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아있는 2012년
살면서 기억에 오래 남는 몇 안 되는 인연을 만나게 된다.
2008년 입행 후 첫 지점에서 3년 반가량을 근무하고 2011년 12월 말, 새로운 지점으로 이동했다. M6(소형점포)에서 M2 규모로의 이동이 감사하기도 했고 새로운 만남에 설레기도 했다. 그때 그분을 처음 만났다. 잘 웃어주셨으나 날카로운 질문 탓에 많이 어려워했었다. 난 신입행원이었으니.
근 일 년을 함께 일하고 그분은 능력을 인정받아 강남의 더 큰 지점으로 이동하셨고 함께했던 짧은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 네 엄마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단 사실을, 그분께 가장 먼저 알렸고 가장 먼저 인사드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그땐 그렇게 하고 싶단 생각이 컸다.
삼십 대 초반 누구보다 나의 일에 진심이었던 그 시기에 그분은 날 많이 아껴주셨고 잘한 일에 대해 격하게 칭찬해 주셨다. 매일 난 더 잘 해내고 싶었고 끊임없이 공부했다. 일상업무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갖춰야겠다는 동기부여를 그분을 통해 받기도 했다.
그렇게 같은 지점에서 함께한 일 년 동안 나의 성장을 경험함과 동시에 업무 이후에도 난 그 분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집에 초대받기도 했고, 아내분과도 와인 한잔 하며 새벽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너무 짧게 스쳐 지나간 시간이었다.
5년 전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저녁, 황망하게 떠난 그분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지막 통화를 했던 것이 일주일 전이었는데, 옛 지점 분들과의 모임이 있었고 난 참석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그분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고 우리는 육성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다.
죄송한 마음과 함께 아쉬운 생각이 물밀듯 차올랐다. 그냥 그때 모임에 가서 술 한잔 따라 드리지 못했다는 후회가 가시질 않았다.
빈소에는 예전 은행에서 알게 된 분들이 계셨다. 준비되지 않은 마지막이었기에 영정사진 또한 어색했다. 아내분 말씀으로는 고를 수 있는 사진이 없었다고 했다. 그 사실이 더 마음 아팠다.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그 분과의 추억이 눈물이 되어 조금씩, 흘러내렸다.
출근길에 역시 그곳을 지났다.
그분과 함께했던 지점의 외관은 그대로였다. 간판 정도 리뉴얼 된 것 같고 그 뒤에 위치한, 종종 함께 소주 한잔 나누던 해장국 집과 순댓국 집은 그대로였다. 그분과 함께이던 시간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바로 어제의 일처럼 떠올랐다. 두툼했던 손, 그분의 검은색 쿠션 슬리퍼 소리, 선호하셨던 담배, 그리고 늘 나를 응원하던 그 목소리와 미소. 모든 것이 기억에 존재했고 내가 알던 모습과 달라지지 않았다.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긴 것처럼 모든 것이 재가 되었지만 나의 기억은 여전히 2012년이었다.
우리들의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끝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기에 너희들의 오늘이 항상 사랑하는 이들과 웃음 가득한 시간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떠난 이후 후회가 남지 않는 관계가 있을까마는 너희들의 시간이 기억으로 존재할 때 아름다움으로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문득, 오늘의 아빠처럼 그때의 기억을 부르는 공간에 가까이할 때 지난 추억에 감사하기를 그리워하기를. 그리고 지금 네 옆에 있는 이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