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WIPO Global Innovation Index(GII)
새로운 캠페인을 준비하다 competitor intel 자료 조사 겸 읽은 흥미로운 자료를 소개, 공유한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Global Innovation Index(GII), 한국말로는 글로벌 혁신 지수 리포트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글로벌 혁신 지수(GII, Global Innovation Index)는 전 세계 국가(133개국)와 경제의 혁신 성과를 측정하는 보고서다. 혁신 투입(Innovation Input) 요소(예: 제도, 인적 자본 및 연구, 인프라, 시장 및 기업 성숙도)와 혁신 산출(Innovation Output) 요소(예: 지식 및 기술 산출, 창의적 산출)로 나뉘며, 총 80개의 세부 항목으로 평가가 진행된다. WIPO GII는 매년 발표되며, 국가별 혁신 경쟁력을 비교하고 기업과 연구자들이 혁신 역량을 평가하며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2024년 한국은 종합 순위 6위를 차지했다. 작년 10위에서 무려 4단계나 껑충 뛰어올랐다. 2023년 당시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과학기술계가 충격에 빠졌던 걸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다.
스위스가 14년 연속 1위를 지켰고, 스웨덴, 미국, 싱가포르, 영국이 그 뒤를 이었다. 일본은 13위로 2021년부터 같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중국은 11위를 기록했는데, 중간 소득 국가 중 유일하게 상위 30위권에 진입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역으로 나눠 보자면 한국은 SEAO(South-East Asia and Oceania,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집단에서도 싱가포르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11위, 일본은 13위). )
특히 재미있었던 건 S&T(Science and Technology Clusters) 순위다. 특허출원과 과학 문헌 출판을 기준으로 발명가와 과학자 밀도가 높은 지역을 선정하는데, 상위 5위가 모두 동아시아에 몰려있다. 도쿄-요코하마가 1위, 선전-홍콩-광저우, 베이징, 서울(4위), 상하이-쑤저우 순이다. 특히 대전은 종합 7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주요 대도시권 밖에서 상위 10위 안에 든 유일한 아시아 클러스터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탑 과학기술 분야 연구 대학인 KAIST를 비롯해 대전 대덕 연구단지,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ETRI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이 몰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은 연구, 개발 및 지식 노동자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교육은 2위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혁신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나라가 작고 인구가 적어도 가진 건 인재뿐"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으로,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부만이 살길 혹 억 단위가 드는 뜨거운 교육열의 나라라는 웃픈(!) 현실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외 정보,통신 기술(6위), 신용(7위), 일반적 인프라(8위) 및 지식 흡수(9위) 등의 분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의 기업 연구개발(R&D) 투자는 GDP의 4.1%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한국의 혁신 역량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2024년 R&D 예산 삭감 뉴스에 따라, 각종 우려가 여러 기관과 미디어에서 제기되었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GDP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예산 삭감이 잘한 결정이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자원이 부족한 좁은 한반도에서 우리가 믿을 건 뛰어난 인재와 고부가가치 기술뿐인데, R&D 예산 삭감은 우리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GDP 대비 국내 특허 건수, 국제 특허(PCT) 건수, 산업디자인 건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이러한 성과는 한국이 무형자산(2위)과 지식 창출(4위)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성과는 내가 몸담고 있는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산업 분야에서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은 특허 집약도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국가로, 특허 패밀리 수 1위와 첨단 기술 수출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PCT 출원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관리하는 특허협력조약(PCT, Patent Cooperation Treaty)에 따라 특허를 출원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를 통해 하나의 출원서를 통해 여러 국가에서 발명에 대한 특허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Thought Leadership의 일환으로 매년 발간되는 여러 리포트와 자료 캠페인의 테이블 랭킹을 보면,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한국과 독일을 비교하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는데, 한국의 연구 인재의 82.6%가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이 세계 1위로 평가되는 지표로, 기업 중심의 혁신 생태계를 잘 보여준다. 반대로 독일은 기업 주도가 아닌 산학 협력과 산업 클러스터 개발에서 강점을 보인다.
내가 과거 독일 및 유럽의 스타트업 및 벤처 생태계를 연결하는 파트너십 매니저로 일하면서 산학 협력과 기업 주도의 차이를 뚜렷이 체감했다. 현재는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분야에서 PMM(프로덕트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며, Thought Leadership을 중점으로 고학력자 타겟(변호사, IP 헤드 디렉터 등)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진행하는 현장과 네트워크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Fraunhofer 협회와 같은 연구소가 기업과 공동으로 R&D를 진행하며, 첨단 기술의 상용화를 촉진하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Max Planck 연구소는 기초 연구를 통해 창출된 기술을 바이오, AI, 양자 컴퓨팅 같은 혁신적인 산업에 이전한다. 또한, 각 지역별로 뮌헨, 슈투트가르트, 쾰른 등은 각기 다른 산업에 특화된 클러스터를 이루며, 연구 기관, 대학, 기업이 협력하여 자동차, 재생 에너지, 로봇공학 등에서 혁신을 이뤄내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즉, 한국은 빠르고 실용적인 혁신 모델을 통해 신속히 상용화에 성공하는 강점을 보이는 반면, 독일의 모델은 당장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공적인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독일의 문화와 정책 방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한국은 생태적 지속 가능성(47위), 기업 환경(35위), 투자(26위), 규제 환경(25위) 같은 지표에서는 상위 10개국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고 나왔다. 이는 관련 분야에 대한 정부 및 민간의 투자와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을 시사하며, 더 나아가 소비자층에서도 이에 대한 강렬한 요구나 수요가 부족한 부분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친환경이나 ESG경영(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이 아직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글로벌 경쟁에서의 성과에 몰두하며, 친환경 경영은 종종 뒷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 중심의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실제로 유럽 내에서 어느 회사나 산업 이벤트에 가더라도 친환경 경영과 대체에너지와 같은 키워드는 항상 중요한 화제로 자리 잡고 있다.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이러한 키워드들은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는 수준을 넘어, 최소한의 투자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요소로 평가된다. 이는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기업의 이미지 강화와 소비자 신뢰 확보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왔지만, 사회적 기업이나 지속 가능한 연구 투자에서는 독일과 같은 장기적 관점의 접근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기업 내부의 폐쇄적 문화와 대기업 중심의 구조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그리고 공공 연구 기관과의 협업을 제한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아래 예전에 쓴 "내가 겪은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 글에서도 "대기업과 스타트업 협력 모델"에서 아쉬운 점으로 잠깐 언급했던 부문이다.
한국은 또한 리스크 회피(risk-averse) 성향이 강한 벤처 투자 문화와 대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로 인해 신생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 자금을 확보하거나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기 투자 및 고위험 혁신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다양한 투자 펀드와 정책적 지원을 통해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더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빠른 성과와 실용적 혁신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의 연구 투자, 산학 협력,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한 벤처 투자 문화와 대기업 위주의 폐쇄적 구조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차이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가진 뛰어난 기술력과 인재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더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랭킹 및 수치 자료는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Global Innovation Index(GII) 리포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총 300페이지가 넘기 때문에 알아서 건너뛰실 부문은 휙휙 건너뛰시길... ^^; (참고로 자세한 한국 지표는 217 페이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