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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Sep 20. 2022

예민함. F(X). 그리고 고래의 노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가운데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작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작품을 보았지만 각자의 관점이나 해석은 다 다릅니다. 그래도 자신이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이 있었기에 이 작품은 사람들 곁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관점은 존중하지만, 확대해석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지 '드라마' 일 뿐인 작품에 '현실'을 들이대며 판단하는 것은 또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파 해치는 것은 옳은 관점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픽션은 어디까지나 픽션으로 보고 싶네요)

네이버에서 브랜드제이님이 그린 이미지


저는 이 드라마가 왜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았을까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이유는 우영우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아니라, 사실은 내면 속에 예민함과 불편함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보통명사가 아니어서 일까라고 짐작합니다. 물론 그 예민함은 정도의 차이가 있고 단지 예민하다는 것 만으로는 자폐인들이 겪는 그 어려움이나 두뇌의 기능까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겪는 그 수많은 불편함에는 말을 할 수 없는 각자의 어려움이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표현하지 않고 그걸 묵인하면서 잊어버리기도 하죠. 그래서 '이불 밖은 위험해'의 다른 뜻은 사실 길을 가다가 나무가 쓰러지고 차가 도로에서 행인을 덮치는 그런 위험요소가 아니라, 단순히 길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의 시선이나 추운 날씨, 시끄러운 소리 같이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우영우가 마주치는 이런 상황들을 아주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우영우는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첫 출근하는 상황에서 여러 상황과 마주칩니다. 지하철 의자에 앉았는데 낯선 사람들이 자꾸 팔꿈치로 치고 쇳소리를 내며 덜커덕 거리는 지하철은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누군가의 발이 자꾸 내 쪽으로 다가오고 어지럽고 긴장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영우는 헤드폰을 끼고 '고래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녀가 한강을 건널 때 저 넓은 하늘 위로는 고래들이 지하철을 따라 하늘 위를 날아다닙니다. 단지 헤드폰을 꼈는데 같은 공간이 순식간에 바닷속처럼 고요하고 편안해집니다. 그것은 그녀를 안정시켜주는 내면의 공간입니다. 그녀는 잠시나마 회복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을 볼까요. 사람들도 아침의 지하철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전날의 피곤함, 낯선 인파가 주는 불편함을 다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건 위험하죠

사람들은 멍하니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을 잠시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멍하니 바라보는 휴대폰은 우영우의 바다 같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아주 잠시 불편한 상황에서 피했다가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다 읽지도 못한 인터넷 뉴스의 페이지들이 그대로 열려있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또다시 불편한 상황에 들어가 오늘 하루도 참고 지냅니다.


드라마에 이후에 등장하는 많은 장면들은 사실 이 장면에 대한 변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하철이 끝나고 회사가 등장하고 재판정이 등장하고 의뢰인들을 만나고 복잡한 상황에도 빠집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데에는 나름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내면이 쉴 수 있는 그녀만의 퀘 렌시아 즉, 심리적 휴식 공간이 있기 때문이었죠.


심리적 휴식 공간은 사실 실제로 있는 물리적 공간일 때도 있고, 헤드폰으로 듣는 고래 소리 같이 단지 시간을 갖는 그 자체일 수도 있는데요. 이 심리적 공간은 우리 내면이 숨 쉴 수 있는 심리적 공기를 제공합니다. 우영우가 아니 러더라도 이 심리적 공기를 제공하는 시간과 장소가 없다면 아마도 우리는 매일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우리는 사회적 공포로부터 잠시나마 피할 곳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영우의 특별함은 그녀가 서울대를 나온 최우수 로스쿨 졸업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극도의 예민함을 갖고도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 내면적 세계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F(X)=?

한동안은 아이들 옆에서 같이 수학책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중학생 책도 보고 고등학생 수학도 보았습니다. 어릴 때는 공부가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마치 고래가 있는 바다를 보는 것처럼 평안하게 보입니다. 수의 세계는 마치 바다처럼 넓고 , 미지의 것으로 가득한 추상의 세계로 보입니다.

우연히 함수 편을 읽다가, F(x)=Y라는 수식을 보았습니다. F(X)는 문과인 제 언어로 풀자면 마치 가정법을 이야기하는 개인의 이야기 같이 들렸습니다. 추리 소설이라면 X는 분명 용의자 중 한명일 수도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함수 속에 들어간 X가 나올 때는 Y값으로 나오는 그 이유입니다.

저는 이런 함수가 마치 드라마 작가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가의 함수 속에 들어간 우영우는 현실 속의 우영우와 같지 않습니다. 그는 일반적인 법칙을 깨고 Y가 되어 세상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 시각에서 본 세계는 지금의 우리가 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지하철 2호선을 많이 타봤지만, 한 번도 우영우 같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F(X)=X 인 저와 드라마 속 그녀의 차이가 아닐까요. 하지만 드라마 덕분에 저는 지하철과 한강에 대한 다른 기억을 한 가지 갖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과 지하철을 타고 떠난 여행


예민한 아이를 키울 때 부모가 지나치게 허용해주어도 안되고, 억압해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자신의 세상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불편함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찾도록 말입니다.

저 역시 예민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외출이 쉽지 않습니다. 지난번 연휴 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이 낯선 장소에 부딪히는 온갖 돌발 상황들을 대응해야 합니다. 처음 가는 장소에서 마주치는 온갖 상황들에서 아이들은 조금도 자신을 감추지 않고 표현해댑니다. 먹는 것부터 걷는 것까지 모든 것을 다 그대로 표현합니다. 큰아이는 소리에 예민하고 둘쩨는 쉬지 않고 떠들어댑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가끔 무지개도 보고 신기한 것도 잘 찾아내고 자신들 만의 재밌는 상황도 잘 연출합니다. 힘들긴 하지만 어른들처럼 부정적이진 않은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렇기에 4명이 떠나는 여행이 엉망진창 여행인 건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힘들어도 또다시 같이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죠.

 고래 소리를 들어보니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실제로 들어보았습니다. 듣다 보니 정말로 고래끼리 대화하는 느낌이 듭니다. 만약 수 많은 고래들이 한꺼번에

떠든 다면 그 목소리를 다 구분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알래스카에서 하와이까지 핸드폰없이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고래 같이 큰 포유류가 바닷속에서 이렇게 신기한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는 걸까요. 잠시나마 이 소리를 들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마치 바닷속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푸근해지는 그 마음을 전달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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