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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Jun 13. 2022

수학이 대체 뭐길래

-수학귀신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수포자, 즉 수학 포기자였다.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졸업하는 그날까지 나는 수학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공부라는 것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한글과 함께 다가온 숫자는 나에게 내내 거부감을 주어서 학창 시절 내내 괴로움을 주었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수학적 지능'이란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분야를 못한 것은 수학적 지능이 다른 지능보다 약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학교가 영재만을 위한 곳도 아니고 평균적인 아이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곳이라면 나를 포함해 많은 아이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게 항상 궁금했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은 정말 천재일까? 내가 수학을 못한다고 그렇게 자존감을 낮추고 살 이유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유난히 그 분야만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정말인지 가슴 아픈 좌절의 한 과정이었다. 거기다가 여자라서 그렇다는 말과 수학을 잘하는 오빠와의 비교. 그리고 엄마나 아빠까지도 학창 시절 수학은 정말 쉽고 제일 잘하는 과목이라는 말까지. 그 말을 들으면 정말 인생이 꼬이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트라우마 해소 차원에서라도 어른이 되어 이 과목을 이해해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 게다가 나는 딸을 둘이나 둔 엄마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나와 같은 실패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수학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특정 대학에는 지원조차 못했다니.



일단 엄마인 내가 바뀌어야 했다. 나는 수학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꽉 막힌 시각을 갖고 과거의 아픔과 슬픔만 가지고 접근했다가는 아이에게 그 영향이 그대로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입문서로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라는 작가가 쓴 <수학귀신>을 도서관에서 골랐다.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았을 때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읽었는지 책 표지가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그만큼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수학 시간 때문에 매일 밤 잠을 못 자는 소년이 주인공인데, 밤마다 수학귀신이 찾아와 모험을 떠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사실 비슷한 콘셉트의 책은 다른 책에도 있지만 이 책이 유난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첫 번째는 형식이었다. 다중지능 이론에서도 설명했듯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령 음악이나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 분야에 수학을 접목시켜서,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문학 책을 통해서 읽는 게 거부감을 덜 주는 방식이다. 나는 펜과 공책은 멀리 두고 누워서 소설책 보듯 휘휘 넘겨가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방법이 오히려 책상 앞에서 공부했던 기존의 방식보다 수학과 더 친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책을 보는 것이라는 것에 두뇌는 속은 것.

어쨌든 나는 평소에 모르던 개념 공부를 수학귀신에게 며칠 만에 정리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학창 시절 나보다 공부를 잘하던 오빠는 늘 누워서 혹은 엎드려서 그림책 보듯 공부를 하곤 했다. 엄마는 그게 무슨 공부냐고 했지만 오히려 성적은 더 잘 나왔다. 읽다가 자버리면 소용이 없겠지만 어쨌든 공부하는 형식이나 방법은 꼭 고정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펜으로 학습하는 것은 학교에서 충분하 다했고, 집에서는 개념을 복습하면서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수학귀신>을 보다 보면 문득 종이와 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은 적도 있었고, 이건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친숙해졌다'는 것 한 가지였고, 두 번째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 번째는 정말 중요한 것인데, 자연수는 복합되어 만들어진 복합 수라는 것. 0과 1을 뺀다면. (사실 모든 수의 기본은 0과 1인데 이 둘이 수의 천지창조를 했다고나 할까.) 적어도 자연수 과정만 따진다면 1부터 10까지만 안다면 아무리 큰 수라도 겁낼 것이 없다. 왜냐면  큰 수가 나와도 쪼개면 되니까! 더욱이 나처럼 큰 숫자가 잘 꼬이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수를 나눠서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기초를 알고 난 이후부터는 일종의 눈속임처럼 변형된 수가 계속될 뿐이라는 것. 그것이 초등 수학과정의 시작이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아이는 최근 받아 올림과 받아 내림을 하면서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거기다가 좀 지나면 2학기 과정에서는 곱셈과 구구단이 나온다. 아이들이 무수히 좌절한다는 과정. 그런데 이 과정에 대해서도 수학 익힘 책이나 교과서에는 상세하게 풀이되어 나온다.


10자리 이상의 덧셈을 한 번 살펴보자. 29+37의 정답은? 이런 식의 문제가 나올 때 아이들은 일단 세로식을 쓴다. 그리고 숫자를 올리고 내리는 과정을 연습한다. 하지만 딸아이를 관찰하니 이 과정 자체를 굉장히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해볼까.

29는 사실 (10+10+9)이고 37은 (10+10+10+7)이다. 왠지 이렇게만 써도 달라 보이지 않는가? 초 1 때 배운 가르기와 모으기를 할 수 있다면 10은 10 끼리 묶어준다. 그러면 10은 10이 5개이고 9가 1개 7이 1개이다.

9와 7을 더할 때도 10 만들기를 한다 생각하고 7에서 1을 빼주면 6이 된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10이 6개이고 6이 1개이다. 답은 66이다. 과정이 좀 있긴 하지만 기계적으로 올리고 더하는 것보다 이해가 좀 쉽다.

빼기를 해본다면 37-29=? 은

37을 일단 분해한다. 37은 (10+10+10+7)이고 29는 (10+10+9)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을 비교해서 공통된

10+10을 없애준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10+7 그리고 9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큰 수인 10에서 9를 빼준다. 그러면 1일 남는다. 그리고 남아있는 7에 1을 더해주니 답은 8이다.

어쩌면 이해하면 쉬운 과정을, 쉽게 도와준다고 세로식의 뺄셈식을 연습시키니 아이는 지금까지 덧셈과 뺄셈을 배운 기억과 꼬여서 한 문제도 풀어내지 못했다. 차라리 위와 같이 이해시켰다면 천천히 풀 망정 이해는 했을 텐데 말이다. 수를 보는 방식이 한 가지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게 결국은 핵심인 것을.

사실은 이런 식으로 수를 나눠서 보는 과정은 중학교 수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인수분해라는 것을 배우고 주로 수의 제곱을 쓰고, 제곱근을 쓰는 이유가 복잡한 수를 줄여 쓰는 방식이기 때문.

그러면 아이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곱셈을 마지막으로 예로 한번 들어보자.

9단까지야 노래처럼 외운다고 치고, 19단을 예로 들으면 19에 19를 곱한 수는 답이 무엇일까.

이것도 수를 분해해 보자.

19는 10+9이다.  뒷자리 수도 10+9이다. 앞자리 수에 뒷자리 9를 먼저 곱해준다.

10에 9를 곱하면 90. 9에 9를 곱하면 81이다. 그러면 90과 81의 합은 171.

거기다가 남아있는 뒷자리 수의 남아있는 10을 앞자리 수에 곱해주면 100 더하기 90. 합은 190이다

그러니까. 171 더하기 190을 더하면 361이 된다.


혹은 다른 방법으로 10자리를 먼저 곱해주면 앞자리 수는 190이 된다.

뒷자리 수를 곱해주면 90 더하기 81. 답은 171이다.

그러면 190과 171을 더해주면 361이 된다.


곱셈을 이해하는 것은 덧셈보다는 확실히 어렵다. 하지만 과정을 이해하면 보다 쉬워진다.

나 같은 사람은 암산보다 글로 쓰는 게 확실히 더 났다.


이 과정을 푸는 방법은 사실 한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빠른 연산을 목표로 과정도 없이 외우거나 수식을 쓰다 보면 단지 두 가지만 남게 된다.

아이가 어려워하는건 그 때문이다 거부감과  기계적 문제풀이 . 그건 오답이냐 아니냐 그뿐. 결국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은 문제를 푸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지 못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내가 어쩌면 과거에 꼬였던 것은 이 과정에서의 이해가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알게 된 수학강사님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이해를 못 한 것은 아이 탓이 아니라 개념 설명을 못한 부모 탓이라는데 그 말에 다시 한번 공감했다. 나는 계단을 오르는 데만 급급해서 오르는 방식을 전달하지 못한 것.  사실 기초학습과정이라는 것이 평균적인 학습자라면 노력하면 오를 수 있는 단계를 만든 건데 우리는 방법을 몰랐던 것뿐인지도.


덧붙여 말을 하자면 사실 큰 딸을 가르치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낀 이유가, 아이의 공부 시작점을 못 잡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다가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아이가 적어도 이 부분까지는 알겠지.라고 마지노선을 잡고 그 부분부터 올라가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나와 공부하기를 어려워하는 큰 아이는 상당히 오락가락하는 편이 있었다. 어떤 날은 연산을 잘하다가 어떤 날은 손가락으로 세는 식이니 나는 아이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아이는 나에게 솔직하지 않았고 나는 꼬리만 잡다가 결국은 엄마표 수학을 포기한 것. 이것은 내가 공식적인 선생님이 아닌 탓이라고 여기는 수밖에. 그래서 나는 결국 다른 수업방식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개념 이해를 가장 잘 시켜주는 선생님을 찾는 수밖에. 그래도 그렇게라도 공부를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다면

그것만도 성공이 아닌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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