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빛나는 발걸음, 새로운 길

by 동이의덕왕

광복 80주년

빛나는 발걸음,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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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주 조선업 두번째를 쓰고 많은 분들이 예전 모습을 그립다며 애정어린 질책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보여줄게 달라진 내모습을 다짐하며 설탕 꿀물 가득 묻힌, 음성지원되는 정성글을 준비했었으나 광복 80주년을 다루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달달한 글은 다음에 준비해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이번 시간에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이 걸어온 지난 80년과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광복의 의미


2025년 8월 15일은 우리가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라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빛을 되찾은 지 꼭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광복(光復)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해방을 넘어, '빛을 되찾는다'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잃어버렸던 국가의 주권과 민족의 혼, 그리고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되찾았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광복 80주년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한 세대가 성취한 업적에 대한 평가이기도 합니다. 8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선조들은 무엇을 이룩했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으며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떤 그림자와 마주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세계사 속의 8월 15일: 변화의 중심에 선 하루


8월 15일이라는 날짜는 유독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절과 1948년 정부수립일로써 의미가 있으며, 북한 역시 이 날을 '조국해방의 날'이라는 최대 명절 중 하나로 기념하고 있으고 K방산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폴란드에게는 국군의 날입니다.


세계사 속의 8월 15일을 살펴보면


1534년 예수회 설립 서원에서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동료들이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첫 서원을 하며 가톨릭 개혁과 선교, 교육의 새로운 시대를 연 예수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1914년 파나마 운하 개통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지름길이 열리며 세계 해운 물류와 무역 질서를 재편했고, 제국주의 열강의 군사 전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선언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동아시아 식민 제국의 종말과 냉전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분기점이었습니다.


1947년 인도 독립은 영국으로부터 공식 독립을 쟁취하며, 거대한 제국주의 시대의 해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1960년 콩고 공화국도 프랑스로부터 해방되며 아프리카 대륙에 불어닥친 탈식민화의 물결을 가속했고,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 개막은 반전, 평화, 사랑의 메시지를 외쳤던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단순한 음악 축제를 넘어 한 시대의 정신을 대변했습니다.


이처럼 8월 15일은 해방과 독립, 혁신과 평화의 다층적 의미가 교차하는 날입니다.


헌법이 명시한 우리의 정통성: 1919년 임시정부로부터 이어진 법통


본격적인 발전사를 살펴보기 전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논란부터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현행 헌법 전문은 다음과 같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 명확히 규정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 헌법 전문 -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부에서 제기되는 1948년 '건국절'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배치됩니다. 이승만 대통령 자신도 1948년 8월 15일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이라고 표기해 1919년이 대한민국의 원년임을 인정했습니다.


건국절 주장은 "나라가 없었으므로 팔 나라도 없다"는 논리로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 부끄러운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기에 남아있는 뉴라이트적 논란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의 발전 궤적: 절망에서 기적으로, 기적에서 선진국으로


광복 직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으나,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 기적적인 여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절망 속의 출발 (1945년 ~ 1950년대)


광복의 기쁨도 잠시, 우리 앞에는 폐허가 된 국토와 극심한 빈곤만이 놓여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으로 대부분의 국민이 한글을 읽지 못했고, 산업 기반은 전무했으며, 6.25 전쟁은 그나마 남은 것마저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인구 및 사회 차원에서는 약 1,600만 명의 인구, 78%에 달하는 문맹률을 기록했습니다. 12세 이상 기준으로 전체 인구 1,025만 명 중 798만 명이 한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GDP의 50% 이상을 농업에 의존했고, 1953년 기준 1인당 GDP는 고작 67달러였습니다. 이는 당시 가나(190달러)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였습니다.


1951년 10월 1일,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영국 더 타임스 신문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낫다"는 기사를 실으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1951년 영국 더 타임스 신문에 실린 기사


1955년 10월 유엔 한국 재건위원회에 참여한 벤가릴 메논 인도 국회의원도 한국을 일주일 정도 시찰하고는 "한국에서 경제 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며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바라봤습니다.


이 문구들은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주홍글씨가 되어 1960년 4.19혁명,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도 외신들이 인용하며 우리의 현실을 전하는 '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은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1955년 8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최무성 삼형제는 미군 지프를 해체하고 드럼통을 펴서 대한민국 최초 자동차 '시발(始發)'을 만들어냈습니다. '시작할 시, 출발할 발'이라는 이름처럼, 이 차는 한국 기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955년 광복 10주년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첫날부터 만원사례를 이루었고, 총 2,235대가 생산되어 한국인의 기술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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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시에도 시발은 욕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에, 왜 이렇게 이름을 상스럽게 지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하이라이트는 라디오 광고의 로고송이었습니다.



시발, 시발, 우리의 시~발 자동차를 타고 삼천리를 달리자~
시발, 시발, 우리의 시~발 자동차를 타고 종로 거리를 달리자~



지금이라면 방송 허가는 커녕 회사가 망했을 것 같습니다.


건축 역사에서도 새로운 시작이 있었습니다. 1958년 서울 종암동에 지어진 종암아파트는 해방 후 우리 손으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낙성식을 참관했고, 최초로 수세식 화장실이 도입되어 주거문화의 혁명을 예고했습니다. 종암아파트는 국민들이 선호하는 남향에 전통적인 풍수지리를 담은 배산임수형으로 지어졌는데 정작 설계는 독일에서 했습니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지만 막상 분양에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높은 곳에서 자면 고공병에 걸린다'며 기피했기 때문입니다. 초고층 아파트가 넘쳐나는 지금에서는 어이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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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 투쟁 (1960년 ~ 1980년대)


이 시기 대한민국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하나는 '가난과의 전쟁'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재와의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의심과 편견 속에서 땀으로 경제성장을, 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절망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열망 하나로 뭉쳤습니다. 정부 주도의 강력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국민들의 피와 땀이 어우러져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이면에는 서독으로 떠나야 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눈물,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머나먼 타국으로 입양되어야 했던 아이들의 슬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장 측면에서는 1962년부터 연평균 8~10%에 달하는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수출에 반대하는 자는 죽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출주도형 산업화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고, 환율과 세제 혜택을 총동원했습니다.


인프라 구축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70년 국가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1973년 포항제철에서 첫 쇳물이 나왔으며,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었습니다. 주거 혁명에서는 1962년 마포아파트가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로서 당시 박정희 의장이 "혁명 한국의 한 상징"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현대적 주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스포츠에서도 상징적인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1976년 8월 1일 오전 9시 27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대한민국에게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주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100만 명이 카퍼레이드로 환영했던 그 순간은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출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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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감동의 순간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습니다. 7세 굴렁쇠 소년 윤태웅이 적막 속에서 홀로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을 가로질렀던 장면은 전쟁과 가난의 이미지를 벗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향하는 대한민국의 선언이었습니다.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한 "손에 손잡고"는 17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며 전 세계 1,700만장이 팔렸습니다. 12년 만에 동서 양 진영이 모두 참가한 이 대회는 냉전 종식의 상징적 사건이었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한 단계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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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부신 경제 성장의 그늘 아래, 정치의 발전은 더디고 민주주의는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렸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 쿠데타로 민주주의는 다시 얼어붙었습니다.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권리는 '체육관 선거'라는 이름 아래 박탈당했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도 무참히 짓밟히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전 국민이 거리로 나섰고,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내며 피로써 민주주의를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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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피로써 지켜온 민주주의

좌상부터 4.19 / 6월 항쟁 / 6.29선언 / 광주민주화운동



첨단·글로벌 경제 강국으로의 도약 (1990년대 ~ 현재)


민주화와 함께 우리 경제는 질적 성장을 거듭했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반도체, 자동차, IT 등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IMF 위기와 금모으기 운동의 기적은 1997년 외환위기 때 351만 명의 국민이 227톤의 금을 모아주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금십자가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의 금반지, 코흘리개 아이들의 돌반지까지 모든 계층이 참여한 금모으기 운동은 "불가사의한 한국인의 힘"으로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습니다. 덕분에 2001년 8월 예정보다 3년 앞당겨 IMF 관리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열정은 IMF의 여파를 고통스럽게 이겨낸 국민들에게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이 국제적 유행어가 되었던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이룬 4강 신화는 국민 모두에게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붉은악마의 조직적 응원과 길거리 응원문화는 전 세계를 감동시켰고, 26조 5천억원의 경제효과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온 국민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온 국민이 미쳐 날뛰었던 2002년의 추억


IT 혁명과 디지털 강국 건설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IT 산업 육성 정책으로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를 달성했고, 온라인 게임과 전자상거래가 급속히 발전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대한민국의 힘은 커졌습니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의리적 구토'로 시작된 한국 영화는 2003년 '실미도'가 1,108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영화 시대를 열었고, 2019년 봉준호의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으로 정점에 달했습니다.



석탄과 오징어를 팔던 나라에서 반도차와 자동차를 파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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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거인들


이러한 기적적인 발전 뒤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역사를 만들어온 거인들이 있었습니다.



정치의 지도자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농지개혁을 통해 소작농 문제를 해결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국가 안보의 초석을 다졌다는 공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 집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 정적 제거 등 독재와 인권탄압의 과오 또한 뚜렷합니다.


박정희는 '한강의 기적'을 이끈 경제개발의 설계자이자 강력한 추진력으로 산업화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그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유신헌법을 통한 종신 독재와 민주주의 탄압은 한국 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김영삼은 문민정부 시대를 열고,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 해체하여 군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한 것은 역사적 결단으로 평가받습니다.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한 공도 큽니다. 반면, 임기 말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김대중은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난을 국민과 함께 극복하고 IT 산업 육성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햇볕정책'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퍼주기식 외교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도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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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선도자들


우장춘은 일본으로 망명한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과학자로 해방이후 한평생 농업진흥을 위해 연구하였습니다.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진정한 업적은 척박했던 우리 농업에 과학적 육종 기술을 도입하여 굶주림으로 시름하던 대한민국 국민들을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종의 합성과 종간 잡종에 관한 개념을 제시하며 배추속 식물의 종간 관계를 밝힌 '우의 삼각형(Triangle of U)' 이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입니다.


이휘소는 세계적인 소립자 이론물리학자로,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와 '참(charm) 쿼크 질량 예측' 등 현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물리학자로서 활동을 한 20년간 모두 110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페르미 연구소에서도 근무하며 최고의 두뇌를 인정받았습니다. 한국 과학계의 위상을 높였으나 1977년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요절했습니다.


강대원은 1955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벨 연구소에서 30년간 일하며 오늘날 모든 디지털 기기의 심장인 반도체의 핵심 소자 'MOSFET'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습니다. 1947년 발명된 세계 최초의 반도체, 트랜지스터는 특성상 대량 양산하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강대원 박사는 모하메드 마틴 아탈라 박사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한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인 MOSFET을 개발하였습니다. 또한 데이터를 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플로팅 게이트' 기술을 개발하여 플래시 메모리의 기반을 닦는 등, 디지털 혁명의 문을 열었습니다.


현신규는 우리나라의 헐벗었던 조국 산천을 푸르게 만들기 위해 빨리 자라는 이탈리아 포플러를 도입하였으며 리기다소나무와 테다소나무를 교잡한 '리기테다소나무'라는 추위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우수한 나무 품종 개량에 성공하였습니다. '은사시나무' 교배종도 만들어 낸 임업에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 임목육종의 아버지입니다. 은사시나무는 박정희대통령의 권유로 현신규 박사의 성을 붙여 현사시나무라고도 명명되었습니다. 1976년 나무녹병으로 골머리를 앓던 뉴질랜드가 수입하여 전국적으로 심었는데 지금도 뉴질랜드에서는 이 나무의 서식지였던 수원 여기산의 이름을 따 'Yeogi'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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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계의 개척자들


이병철은 삼성의 창업주로 1938년 삼성상회를 설립하며 제분업과 제면업을 시작으로 설탕과 섬유산업에서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1969년 삼성전자공업을 설립하며 가전제품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보스턴 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 수여식을 위해 미국에 방문했을 때 일본이 자동차와 반도체로 미국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을 보며 당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반도체 산업에 과감히 투자하여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동력을 만들어냈습니다.


정주영은 현대그룹의 창업주로,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상징되는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여러 국가 기간산업을 일으켰습니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차관을 빌려와 조선소를 지은 일화는 그의 담대함을 보여주는 전설적인 이야기입니다. 1971년 영국 바클리스 은행이 정주영에게 배를 구매하겠다는 사람을 찾아오면 차관을 빌려주겠다고 이야기하자, 정주영은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를 찾아가 설득하여 26만 톤짜리 선박 수주 계약을 따냈습니다. 이때 정주영은 배를 만들지 못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갚아주겠다며 지금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계약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전중윤은 공무원 출신의 사업가로 1961년 삼양식품을 창업한 후 일본 묘조식품의 인스턴트 라면 기술을 이전받아 1963년 국내 최초로 라면을 생산, 6.25 전쟁 이후 굶주림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허기를 달래주었습니다. 라면의 출시는 단순한 식품 개발을 넘어 국민 보건에 기여한 사회적 혁신이었습니다. 삼양식품은 1989년 우지파동으로 존폐위기까지 겪었지만, 2012년 불닭볶음면 출시로 기사회생해 2023년 매출 1조 1,929억원, 매출의 75.6%가 수출에서 나오는 K-푸드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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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은 "철은 국력"이라는 신념으로 허허벌판에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건설한 '철강왕'입니다. 1968년 4월 1일 단 34명으로 창립해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외치며 대일청구권자금을 활용해 일본 신일본제철의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통상 4-5년 걸리는 제철소 건설을 3년 3개월 만에 완공시켰고, 카네기가 35년에 걸쳐 달성한 1,000만톤을 25년 만에 2,100만톤으로 초과 달성했습니다.




이건희는 1987년 이병철 회장의 삼남으로서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연매출 10조원이 안되는 삼성그룹을 30년간 경영하면서 연매출 400조원의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시켰습니다. '미친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불확실성이 큰 반도체 산업에 과감히 투자하였으며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의 체질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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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의 선구자들


전형필(간송)은 일제강점기, 전 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위대한 수호자입니다. 1938년 서울 한복판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며 한국의 국보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중 하나인 간송미술관을 세워 문화재를 정리하고 보존하였습니다. 기와집 400채 값으로 영국인 존 개츠비로부터 고려청자와 조선 청화백자 20점을 사고 이미 일본으로 넘어간 혜원 신윤복의 그림 '혜원 전신첩'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훈민정음 해례본 같은 국보들은 지금 우리 곁에 없었을 것입니다.


30장면의 풍속화로 구성된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 국보 제 135호



박경리는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시작으로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에서 광복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25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이후 드라마로 제작되어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문학적 유산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하고, 최근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며 세계 문학계에 한국 문학의 깊이를 알린 한강 작가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윤이상은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음악을 융합한 세계적인 작곡가입니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감옥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희극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작곡했고, 이 작품은 뉘른베르크에서 초연 시 31회의 커튼콜을 받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백남준은 20세기 대표 예술가 중 하나로서 비디오 아트의 세계를 개척한 선구자였습니다. 문학과 음악을 전공한 그는 종합적인 예술의 표현뿐 아니라 작품을 직접 설계하기 위해 직접 포트란 언어로 코딩까지 한 천재이자 노력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론적으로도 밝아70년대 당시로는 파격적인 전자 고속도로와 정보의 소통을 예견했으며 이는 21세기에 모두 현실이 되었습니다. 세계 유명 미술관에는 그의 작품이 하나쯤은 있을 정도로 현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광주비엔날레 개최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조수미는 세기의 프리마돈나이자 21세기의 세계 3대 소프라노로 인정받는 거장입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주빈 메타로부터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류의 자산’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한국인 최초의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이자 황금 기러기상, 국제 푸치니상을 모두 수상한 전무후무한 성악가입니다.


봉준호는 세계를 감동시킨 기생충의 작가입니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2020년에는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관왕을 달성하며 "한국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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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의 스타들


양정모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 62kg급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전설적인 선수입니다. 8월 1일 오전 9시 27분, 그가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은 대한민국 스포츠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차범근은 해외 축구의 개척자이자 '차붐'이라 불리며 독일과 유럽을 폭격한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입니다.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통산 98골을 기록했고, 특히 바이어 레버쿠젠에서의 활약은 독일 팬들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황영조는 손기정의 뒤를 이은 두 번째 마라톤 올림픽 챔피언이자, 태극마크를 달고 우승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2시간 13분 23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일제강점기 손기정 선생의 한을 풀어준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우승한 손기정과 태극기를 달고 최초로 우승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박찬호는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IMF 시절, 온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위로했던 야구선수입니다. 1994년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디딘 후, 통산 124승을 기록하며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박세리는 양말을 벗고 골프를 치던 모습으로 유명한, IMF로 어려웠던 시절 희망과 용기를 안겨준 골프 스타입니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LPGA 투어 첫 승을 거둔 후, 총 25승을 올리며 한국 여자골프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김연아는 우리나라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퀸연아'로 불리는 절대적 존재입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금메달을 차지했고, 세계 신기록을 연이어 갱신하며 피겨스케이팅계를 평정했습니다.


박태환은 수영 불모지라고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가 된 '마린 보이'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수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박지성은 한국 최초의 EPL 진출 선수이자 아시아 축구의 개척자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년간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4회,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라는 퍼거슨 감독의 평가처럼, 그는 뛰어난 활동량과 전술 이해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인정받은 최초의 아시아 선수였습니다.


손흥민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 중 하나로, EPL 득점왕과 유럽대회 우승을 이룬 현재진행형 레전드입니다. 토트넘에서 200경기 100골을 달성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이자, 2021-22시즌 EPL 득점왕(23골)에 오른 아시아 최초의 선수이며, 2025년 드디어 무관의 한을 풀고 UEL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후 최근 미국 MLS의 LAFC로 이적했습니다.


양궁 대표팀은 "금메달은 당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상징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현재까지 올림픽에서 총 27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국제대회 룰이 우리나라 대표팀이 우승하지 못하게 하려고 바뀌어도 여전히 금메달은 대한민국 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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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_4nXcKhH7Rl8Qs-MvYEpKlgLbv5bzXtxPprFLfKlxdYIVJEXiYgeUUDd9S5_Teb337v9TtiCwc3bIq2ko27yI0MmiOsxdKROG5NT9lFIQAirQA_87V5ZhhremEN1jcONMOLfNSC0dYSe4_zD7N9Hx9KlI?key=IG72fv8KB9GUsS8SUIIcng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K-방산의 약진: 자주국방에서 수출 강국으로


6.25전쟁 당시 탱크도 없던 나라는 이제 군사강국으로 거듭났고 수출마저 하고 있습니다. 마치 40년 전 현대자동차 포니가 처음 해외로 수출될 때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K-방산'의 눈부신 성과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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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2024년 Global Firepower 기준(재래식 전력)으로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어 5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영국과 일본을 제치고 달성한 성과입니다. K-방산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2023년 방산 수출액은 14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K2 흑표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인정받으며 폴란드, 호주,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위기를 느낀 폴란드와의 대규모 무기수출 계약은 K-방산 역사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48대 등을 포함한 약 17조~20조원 규모의 계약은 NATO 역사상 단일 국가와의 최대 규모 방산 계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K-방산 성공의 비결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입니다. 독일의 PzH2000과 유사한 성능의 K9 자주포가 1/3 가격에 제공됩니다.


둘째, 신속한 생산과 납기입니다. 미국이나 독일이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1-2년 내 납품이 가능합니다. 짜장면 한 그릇도 10분을 기다릴 수 없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타국에게는 기적과 비슷한 일입니다.


셋째,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을 통한 상생 협력입니다. 기존의 군사강국들이 자국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핵심 기술 이전에 매우 인색한 것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등은 오히려 '혜자' 수준의 기술 공유를 통해 상호 윈-윈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와의 계약에서도 단순한 완제품 수출이 아닌 현지 생산라인 구축과 핵심 기술 이전을 포함한 패키지로 접근함으로써, 상대국의 방산 기술력 향상에도 기여하며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방적 협력 방식은 폐쇄적인 기존 군사강국들과 차별화되는 K-방산만의 독특한 경쟁 우위가 되고 있습니다.




K-문화 전성시대


K-POP 산업의 놀라운 성과


블랙핑크는 YouTube 구독자 9,500만 명으로 음악 아티스트 세계 최고를 기록했고, 2023년 Coachella 최초 아시아 헤드라이너로서 296만 명이 동시 시청했습니다. 2023년 한류 수출가치는 141.65억 달러에 달했고, 전 세계 한류 팬은 1억 7,800만 명으로 10년 만에 19배 증가했습니다.


BTS의 전무후무한 성취


빌보드 Hot 100에서 6곡이 1위를 기록하며 21세기 최고의 글로벌 아티스트가 된 BTS. "Butter"는 10주 연속 1위, "Life Goes On"은 주로 한국어로 부른 최초의 1위곡이었습니다. 2020-2021년 세계 1위 아티스트에 올랐고, UN 연설로 음악을 넘어선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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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의문의 1승


특히 최근에는 신선한 형태의 한류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흥행대박을 터뜨린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돌풍은 그칠 줄 모릅니다. 'Golden'의 커버챌린지가 유튜브를 뒤덮고 전세계 사람들은 다회차 관람에 노래를 따라부르며 심지어는 듀스와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까지 찾아서 듣는 광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조용하고 엄숙한 공간이던 박물관이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떡상을 타고 갑자기 핫플레이스로 변한 것입니다. 호랑이 캐릭터 '더피'를 닮은 키링과 한복을 모티브로 한 에코백, 훈민정음 해례본을 활용한 스마트폰 케이스, 백제 금관을 재해석한 액세서리 등 박물관 굿즈가 MZ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백화점이나 명품 매장처럼 '오픈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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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국내 누리꾼들은 "원래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는 숨겨진 맛집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더 사기 힘들게 되었다"며 슬프지만 유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우리가 서구 문물을 동경하던 시절과는 완전히 뒤바뀐 풍경입니다. 전통문화가 트렌드가 되고, 박물관이 힙한 공간이 되는 이런 역전은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구 선생께서 이 모습을 보신다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호쾌하게 웃으실 것 같네요.



남북한 80년의 격차: 하나의 출발선, 두 개의 운명


광복이라는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남과 북은 지난 80년간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는 경제력과 군사력 모든 면에서 극명한 격차로 나타납니다. 80년의 세월 뒤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규모는 거의 100배 가까이 벌어졌으며 1인당 GDP도 50배 이상으로 차이나는데 실제 생활수준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10대 무역강국이 된 세월동안 북한의 경제는 후퇴했으며, 지금은 생활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데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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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리스크들


이런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에 마냥 빛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앞날 또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위기들은 과거의 시련과는 또 다른, 국가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 될 것입니다.



인구 절벽과 초고령화


합계출산율 0.7명대의 충격적인 수치는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수준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이 추세라면 한국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2050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며, 나라전체의 부채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이는 경제 성장 동력의 상실과 사회 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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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최악의 노인빈곤과 자살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2023년 자살률 27.3명(인구 10만 명당)으로 OECD 평균의 2.5배, 노인빈곤율 40.4%로 OECD 평균의 3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세대가 막상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사교육비와 도전을 가로막는 사회


2024년 사교육비 29.2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47만 4천원으로, 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는데도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나는 역설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저출산과 교육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학생(혹은 엄빠)들은 여전히 의사·변호사를 가장 선호하는 반면, 중국은 칭화대를 필두로 공학 전공자가 전체 졸업생의 33%, 인도는 최고의 공대 'IIT'를 비롯한 최상위권 학교들에서 매년 150만 명 이상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졸업생들은 벤처기업을 세워 엑시트할 꿈을 키우며 전세계를 상대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OECD 최하위의 문해력 위기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한국이 디지털 문해력은 OECD 최하위 수준입니다. 사실과 의견 식별능력이 25.6%로 OECD 평균(47.4%)의 절반에 불과하고, 심지어 피싱 메일 식별능력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대학생 87%가 리포트 표절 경험이 있을 정도로 학습능력 저하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놀랍게도 문맹률 1%의 나라에서 새로운 형태의 '문맹'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과 글의 맥락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글의 내용과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해석을 내놓는 '문해력 논란'이 빈발하고 있는데, 몇 년전 어느 카페가 내 걸은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에 대해 왜 사과를 심심하게 하냐며 진정성이 없다며 광분했다는 일화는 디지털 시대의 발전만큼 역행하는 문해력 저하의 심각성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수도권 과밀화와 자산 버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 소멸은 가속화되고,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폭등했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에서 과연 현재의 부동산 자산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심각한 의문이며, 이는 가계부채와 함께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뇌관 중 하나입니다.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리스크


2024년 연평균기온 14.5℃로 역대 1위를 기록했고, 열대야일수 24.5일로 평년의 3.7배에 달했습니다. 온열질환자 3,704명, 가축 폐사 168만 9천 마리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 현상의 빈발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지정학적으로도 위험 요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민주주의라는 포장지 속에서 극우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속국으로 여기고 수없이 침략해온 과거가 있습니다. 강력한 국방력과 경제력만이 우리의 평화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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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패권 경쟁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현재 대한민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반도체, AI, 배터리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좁아지고 있으며 가격경쟁력 또한 빠르게 상실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으로부터는 지속적인 통상압력과 방위비 분담 증액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정치와 경제적 딜레마에 빠진 입지를 회복하면서 혁신을 지속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매우 풀기어려운, 그러나 시급한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새로운 빛을 향한 우리의 다짐


광복 80년의 역사는 '잃었던 빛을 되찾는' 여정에서 '새로운 빛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선조들이 목숨 바쳐 되찾아준 나라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는 땀과 눈물로 가난을 이겨냈고, 우리는 그 토대 위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1953년 67달러라는 최빈국에서 시작하여 2024년 36,024달러로 성장한 우리의 역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시발택시에서 현대차까지, '의리적 구토'에서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그리고 양정모의 첫 금메달에서 BTS의 빌보드 석권까지, 우리는 8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경제와 문화의 번영을 모두 이루어낸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OECD 최고의 노인빈곤율과 자살률, 세계 최고 사교육비, 디지털 문해력 최하위라는 그림자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무수한 위기를 극복해온 경험이 있습니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섰고, IMF 위기를 온국민의 힘으로 극복했으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도 K-방역으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또한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평화로운 빛의 혁명으로 지켜내며 이제는 전세계에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기술과 문화를 바탕으로 한 강소국입니다. 자원이 한정된 대한민국은 다가올 인구절벽의 충격에 대비하여 사회안전망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체제로 국가의 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K-POP의 소프트파워와 K-방산의 하드파워 및 반도체를 필두로 한 첨단기술의 바탕위에 더욱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더한다면 그 것은 우리의 성장동력이 되어 지나온 80년보다 앞으로의 80년을 더 빛나게 할 것입니다.


특히 세계를 감동시키는 K-POP의 소프트파워의 상승만큼 개인의 의식도 향상되어야 합니다. 신이 눈을 감고 위치를 찍은 듯한,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대한민국에게 이념적으로, 지역적으로 갈등하며 시간을 소비할 여유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소프트파워를 국가발전의 한 축으로써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 것이 우리나라의 부는 물론 외교적 역량으로 이어져 혼란한 국제질서 속에서도 우리의 발언력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과거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들에 대해서는 감사함을 가지고 그들에게 선진 기술과 정책수단을 제공하며 국제 연대를 강화해 나간다면 대한민국의 국력을 한차원 높아질 것입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순국선열들과 이 땅을 일구어 온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지난 80년간의 위대했던 발걸음을 뒤로 하고 앞으로의 80년이 더욱 빛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부터 작은 힘을 보탤 것입니다.


대한민국에게는 앞으로도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지난 80년 동안 기적을 이뤄낸 경험과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술과 문화적 역량,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으니까요.


오늘도 같이 공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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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_4nXeMcG72frha9DK4TX4wCGyGMOLJ6gbROrVexO9LLlPK5qvy_wv3naDWEcCwbJtLzy1YmFQJfGDDGUpWv3DKma9l7kh8xPMsvGjZ3t537pKZ2tEcbuxfAEHpYDUfGIQRKp1UJmeokZaoB1vYUL46j_w?key=IG72fv8KB9GUsS8SUIIcng 마침 좋은 전시회가 있습니다. 선조들에게 감사하며 굿즈도 사오시는 건 어떨까요?




출처:

이야기공작소”라면이야기” https://willucy.tistory.com/1041

한국은행, 『숫자로 보는 광복 60년』, 2005

정책브리핑, "한국 GDP 규모 60년간 523배 증가", 2005

한국일보, "'목표 7000억 달러' 못 찍었지만...2024년 한국 수출액 역대 최대 달성", 2025.1.1

Global Firepower, "2024 Military Strength Ranking", 2024

서울경제, "한국 군사력 英·日 제치고 세계 5위…北은 36위로 하락", 2024.1.19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교육 > 문맹퇴치운동"

생글생글, "3050클럽 일곱 번째 국가였는데…소득 3만달러 '빨간불'", 2020.6.12

방위사업청, 방산 수출 통계, 2024

통계청, 각종 사회경제 통계, 2024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한국 경제, 기적을 만들다", 2015

위키백과, "국제차량제작 시발", 2024

부산일보, "금메달 1호 양정모 기억하세요?", 2016

머니S, "첫 올림픽 금메달에 전국이 들썩", 2024

뉴시스, "한국, 올림픽 역대 100번째 금에 닿기까지", 2012

나무위키, 각 인물별 정보

한국경제, "삼양식품 운명 바꾼 불닭볶음면, 세계 판매 30억개", 2021

전경련 기업박물관, "박태준(포스코)", 2024

대한민국 헌법 전문

국가기록원, "IMF 외환위기 극복", 2024

한국경제, "2002년 월드컵 경제효과 26조?", 2006

나무위키, "양심냉장고", 2024

Billboard, "BTS's 15 Top Songs on the Billboard Hot 100"

기상청, 2024년 기후변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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