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걸 '소확행'이라고 하나요?
브런치에서 독일 생활의 불만을 토로했었지만,
오늘은 독일에서 살면서 정말 좋은 점 하나를 이야기하려 한다. 바로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크리스마스 2-3주 전부터는 약속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다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 먼 친척들, 지인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평소 집순이인 나도 주중 저녁이나 점심에 약속이 가득 찬다.
만나면 거리에서 '꺅꺅' 거리는 시끄러운(!) 반가운 인사, 그리고 빅허그로 시작해서 카페나 브런치, 식당에서 그동안의 근황부터 내년 계획까지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여기에 5-10유로 정도의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보통 작은 엽서나 초콜릿, 독일 전통 과자인 렙쿠헨(Lebkuchen, 독일식 진저브레드(gingerbread)로, 생강으로 향을 내고 설탕 대신 꿀, 당밀 등으로 단맛을 낸 과자빵이다) 같은 것을 선물하는데, 이때 중요한 건 'give and take'의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답게 크리스마스 1-2달 전부터 거리와 상점들이 준비로 분주해진다. 특히 크리스마스 4주 전부터 시작되는 어드벤트 기간엔 독일 가정마다 4개의 초가 있는 어드벤트 크란츠(Adventskranz)를 두고 매주 일요일마다 하나씩 켜면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또 매일 하나씩 열어보는 초콜릿 달력이나 매일 다른 맛의 차를 즐길 수 있는 어드벤트 스페셜티 차 세트 같은 제품들도 인기가 많다.
어드벤트 크란츠(Adventskranz)
: 대림절 화환, 또는 대림절 왕관이라고 불리는 4개의 양초가 달린 화환이다. 서양 교회의 전례력에서 대림절 4주간의 경과를 상징하는 기독교 전통으로, 전통을 따지면 루터교의 관습이지만 다른 많은 기독교 교파에도 퍼져 있다. 대림절 첫 주일부터 촛불을 켜고 성경을 읽는 시간을 보낸다. 이후 매 주일마다 촛불을 추가로 켜서 대림절 마지막 주일에는 4개의 촛불이 모두 켜질 때까지 사용한다.
플로리스트 워크샵에서 직접 어드벤트 크란츠를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집에 가져다 두고 나일롱 천주교 신자지만(엄마 미안...) 일요일마다 초를 켜는 나만의 의식이 생겨서 행복했다. 솔방울과 솔잎 향이 은은하게 퍼져 기분도 좋았다.
당시 플로리스트의 말에 따르면, 어드벤트 크란츠는 대목이라 시즌이 시작되기 2-4주 전부터 공장처럼 만든다고 한다. 그래도 매년 내놓기가 무섭게 다 팔린다고. 매년 사지는 않지만, 수많은 독일 가정이 꽃집에서 사가는 것 같다. 마치 한국의 추석 때 떡집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로컬 샵이나 고멧 마켓에 가면 크리스마스 트리, 캐롤, 구수한 빵 냄새, 따뜻한 스웨터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평소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지만, 이 시즌만큼은 이런 북적거림이 좋다. 무엇보다도 사람들 얼굴이 다들 밝아보이고 행복해 보인다. (다들 올해 일을 슬슬 마무리하고, 긴 휴가에 들어가니 얼굴이 피는 것이 아닐까 ㅎㅎㅎ)
내가 사는 집 주변에 쿠담(Kurfürstendamm, 줄여서 Ku'damm) 명품 거리가 있는데, 어드벤트 시즌이 되면 온 거리가 노란 불빛으로 환해져 너무 예쁘다. 특히 차를 타고 지나가면 마치 별빛 속에서 드라이브를 하는 것 같아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꼭 이 거리를 몇 번이고 일부러 지나쳐서 간다. 이런걸 소셜미디어 말로 흔히, Romanticize the Christmas Season이라고나 할까? :)
당연히 독일하면 크리스마켓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3년 이상 살다보면 다 알 것이다. 매년 비슷한 상품에 비싼 가격, 같은 음식들. 심지어 글루바인(뱅쇼)이나 핫초콜릿 등의 음료수를 마시려면 컵 보증금까지 내야한다. 근데 이상하게 매년 또 가게 되는 마법 같은 곳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켓(Nürnberger Christkindlesmarkt)이나 드레스덴 크리스마켓(Dresden Christkindlesmarkt)을 가면 해당 마켓의 컵을 가져오는 것이 기념이 될 순 있다.
베를린은 특별히 다양한 테마의 인터내셔널 크리스마스 마켓도 있다. 예를 들면 12월 둘째 주에 내가 찾아간 크리스마스 로데오(Weihnachten rodeo) 마켓이 그 예시이다. 이곳은 실내에 구비된 크리스마켓으로 극장을 빌려 개조해 마켓을 열어서 입장료를 내면 팝콘과 음료수가 공짜였다. 여러 나라에서 온 공예품에서부터, 독일 또는 베를린 로컬 브랜드의 제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일본 관련 샵이 엄청 많았는데, 신기한건 이제 한국 관련 샵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스타트업으로 나름 성공한 한국인이 창업한 Easycookasia도 보였는데, 재밌는 것은 대한민국 각종 지역과 연계해 여러 상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인삼으로 만든 글루바인도 팔았는데, 물어보니 인기가 꽤 좋다고 했다.
이 마켓을 방문하게 된 것은 독일에서 우연히 알게 된 지인 덕분이었다. 2024년 초, 알게 된 지인 커플의 한국 술 마케팅과 브랜딩을 도와준 인연이 있다. 바로 하루 소주(Haru Soju)다.
이 젊은 커플은 초록병으로 대표되는 저렴한 소주가 아닌, 양질의 한국 소주를 알리고 싶어 브랜드를 런칭했다. 남편은 한국의 대기업을 과감히 그만두고 독일 뮌헨 공대 양조학과를 졸업해 쾰른 양조장에서 직접 고품질 소주를 만든다. 부인도 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 집에서 직접 막걸리를 담글 정도다.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에 열정을 쏟아 실제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모습이 멋졌다. 잠깐 도왔지만 좋은 에너지와영감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풀어보고 싶다. 독일에서 술 선물이 필요하다면 하루 소주를 강력 추천한다. 직접 시음해보고 다른 친구들의 평도 들어봤는데, 공정 프로세스나 두 창업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은 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든다. :))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분주했지만, 여기서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더 진정성 있고 덜 상업적인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문화적 차이일 것이다. 한국은 설날, 추석이 더 큰 명절이니까.
이렇게 독일의 우울한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크리스마스 시즌.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듬뿍 즐겨야겠다.
Enjoy while it lasts. 다들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