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발안만세시장은 사람들로 붐빈다. 만세시장 5일장에 온 사람들, 휴일을 맞아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들로 북적되는 이 거리를 쭉 걷다 보면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곳, 계단 위에 그곳에 성당이 있다. 여기는 위치상으로 시장이 끝나는 길 부근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어디서나 잘 보이는 그런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지역의 역사를 아우를 만한 가치를 지닌 곳이기도 하고, 그렇게 숨겨진 채로 있기엔 아까울 만큼 방문의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외관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그곳은 무려 73년의 역사를 지닌 발안성당이다.
언덕을 오르면서 그 외관에 놀랐다. 예전에 서울에서 살면서 나는 어느 건물에 들어가든 땅값이 비싼 곳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공간의 협소함과 효율성에 대해 늘 익숙해져 있었다. 내부에 있어서도 (강남에 가까이 갈수록) 성당건물도 일반 건물과 차이점을 못 느낄 만큼 기능적인 면과 편리성이 중시되는 곳이 서울이다. 가령 좀 더 편한 완벽한 난방 주차장과 화장실, 결혼식을 위한 공간. 건축이 사실은 우리가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을 밖으로 드려내는 하나의 양식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 지 이미 오래였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안세영의 사진공간
그런데 발안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대지의 협소함과 효율성에 갇혀있던 내 좁은 시야가 넓어진 것을 느꼈다. 이곳이 평범한 지역 성당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말이다. 넓게 펼쳐진 마당의 존재는 서울에서 사치에 가까우니까. 넓게 펼쳐진 동산은 푸근함으로 방문객을 맞이해 주었다. 또한 이곳 너머로 하늘을 향해 넓게 펼쳐진 백자 잔받침이 지붕으로 얹어 있는 아름다운 성당 건물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한옥지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는 그 고딕양식의 뾰족 첨탑과 스테인글라스 붉은 벽돌로 된 교회 건물과는 다른 큰 규모의 현대적 건축물 성당 말이다. 조사해 보니 이곳은 1999년 김영섭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어 내 외부의 공간을 유기적으로 역어낸 일종의 '작품' 같은 곳이었다. 신자가 아닌 남편은 이 성당의 첫인상에 대해 "엄청 힙하네"라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건물의 외관이 모두 시멘트이고 모노톤인 데다가 아무 채색도 없는데도 그 형태 만으로도 어떤 한국적이면서도 종교적인 멋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건축가 김영섭. 건축문화건축사 홈페이지
출처: 건축가 김영섭. 건축문화건축사 홈페이지
출처: 건축가 김영섭, 건축문화건축사 홈페이지
발안성당의 역사가 쓰여있는 안내판. 1950년 이후 지역주민들의 집합공간이었다.
건축가 입장에서 좁은 대지에 위로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기 때문일까. 성전의 기능을 넓은 대지에 분산해 배치 구성해 놓았다. 성당 마당을 지나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찰에 있는 일주문을 지나는 것처럼, 알파와 오메가가 쓰인 건물 외부에 있는 '천국의 문'을 지나야 한다. 가로로 길게 세워진 곳을 통과해야 비로소 진짜 성당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렇듯 건축가는 성당 건물의 내 외부를 어떤 신앙적인 의미로 서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입구 왼쪽으로 이어진 건물 외부에는 테두리 없는 시계와 십자가를 창살로 한 창문이 보인다. (아마도 신앙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천국의 문
세상의 모든 시간을 나타내는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테두리 없는 시계가 있는 문을 지나면 그곳에는 성당과 한 쌍을 이루는 듯 이곳을 알리는 십자가 종탑이 보인다. 이 십자탑의 맨 꼭대기도 성당건물과 똑같이 작은 백자 잔받침이 얹혀있는데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가톨릭 고유의 의미를 담은 한 편 본 건물과 한 쌍을 이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건물 자체가 워낙 현대적이기 때문에 십자가나 예수님 상을 조각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이 가톨릭 교회임을 종탑이 알리고 있는 것이다. 종탑에서 종이 울린다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
첫날 들렀을 때 성당건축의 비밀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외관상으로 봤을 때 경사로를 통해 2층을 올라가고 지하 1층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독특했다. 보통 한 건물을 높이 올려 모든 기능을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최근의 건물들과 비교했을 때 성전에는 대성전 하나가 제일 중점적으로 자리 잡고 있고 그 밖의 기능을 바깥으로 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편한 것을 찾아 성당이나 절을 오는 것은 아니니까, 모든 것은 편리함에 초점을 두었다기보다는 종교적 의미로 해석해야겠지. 건축가 의도에 따라 2층까지 성전의 경사로를 오르면서 먼 곳까지 보다 보면 그곳으로 내려오는 사순절 행렬만큼이나 신성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각형의 건물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배경지식 없어 그 복잡성에 놀란다)
지난 일요일 11시 오랜만에 발안성당에 교중미사를 보러 갔다. 본당내부를 한번 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미사가 없는 날 굳게 닫혀있었던 문은 이날 신자들을 위해 열려있었다. 본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번의 로비를 지나야 하고 드디어 미사 집전 공간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접할 수 있었다. 대성전 문 역시 이 건물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데 문의 안쪽에서 보면 밖에서 들어온 빛으로 무늬가 문에 드러났는데 독특하고 아름다운 인상을 남겼다. 대성전 문이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무겁지 않게 부드럽게 열렸다. 미사를 시작하는 준비가 한 창이었다.
출처: 김영섭의 건축문화건축사 홈페이지
대성전 내부는 외관과 마찬가지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외벽 디자인 그대로 중앙의 제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보통은 성전 내부로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데 빛이 들어오는 곳은 왼쪽 상단 벽에 열린 공간과 제대 뒷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안에서 조명을 쓰지 않고도 건축양식을 통해 밖에서 들어오는 빛의 채광효과를 최대한 이용하는 지혜가 엿보이는 듯했다.
출처: 김영섭의 건축문화건축사 홈페이지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는 주변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미사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의 비중이 꽤 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미사에는 한국인들이 많은 여느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은 신자수가 점점 줄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교우 분과의 대화 중에 알게 되었다. 주변의 다문화 주민들을 위한 영어미사가
있더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지닌 성당의 가치와 70년에 가까운 역사가 묻혀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기만 표현력으로 이미지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성당을 지었던 사람의 의도를 우리는 어디까지 전달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동탄에 비하면 우리 지역에는 볼 것이 없다. 성당도 없다. 너무 평범하고 지루해. 맛집도 없다.라고 말하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주변에서 봄이 되면 발안천 꽃구경을 가보라고 해도 막상 가보지도 않은 채 꽃이 피는지도 모르고 살던 지난날들. 올해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사는 이곳에서 새로움을 찾으려고 노력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