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있는 공원에서 어떤 엄마와 아기를 보았다.
12개월 좀 지났을 까 기저귀 찬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유모차를 뱅글뱅글
돌며 걸음마 연습을 한다.
엄마는 "얼마 전 까지도 못 걸었잖아~" 하며
신이 나서 전화를 하는 건지
혼자 말을 하는 건지 열띤 반응을 한다.
그 엄마에게는 그 순간이 그 하루가 특별한 날이었나 보다.
보는 관객은 엄마 한 사람인데, 아이는 엄마의 리액션에 맞춰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다.
문득 이 평범한 장면이, 나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인생이라는 게, (이 표현 왠지 웃기지만)
사람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든
옆에서 웃어주고 리액션해주고 우쭈쭈 해 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나이 먹고 지위가 있는데도 그런 세계에만 산다면 그 세계를 좀 의심을 해봐야겠지만..)
아기 입장에서는 첫걸음마를 봐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반응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인생 최대의 '살 맛' 아니겠는가.
부모가 지금 내 옆에 없으면서 돈을 벌러 갔다고 해서, 아기가 그 사실을 알아주겠는가.
누가 첫 옹알이를 봐주고, 누가 첫걸음마를 지켜보고 반응해주며
같이 울어주고 같이 웃어주는가. 그 혹은 그녀가 인생의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자체가 소중하다. 그걸 일컬어 좋은 관계라고 부르는 것.
부모교육을 받으면, 부모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애써서 가르치고 배운다.
그 덕분에 부모들은 하지 말하야 할 반응에 대해서는 잘 안다.
하지만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는 것 같다.
잘했다 잘했어.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
다음에는 더 잘하자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
다음에는 더 연습해보자. 이런 이런 점을 특히 잘하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칭찬을 해보면 칭찬 받은 아이도 기대한 반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아들러가 칭찬하는것도
법이 있다했던가
아이는 엄마를 미리 아는 바니까.
공원의 그 아기 엄마는 진심에서 나온 기쁨의 리액션이어서 옆 사람도
놀랐던 것. 그 엄마는 그냥 걸음마가 정말 기뻤던 거다.. 그 순간 서로가 서로를 좋아했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관계란 어느 쪽이 옳은 가를 따지지 않으니. 그냥 와~~하고 안아만 줘도 아이는 알 것이다.
부디 그 아기가 커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살 기를.
비록 엄마 한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장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기뻐하기를. (시작은 미약했지만..)
바라 보았다.
더불어 내 아이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고 그들이 느끼는 기쁨이
내 기쁨이 되기를. 부족하지만 나아지기를.
소박하지만 개미가 살아가는 이유가
유대 관계보다 클 수 있겠는가.
굳이 이와는 생각이 달라 반대로 살고 싶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는 것이 좋다.
관계 대신 성취를 얻을 테니. 그것도 사실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런 슈퍼맨 조차도 사실은 일부 연기인 것이 그의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나도 걸음마에 기뻐할때가 있었지 9년후엔 잔소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