡한 패턴과 기술을 어느 정도 익혀도 마음이 급하거나 여유가 없고 인내심이 부족하면 할 수 없는 것이 뜨개구나. 그래도 느리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배운다.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마트에 가면 3천 원에 뜨개장갑을 사는데 누가 비싼 털실을 사서 이런 힘든 작업을 하겠는가. 남들보다 더 많은 인내심과 뚝심을 가지지 않고선 말이다. 그래도 기술을 이해하고 배우는 것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니트를 보는 눈을 높여주고 좋은 옷을 고르는 눈을 길러준다. 스웨터의 무늬가 꽈배기 인지 아란 무늬인지 알게 되는 건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서 배운 하나의 감각 아닌가. 아마도 뜨개질을 배우지 않았다면 스웨터는 영원히 그저 스웨터로만 남았을 테니. 배운 것은 고작 티 코스터나 수세미 짜기 행주 짜기에 불과할지라도 시작했다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것을 마무리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그리하여 나는 이제는 누가 선물로 준 목도리 하나, 수세미 하나라도 감사하게 받고자 한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몰랐다.


털실하나의 따뜻함과 그 안에 깃든 추억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짠 목도리에서 엄마의 냄새를 맡는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들어준 작은 인형옷읕 가지고 논다. 이런 이유로 겨울이 지속되는 한 한동안은 계속 뜨개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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