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발견

by Davca

5시 17분. 모두가 잠든 새벽, 오늘도 알람 없이 눈을 뜬다. 늘 그렇듯 7시간 조금 넘는 수면시간을 기록했다. 물을 끓이는 동안 화장실에 가고 양치를 한다. 세수를 마치고 돌아와 따뜻한 소금물 한잔을 타서 마신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간결한 리츄얼이다.

히말라야솔트를 그라인더로 다섯 바퀴 돌린 다음 끓는 물을 붓는 이 짧은 순간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새벽 일기를 쓰는 동안 물이 조금 식게 놔두고 적당한 온도가 되었을 때 한 모금씩 마신다. 어제의 마지막 식사도 오후 4시경이었으니 6시가 조금 넘어가는 지금 기준으로 14시간째 공복을 유지 중이다. 하루를 시작하고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기엔 더없이 좋은 상태이다. 배고픔도 즐길 수 있는 이 시간 또한 고맙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는데, 내가 이미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본다. 최근엔 마음이 어지러워 독서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다양한 작가들의 책을 읽다 보니 괴테의 <나의 인생 시와 진실>에 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읽어가다 이 행위에도 멈춤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시점이 찾아오면 쓰기 시작한다. 특정 주제를 계획하고 써 내려가는 습관이 없는 탓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몇 가지 글감들로 글을 쓴다.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글에는 늘 어색함이 따라오는 편이다. 고민하고 또 고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누군가를 의식하는 것만 같은 표현, 내용들이 자꾸 들어가게 된다. 의식적으로 이런 것을 피하려 할수록 더 그런 쪽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두 아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기상 20분 전부터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켜고 복도에 장식해 둔 크리스마스용 조명들을 켠다. TV로 크리스마스 재즈를 낮은 볼륨으로 틀어두면 어느새 아이들의 기척이 들린다. 어떤 날은 아침 식사를 차려달라 하기도 하는 준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대게 아내가 만들어둔 무언가를 요청하기 때문에 꺼내주거나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각자의 텀블러에 보리차를 반쯤 채워둔다. 그러면 두 아이는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가방에 텀블러를 넣는다. 8시 10분을 전후해서 등교를 하는 두 아이에게 인사를 하면 돌아와 커피를 내린다. 근래에는 차를 더 많이 마시거나 디카페인 커피를 즐긴다. 오전 9시까지 쓰다만 글을 더 쓰거나 책을 읽다가 청소를 시작한다.

한겨울 환기는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밤새 데워진 집안의 온도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공기가 순환하게 하는 행위가 에너지 낭비라는 공대출신 아내의 잔소리에, 하루 내 묵은 공기를 내보내는 의식의 의미가 중요하다며 반격하는 문과출신 남편은 십 년이 넘도록 이 부분에서 온전한 합의를 보지 못했다. 다만 집안의 공기순환 시스템이 상시 가동되고 있으니 절로 환기는 되고 있다는 얘기에 내가 좀 더 수긍했다. 기상상태와 외부의 온도를 감안하여 '선택적 환기'를 한다. 사실 내게 환기를 꼭 공기의 순환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하루동안 쌓인 좋지 않은 것들을 내보내고 새롭고 맑은 것을 받아들이려는 의식에 더 의미를 두는 편이다. <청소력>을 읽은 이후에 더 이 행위가 중요함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환기를 하지 못한 날에는 왠지 모를 찜찜함 같은 것이 남는다.



침구 정리를 마치고 온 집안을 청소기로 구석구석 청소한 후엔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한다. 설거지야 매일 하지만 빨래와 재활용 쓰레기의 정리는 대게 3~4일에 한번 꼴이다. 어느 정도 정리가 마무리되면 샤워를 하고 외출할 준비를 한다. 12월이 된 이후 새벽러닝은 횟수를 줄였고 대신 아내와 걷는 것을 택했다. 달리는 것을 싫어하는 아내도 무리하지 않고 걷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기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또 빌린 다음, 근처 스타벅스까지 걷는다. 커피를 한잔하면서 책을 보거나 얘기를 나눈다 필요하면 근처 마트로 이동하여 장을 보고 다시 집으로 걸어온다. 오늘은 아내가 며칠 전부터 떡을 먹고 싶다 해서 가까운 떡 집에도 갈 계획이다. 이렇게 오전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대략 오후 한 시 전후이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정리한 다음 나는 다시 거실 책상에 앉는다. 빌려온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쓴다. 종종 더 몰입이 필요할 때 한 두 페이지 정도 필사를 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만년필로 격자노트에 책을 필사하는 기분을 느껴본 이는 이때의 뿌듯함을 알 것이다. 필사한 내용을 다시 읽고 또 밑줄을 치며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행복과 감사 그 자체이다. 이러다 뭔가가 떠오르면 빠르게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도 한다. 글을 쓰는 행위를 일로 받아들이지 않다 보니, 하루키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쓰는 행위에 나를 맞추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상태로 두어야 그나마 어색함이 최대한 빠진 글쓰기를 해낼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면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이런 패턴에는 일종의 영감이나 번뜩이는 재치와 위트 같은 것이 중요한데, 그 어떤 시그널도 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짜내서 몇 번 써보기도 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게 되면 어김없이 이불킥 각이다.

그래도 써보려 애쓴 흔적에 대해선 혼자 조용히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두 아이가 학원엘 간다고 연락이 오거나 집으로 출발했다는 보고 전화를 아내에게 한다. 휴대전화를 사준 이후로 하교 후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일종의 '행복한 일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들어준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물었다. 집에 오는 길이면 와서 얘기하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대답이 놀라웠다. 전화해서 뭔가를 얘기하고 싶은 그 마음이 시간이 지나고 집에 오는 동안 식어버린다고. 그래서 어떤 감정이 들어 뭔가를 말하고 싶을 때 그냥 들어준다는 것이다. 혹시 그 얘기가 어떤 사고와 사건 같은 것과 연관되어 있는 얘기라면 더더욱 바로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통화녹음도 늘 되고 있으니 어떤 경우엔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뜻이 있는 줄 몰랐던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저녁 시간까지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이어간다. 저녁식사를 하지 않기에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간단하게 뭔가를 먹거나 건너뛴다. 가급적 공복을 유지하려 하는 시도를 11월 말부터 진행 중인데 꽤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체중은 사실 큰 변동이 없지만 조깅할 때 몸의 변화를 느끼기도 한다. 이러다간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뛰다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돌아와 씻고 저녁식사를 한다. 조용하던 집안이 정신없는 곳이 되었다. 나도 이때는 휴식의 시간이다. 거실공부를 수년째 실천 중인 우리 가족은 모두 거실로 모인다. 두 아이도 놀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아니라면 각자 방에 잘 가지 않는다. 학교 숙제부터 학원 과제까지 모두 거실에 다 모여 앉아 해결하는 모습이 익숙하고 편해졌다. 엄마 아빠가 모두 거실에서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고 있으니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도 수월하다. 게다가 수학은 아내가 영어는 내가 담당을 하다 보니 부부간의 분업도 꽤나 효과적인 셈이다. 최근 들어선 취침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져갈 필요를 느꼈기에 늦어도 10시에는 온 가족이 자려고 노력한다. 나는 원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기에 10시가 넘어가면 나 자신이 힘들다. 아내는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른 취침에 힘들어하긴 했으나 최근엔 잘 적응을 한 모양이다. 간혹 아이들 과제가 늦어지거나 하다 보면 11시가 넘어갈 때도 꽤 있는데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오늘 해야만 하는 과제들을 다 끝내지 않고 잘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아내와 고민했다. 두 아이의 시간 활용과 체력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일과를 재조정하기로. 그래서 취미로 다니고 있는 학원 몇 곳을 12월부로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아이들 입장에선 물론 아쉬움이 크겠지만, 밤늦게까지 힘들게 과제를 하는 것 또한 본인들에게 괴로운 일이었으니 생각보다 쉽게 동의를 했다. 곧 방학이기도 하고 새로운 일정에 맞춰서 올해보다 더 학습과 독서에 초점을 맞춘 생활을 잘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렇게 별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도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문득 이런 별것 없음이 그 무엇보다 특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것이 자신에겐 지극히 특별한 삶이 아니겠는다. 어쩌면 이것이 기적일지도 모른다. 일면식 없는 두 남녀가 한 직장에서 만나 100일 만에 결혼을 하고 이런 가정을 꾸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이것이 진정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